[미, 첨단무기 강매- 1] ‘한국 지켜주니, 비싼무기 사가라!’ 피스아이 프로젝트 압박작전 (WIKI 비밀문서 시리즈)

최정미 기자= ‘너희 나라 지켜주니, 비싼 무기 구입해가라!’

이는 1970년대부터 이어져 온 미국 정부의 한결같은 입장이었다. 프랑스나 이스라엘에 미국산 제품보다 훨씬 성능이 뛰어나고 가격이 싼 무기가 있어도 살 수가 없었다. 미국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대사관은 한국이 어떤 무기를 도입하려하는지 정보를 파악해 본국에 보고하고, 훈령을 받아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는 척후병 역할을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6년 도입키로 했던 ‘공중조기경보통제기’였다. 국방부는 2조원이 투입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5년간의 도입준비 작업을 거쳐 2011년부터 실전배치했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AEW&C: Airborne Early Warning & Control)는 고성능 레이더로 원거리에서 비행하는 적 항공기를 포착해 지상기지에 보고하고, 아군의 전투기를 지휘·통제하는 항공기이다.

이 때문에 ‘공중의 전투지휘사령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에 탑재되는 레이더는 지상의 레이더 보다 우수한 수색 및 탐지능력을 갖고 있다.

360도 전방위 수색이 가능함은 물론, 저고도에서 낮게 비행하는 항공기도 잡아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산 정상에 위치한 지상 레이더는 전시에 적의 일차 공격목표이기 때문에, 적의 공격으로 파괴되면 아군의 방공 통제가 한순간에 무력화될 수 있다.

반면 공중조기경보통제기는 공중에서 비행하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는 지상의 레이더에 비해 생존성이 월등히 높다.

우리 국방부가 이같은 무기에 관심을 갖고 정보를 파악해 본 결과 이스라엘 IAI사와 미국 보잉사 제품이 가장 경쟁력이 높은 무기로 파악됐고, 양측을 대상으로 저울질을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은 가격-품질만을 놓고 평가하려던 한국 정부에 전방위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2006년 4월 21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던 반기문 장관과 오찬 회동을 갖고 한미간 주요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주한 미대사관이 오찬 다음날인 4월 22일 본국 국무부에 보고한 기밀문서에는 당시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미 대사와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북한, 환경 조정, 보잉 지지, FTA (AMBASSADOR’S MEETING WITH FM BAN: NORTH KOREA, ENVIRONMENTAL MEDIATION, BOEING AND FTA)라는 제목으로 발송된 이 문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보잉 지지’라는 대목이다.

<미 대사는 조기경보기 조달 사업에 있어 보잉 737의 조기경보기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한 지지를 강조했다. 보잉은 단독으로 미국 정부의 지지를 계속해서 누려왔고, 보잉 시스템만이 동맹의 요구에 부합하는 데 필요한 수준의 상호운용성을 제공한다고 했다. 지휘관계 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는 심지어 한국이 최상의 지휘통제 능력을 갖추는 데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미 대사는 또한 계획한 대로 4월 30일의 입찰을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기문은 가격 경쟁력이 큰 요인으로 남아있고, 보잉의 경쟁상품이 훨씬 낮은 가격표를 붙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버시바우 대사는 ‘이스라엘 제품은 해당 시스템을 한 번도 생산한 적이 없고, 지휘통제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반장관은 이를 받아적었다..> (2006. 4.22 국무부 보고 기밀문서)

버시바우 대사는 일주일 뒤 송민순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실장을 만나 보잉사 조기경보기 구매를 압박하는 한편 각 부처 고위 관료들을 상대로 압박 작전을 전개했다.

