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문서] 5.18 광주항쟁, CIA 북한군의 개입 예고 논란.. 자체 판단이었나? 신군부의 논리에 세뇌당했나?

최정미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 중 하나는 미국 CIA가 북한군의 개입을 예견했는냐 여부이다.

CIA가 신군부의 말을 믿고 북한군이 국내 정치에 광범위하게 개입하려 했기 때문에 군부대의 이동을 승인했다는 주장과, CIA는 북한이 전혀 움직임으로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올해초 언론들은 5.18기념재단의 기자회견을 보도하며 ‘5.18 당시 북한군의 개입은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때 기자회견을 했던 김 이사장의 북한군 개입이 없었다고 증거로 제시한 문서가 미국이 공개한 미CIA 비밀정보 문건이었다.

언론들은 재단의 주장을 근거로 “북한군이 5·18 민주화운동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 정보 문건에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재단이 부분적으로만 번역해 자의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 내용은 NSC(국가안전위원회)를 수신으로 하는 문서 중 마지막 단락이다. 5.18측이 위단락의 첫째 줄에 있는 한 문장만을 번역하여 북한군의 개입이 없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위의 ‘North Korea does…’ 내용은 이렇다. “남한의 악화된 정치 상황에 대하여 북한은 현재 어떤 군사적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체 문맥을 보면 좀 다르게 해석된다.

<북한은 현재 악화되고 있는 남한의 정세 대응해 어떤 군사적 행동도 취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1979년 10-26 사태와 12-12 사태로 놀랐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1979년 12월 20일과 1980년 2월 8일에 우리가 지적했듯, 한국에 널리 퍼진 혼란한 위기 상황이 북한의 한반도 무력 통일(망상)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워싱턴이 동아시아와 미국 내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 미국이 한국의 상황을 해결하거나 한국을 방위할 능력이 심각하게 약해졌다고 판단한다면 북한은 더 대담해질 것이다.>

위 단락을 해석해 보면 북한군의 개입이 없었다는 내용이 아니라, 현재 북한의 움직임은 없지만, 남한의 혼란 상황이 가중되면 북한군의 개입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내용이다.

위 내용에는 1979년 12월 20일자 ‘SNIE 42/14.2-79’ 문서에서도 이미 북한군의 개입 가능성을 지적했었다고 나와 있다. ‘SNIE 42/14.2-79’ 문서는 1979년 CIA에서 작성한 문서로, 박정희 대통령 유고 상황에 대한 북한군 동향에 관한 것이었다.

<Thus we believe that North Korean military intervention would likely take the form of a large-scale, coordinated ground, naval, and air assault against the South. Large numbers of ranger-commando troops would be inserted both innediately behind the South’s frontlines and deep into the interior to support frontal attacks by conventional ground forces across the Demilitarized Zone.
The North’s Air Force would attempt to neutralize the South Korean and US close-air-support capability by attacking airfields and command and control and air defense sites. The North Korean Navy would support assaults on key coastal targets and conduct antishipping operations off the South’s coasts.>

북한군의 남한에 대한 군사행동(개입)은 대규모의 육해공군 협동작전의 형태를 취할 것으로 믿는다. 대규모의 특수군(특별기습부대)이 휴전선 전역에 걸친 지상군의 전방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즉각 남한의 전방후면(휴전선 바로 후방)과 후방 내부로 깊숙이 동시에 투입될 것이다.

북한 공군은 비행장, 지휘소, 방어시설이 있는 지역을 공격함으로서 한국과 미국 공군의 근접 지원 능력을 무력화 하려 할 것이다. 북한 해군은 주요 해안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지원할 것이고, 해안을 벗어난 곳에서는 대함(對艦)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두 개의 문서에 나타난 내용을 종합해 보면 미CIA 비밀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현재 악화된 남한의 정치 상황에 북한군의 움직임은 없지만, 79년 2월과 80년 2월에 이미 긴급보고서에서 지적했듯이, 남한의 광범위한 위기 상황은 북한군의 개입을 부추길 수 있고, 미국이 다른 지역에 집착한 것처럼 보이거나, 이런 상황을 통제할 미국의 능력이 약화되었다고 판단하면 북한은 더욱 과감해질 것이다. (개입을 실행에 옮길 것이다)”

위의 내용은 북한군의 개입이 없었다는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 과감하게 한국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내용이다.

물론 북한의 무력 도발 문제는 신군부가 CIA에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것이다.

실제 CIA는 신군부의 논리에 휘말려 본국에 북한군 개입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보고했을까?

아니면 자체적으로 중국, 일본, 북한의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해 북한군 개입 가능성을 제기한 것일까?