모든 거래는 경쟁제품의 가격과 성능을 꼼꼼히 비교해 판단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조기경보통제기 사업에는 한국 정부가 이같은 가격-성능 정보 외에 ‘미국의 압력’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리즈 이어집니다)

■ 미 대사와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북한, 환경 조정, 보잉 지지, FTA

요약: 미 대사와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4월 21일 오찬에서 양국과 북한에 관한 몇 가지 문제들을 논의했다(한국-일본의 관계와 반기문의 유엔 사무총장 출마에 관한 문서 참조). 반기문은 북한에 대해 한국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전략과 접근법은 다르지만 목표와 목적에 관해서는 한국과 미국 정부 사이에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반기문은 방콕에 있는 6명의 탈북자들에 대해서 외교통상부가 미국의 요청을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 미군의 환경 복원 제안에 관해서 반기문은 한국 장관들 사이에서 이견이 크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으로 여겼다. 한미 FTA에 관해서 반기문은 일부 한국 정치인들(노무현 대통령은 제외하고)의 변덕을 한탄하긴 했지만, 아주 낙관적이었다. 미 대사는 환경 복원에 대해 현재 미국이 제안하는 것에 동의하도록 반기문 장관에게 압력을 가했다. 미 대사는 또한 보잉의 조기경보기를 기술적 가치와 동맹 차원에서 홍보하려고 했다. – 요약 끝

▷북한: 개성공단, 탈북자들, 인권
통일부 장관 이종석이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해 평양으로 간 것에 주목하며, 반기문은 이종석이 의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낙관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반기문은 이종석이 북한측에 인권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에 대해 북한이 크게 비판 받아온 입장이라는 것을 남한은 잘 알고 있으며, 목표와 목적에 있어서 미국과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대화와 관여가 북한의 여건을 향상시킬 것으로 강하게 믿고 있다고 했고, 그래서 개성공단이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반기문은 또한 현재 국제사회가 개성공단을 보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를 감지했다고 했다.
미 대사는 한미 정부가 북한에 대해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에 대한 미국의 강한 관심을 고려했을 때, 한국이 이 문제를 더욱 공론화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되겠다고 말했다. 최근 미 의회 사람들과 대사관 사람들의 개성공단 방문에 있어 외교통상부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며, 미 대사는 이 방문이 아주 유익했다고 말했다. 미국 관료들이 직접 개성공단의 근로 환경을 볼 수 있었는데, 깨끗하고, 현대적이며, 편안한 것으로 보였고, 또한 개성 근로자들이 꽤 건강해 보였다고 말했다. 핵심 문제는 이들이 공단 밖의 일반적인 근로자들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합당한 임금을 받고 있는지 여부라고 미 대사는 말했다.

반기문은 6월 중에 개성공단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주한 외국 대사들을 초대할 것이며, 버쉬바우 미 대사 역시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대사는 미국과 한국 대사들이 미국에의 정착을 원하는 6명의 탈북자 문제를 처리하는 데 긴밀하게 일해온 것을 말했다. 반기문은 빠른 정착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어떤 식으로든 외교통상부가 지원할 준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문은 또한 중국이 탈북자들을 남한에 보내는 것을 눈에 띄게 늦췄다고 말했다. 남한의 외교 시설과 학교에 있는 이 탈북자들 대부분은 과거 3-6개월에 비해, 현재 1년 이상을 기다려왔다고 했다. 당연히 탈북자들은 크게 좌절감을 느끼고 지친 상태이며, 일부는 포기하거나 중국으로 다시 가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미 대사는 부시 대통령이 올해 초 중국에 의해 강제로 북한에 송환된 김춘희 사건을 제기한 것에 주목하며 중국은 탈북자들 취급으로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개혁에 진지하게 임하는 문제에 대한 미 대사의 회의적인 생각에 대해 반기문은 그런 변화는 아주 어려운 것이라고 답했다. 반기문은 여느 독재자들처럼 김정일도 군부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의 장성들은 확실히 김정일에게 시스템 완화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들 장성들은 자신들이 첫번째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들이 김정일에게 주는 메시지는 함께 살 거나 함께 죽는 것이라며, 과거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와 전두환 같은 남한의 독재자들도 쿠데타 공모자들로부터 변화에 저항하는 같은 압박을 겪었다고 반기문은 말했다.

▷환경 복원
미 대사는 한국에 반환되는 미군 기지들의 환경을 정화시키기 위한, 소위 ‘라포테 패키지’라고 하는 현재의 제안이 좋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이 제안은 아직 한국 정부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주한 미군은 합의없이 라포테 패키지 실행을 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 대사는 다음 한미 안보정책구상회의를 위해 한국이 5월 중순까지 이 패키지를 승인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반기문은 그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의 송민순이 미국 정부의 제안에 대해 승인을 얻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곧 퇴임하는 환경부 장관이 막았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그는 이번 주말에 새 환경부 장관을 만나 다시 한번 이 제안을 밀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반기문은 그래도 NGO 단체에서 너무 심하게 반대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반기문은 노무현 대통령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조태영은 외교통상부가 지속적으로 의견일치 접근에 조력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이를 양자택일 기반에서 받아들이기는 힘들고 일부 조치의 보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잉 지지
미 대사는 조기경보기 조달 사업에 있어 보잉 737의 조기경보기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한 지지를 강조했다. 보잉은 단독으로 미국 정부의 지지를 계속해서 누려왔고, 보잉 시스템만이 동맹의 요구에 부합하는 데 필요한 수준의 상호운용성을 제공한다고 했다. 지휘관계 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는 심지어 한국이 최상의 지휘통제 능력을 갖추는 데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미 대사는 또한 계획한 대로 4월 30일의 입찰을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기문은 가격 경쟁력이 큰 요인으로 남아있고, 보잉의 경쟁상품이 훨씬 낮은 가격표를 붙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반기문은 이 경쟁 상품은 제안된 시스템과 지휘통제에 관한 미 대사의 논의를 도출하지 않았다는 정보에 주목했다.

▷FTA
미 대사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들을 보도하는 기사가 많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을 포함해 다수의 정치인들이 주춤해 하고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기문은 대부분의 한국 정치인들이 대중들의 의견을 따른다고 말했다. 이는 아주 애석한 일로 정치인 자신들의 신념을 고수할 용기가 있어야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다르고, 정치적 최우선을 FTA에 놓았기 때문에 약속을 고수할 것이라고 반기문은 평가했다. – 버쉬바우

▶원문 링크 https://wikileaks.org/plusd/cables/06SEOUL1330_a.html

■ AMBASSADOR’S MEETING WITH FM BAN: NORTH KOREA, ENVIRONMENTAL MEDIATION, BOEING AND FTA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1. (C) Summary: In their April 21 luncheon meeting, the
    Ambassador and Foreign Minister Ban discussed several
    bilateral and North Korea-related issues (see refs for
    discussions on ROK-Japan relations and Ban’s candidacy for
    UNSYG).
    On North Korea, Ban said Seoul intended to raise
    human rights at the current inter-Korean ministerials; he
    emphasized that there was no gap between Seoul and Washington
    on goals and objectives, although differences in tactics and
    approaches remained. On the six North Korean refugees in
    Bangkok, Ban said MOFAT would be helpful in accommodating our
    requests. Regarding USFK’s environmental remediation offer,
    Ban believed that President Roh would have to make the
    decision, because there was too much gap between various ROK
    ministries. On the U.S.-ROK FTA, Ban was quite optimistic,
    although he lamented the fickleness of some South Korean
    politicians–but not President Roh. The Ambassador pressed
    the Foreign Minister to agree to the current USG offer on
    environmental remediation. He also sought to promote
    Boeing’s AWACS on technical merits and alliance
    considerations. End Summary.

North Korea: KIC, Refugees and Human Rights

  1. (C) Noting that Unification Minister Lee Jong-seok was
    headed for Pyongyang for the North-South ministerials, Ban
    said Lee did not appear to be optimistic there would be
    substantial results. Ban said that Lee would raise human
    rights issues with his counterpart. South Korea was fully
    aware that its position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had
    received substantial criticisms, yet, Ban observed, there
    were no differences with the U.S. over goals and objectives.
    The ROKG strongly believed that dialog and engagement would
    lead to improved conditions in North Korea. This was why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was so important. Ban also
    observed that he had detected signs that the international
    community viewed the KIC more positively now.

  2. (C) The Ambassador agreed that Seoul and Washington had
    the common objectives on North Korea. Given the strong
    interest in human rights in the U.S. in North Korean human
    rights, however, it would be helpful if the ROK could address
    the issues more in public. Expressing appreciation for
    MOFAT’s help in accommodating the visit of recent
    congressional staffdels and Embassy officials to the KIC,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visits had been very useful. Our
    officers saw, first-hand, working conditions in the KIC,
    which appeared clean, modern and comfortable. KIC workers
    also looked reasonably healthy. The key issue, the
    Ambassador said, was whether they were getting reasonable
    wages, although it appeared that their wages were higher than
    those prevailing outside the complex.