확실한 것은 미국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한국군의 이동을 승인한 배경에는 CIA의 이같은 보고서가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됐다는 점이다.

■ CIA 경고 메모렌덤 (1980년 5월 9일)
▷보고 대상: 국가 안전 보장 회의
▷주제: 커지는 한국의 불안과 군 세력자 전두환의 정권 인수에 대한 전망

현재의 보고는 야당 지도자들과 노동자들이 지원하는 학생들의 반정부 운동의 수위가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나타낸다. 거리 시위를 위협하는 것이 실패함에 따라 학생 운동가들과 동조자들은 요구조건들을 열거했고, 5월 14일로 정부 조치의 기한을 정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한국 정부는 대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단계적인 과정을 기획하고 있는데, 최후의 보루는 군사력 이용이다. 그러나 운동가들이 정부의 절제 요청에 답할지는 미심쩍어 보인다. 학생과 군이 충돌한다면 그 결과는 몇몇의 핵심 인물들과 심리적 국면, 그리고 군 세력자 전두환의 역할에 달려있다.

우리가 지켜본 바 박정희 암살 이후 남한의 전개 국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이 상황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지만, 나는 한국 적절한 경고를 하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군의 정권 이양 가능성으로 야기된 현재 한국의 불안은 최근의 일련의 사건들처럼 국내 안정이 약화되어 북한의 공격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한국 정부와 학생들 사이의 심각한 대립이 구체화되고 있다. 대학생들은 일부만이 관여한 한편, 운동가들은 정부의 허용 정도를 시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이고, 이들은 정부가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정치적 요구들을 내세웠는데, 이 요구에는 5월 14일 계엄령을 철회하는 것과 최고위급 정부 관료들을 해임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기한 내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전국 곳곳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가 행진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특히 노동자들의 불만이 생겨난 이후, 한국 정부 내에 큰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정부 관료들은 학생과 노동자 시위가 거리에서 힘을 합칠 가능성에 대해 특히 불안해했다. 최규하 대통령은 이 위협에 대처할 여러 조치가 고려되고 있음을 보고받았지만, 단호하게 행동할 의지와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한국군 사령관은 5개 사단의 보병 연대들, 특전사, 수도보안사령부를 경계태세에 놓았다. 이들은 계엄 사령부가 학생 시위대를 통제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로 이동할 태세를 갖추었다. 5월 6일-7일, 두 특전사 여단이 4개의 다른 주둔 부대와 합류하며, 서울 지역으로 들어갔다.

학생과 군대의 충돌의 결과는 야당 인사들과 재계, 일반 대중들의 반응에 달려있다. 야당의 지도자들은 이미 일부 학생들의 요구에 지원을 표명했고, 이 시국을 논의하기 위해 이 달 이후 특별 국회 소집을 요청했다. 그러나 학생들에 대한 다른 단체들의 지지는 한계가 있다.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아마도 불안정과 군사 독재정부, 외국 특히 미국의 신뢰 손상을 야기 시킬 수 있는 시위가 방지될 것을 희망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부 당국이 다른 곳으로 대립을 확산시키지 않고 학생 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정부가 특히 시민이 사망하는 데 연루된다면 이런 충돌은 노동자와 야당 지도자들을 대치 국면으로 이끌 것이고, 박정희 암살 이후 정치적 재건의 과정에 파열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전개 국면에서 군 세력자 전두환의 태도와 역할은 결정적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모든 활동가들은 미국의 태도를 크게 염두에 둘 것이다. 학생과 야당 지도자들은 미국이 한국 정부와 군사의 탄압을 저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두환은 그의 지위나 한미 안보 관계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대응을 유발하는 것을 가능한 피하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전두환은 미국이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고 한국군 내에서 자신의 힘이 지지되고 있다고 여겨진다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미국의 태도를 무시할 계획이 있을 수 있다.

북한은 현재 악화되고 있는 남한의 정세 대응해 어떤 군사적 행동도 취하려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북한은 1979년 10-26 사태와 12-12 사태로 경악했다. 현 상황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1979년 12월 20일과 1980년 2월 8일에 우리가 지적했듯, 한국에 널리 퍼진 혼란한 위기 상황이 북한의 한반도 무력 통일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워싱턴이 동아시아와 미국내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다면, 미국이 한국의 상황을 해결하거나 한국을 방위할 능력이 심각하게 약해졌다는 생각 하에 북한은 더 대담해질 것이다.

▶원문 https://www.cia.gov/library/readingroom/docs/CIA-RDP83B00100R000300020001-1.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