  3. (C) Ban said that he planned to organize a visit to the
    KIC some time in June. He would invite all Seoul-based
    ambassadors; perhaps, Ambassador Vershbow could join too.

  4. (C)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U.S. and ROK Embassies
    in Bangkok had been working closely on processing the six
    North Korean refugees wanting to be resettled in the United
    States. Ban said that MOFAT would be prepared to assist in
    any way it could to make an early resettlement possible. Ban
    also observed that Beijing had slowed down significantly on
    sending North Korean refugees to South Korea. Most of the
    refugees in South Korean diplomatic compounds and schools had
    now waited for more than a year, compared to 3-6 months
    before. Understandably, the refugees were very frustrated
    and tired, and some were even considering giving up and
    taking the risky step of reentering China. The Ambassador
    said that China’s treatment of North Korean refugees was
    significantly hurting its image, noting that the President
    had raised the case of Kim Chun-hee, who had been forcibly
    sent back to North Korea by the Chinese earlier this year.

  5. (C) Responding to the Ambassador’s skepticism that North
    Korea was serious about reforms, Ban said that such changes
    were very difficult. Ban thought that like any dictator, Kim
    Jong-Il had to listen to the military. North Korean generals
    were undoubtedly telling KJI that opening up the system would
    bring severe consequences. The generals knew that they would
    be the first to be “sacrificed.” Their message to KJI would
    be: we live together or die together. South Korean
    dictators, like former Presidents Park Chung-hee and Chun
    Doo-hwan, had experienced the same pressure to resist change
    from their fellow coup plotters, Ban said.

Environmental Remediation

  1. (C)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current offer on the
    table to environmentally clean-up the bases being returned to
    the ROK, the so-called LaPorte package, was a good one.
    Unfortunately, this offer had not earned the ROKG’s support
    yet, and USFK was beginning to implement the package without
    consensus. Nevertheless, the Ambassador hoped that the South
    Korean side would be able to approve the package by mid-May
    for the next SPI session.

  2. (C) Ban recalled that he and NSA Song Min-soon had
    expended enormous efforts to win acceptance of the USG offer,
    but the outgoing Environment Minister had balked. This
    weekend, he would be seeing the new environment minister; he
    would give the package another push. Still, Ban thought
    there was too much resistance in the NGO community.
    Ultimately, Ban assessed, President Roh would have to make
    the decision. North America Director General Cho Tae-young
    said MOFAT continued to favor a consensus approach, but it
    would be hard for the ROKG politically to accept it on a
    “take it or leave it” basis; some strengthening of the
    measures may be needed.

Boeing Advocacy

  1. (C) The Ambassador emphasized the USG’s strong support
    for Boeing 737 Airborne Early Warning and Control Aircraft
    (AWACs) in the EX procurement. Boeing continued to enjoy
    sole USG advocacy. The Boeing system alone provided the
    requisite level of interoperability to meet the alliance
    needs. As we moved forward on adjusting command relations,
    it was even more important for Korea to have the best
    possible command-and-control capability. The Ambassador also
    emphasized the need to close the bidding process on April 30,
    as planned.

  2. (C) Ban said that price competitiveness remained a big
    factor and that he understood that Boeing’s competitor
    product carried a much lower price tag. Ban took note of the
    information that this competitor had never produced the
    proposed system and the Ambassador’s argument regarding
    command and control.

FTA

  1. (C) The Ambassador said that there had been a lot of
    press coverage on those opposing the U.S.-ROK FTA. A number
    of politicians seemed to be getting cold feet, including Uri
    Party leader Chung Dong-yong.

  2. (C) Ban noted that most South Korean politicians
    followed the public opinion. This was quite unfortunate,
    because they should have the courage to stick to their own
    beliefs. President Roh, however, was different. Roh had
    placed the highest political priority on the FTA; he would
    stick to his commitments, Ban assessed. VERSH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