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문서] 한-일 ‘독도’ 영유권 전쟁을 바라보는 미국의 입장은… 대외적으로는 중립, 내심은 일본편?

최석진 기자= 한-일간 독도 영유권 분쟁을 지켜보는 미국의 입장은 무엇일까.

미국 정부는 공식적 ‘독도 문제는 한국과 일본이 풀어야 할 과제’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 의회와 인터넷, 출판계, 교육계의 현실은 다르다.

미국 의회의 공식 싱크탱크인 의회조사국이 작성한 한반도 및 주변 해역 지도에는 2013년까지 동해와 일본해가 같이 표기되던 것이 2014년 이후부터 일본해로만 단독 표기되고 있다.

독도는 2014년 이후부터는 돌섬이라는 뜻의 ‘리앙크루 락’으로 표기돼 있고 그 밑에 독도와 다케시마가 표기돼 있다. 미 의회조사국은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초당파적 연구기관으로 미국 의회의 공식적인 싱크탱크다.

또 미국 국무부 내 자체 홈페이지 지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기해 오고 있다. 미 연방정부 산하기관인 ‘미국 지명위원회’는 독도 대신 ‘리앙쿠르 바위섬’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CIA의 ‘월드 팩트북’ 한국편 지도에서 독도의 미국식 표기인 ‘리앙쿠르 암초’가 삭제되고, 일본편 지도에만 등장하는 사실이 확인돼 우리 정부가 시정을 요구하자 복원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일 독도 분쟁의 단초 제공하는데 기여한 미국

학계에서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의 모호한 태도가 독도분쟁 분출의 토대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미국은 처음엔 독도를 한국에 되돌려주려 했으나 일본의 로비와 한국 독립운동 성과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인식으로 미국의 생각이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1951년 연합국과 일본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을 앞두고 미국 국무부는 수년간 여러 차례 조약 초안을 만들었다. 동아시아 영토경계의 밑그림이 여기서 그려졌다.

당초 독도 영유권에 관한 조약 초안의 내용은 한결같이 ‘일본이 독도를 한국에 반환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1947년 3월과 8월에 작성된 평화조약 초안 1장 4조엔 “일본은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right)와 권원(title)을 포기하고, 울릉도와 독도(리앙쿠르 록), 거문도 등을 포함한 모든 한국 해안 섬들을 포기한다”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1949년 12월15일 작성된 평화조약 초안에선 갑작스레 독도가 일본 영토로 둔갑한다. 이 초안 2장 제3조엔 “일본 영토는 혼슈, 큐슈, 시코쿠, 홋카이도 등 4개 주요 섬에 쓰시마, 다케시마(리앙쿠르 록-독도를 뜻함), 오키리토, 사도 등을 포괄해 이뤄진다”고 적혀 있다. 졸지에 독도 영유권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것이 미국 정부의 최종 입장은 아니었다.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국무부 내 엇갈린 시각이 여전히 여러 곳에서 표출됐다.

특히 1950년 9월 국무부의 앨리슨이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쪽 평화조약 전권대사의 조약 초안을 검토한 뒤 작성한 보고서는 독도를 일본령에 포함시킨 결정이 나중에 분쟁을 불러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1951년에 실제로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선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대목도 사라진다. 조약은 “일본은 한국 독립을 인정하면서 퀠파트(제주도)와 해밀튼 항구(거문도), 다즐렛(울릉도)과 같은 여러 섬을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과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명시했다.

독도가 한국령인지 일본령인지의 언급이 아예 빠진 것이다. 이 것이 훈날 한-일간 영유권 분쟁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언급이 빠진 게 우리로선 다행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영토 구분을 모호하게 해두려는 일본쪽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일본이 한국 뿐 아니라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둠으로써 나중에 영유권 주장의 발판을 삼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훗날 러시아와는 북방 4개 섬 문제로, 한국과는 독도 문제로, 중국과는 센카쿠열도(조어도) 문제로 영토분쟁을 일으키게 된다.

▶미국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미국은 1949년 초까지 ‘독도의 한국 반환’을 기정사실화 했다가 왜 갑자기 독도를 일본령에 포함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까.

제기되는 분석 중 하나는 국무부 주일정치고문을 지낸 윌리엄 시볼드의 로비 때문이란 게 학계의 정설이다.

시볼드는 아내가 일본인으로, 일본에 매료됐던 미국 관리였다. 그는 1949년 11월 14일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리앙쿠르 록(독도)을 재고할 것을 건의함. 이 섬에 대한 일본 주장은 오래되고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임. 이 섬에 기상관측소와 레이다기지를 설치하는 안보적 고려가 바람직할 것임”이라는 의견을 냈다.

11월 19일 국무장관에게 보낸 문서에서도 독도를 일본령으로 넣을 것을 제안했다.

시볼트의 논리는 일본 외무성 조약국 논리의 복사판이었다. 시볼트의 로비 결과, 1949년 12월에 작성된 국무부의 제6차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초안엔 독도가 일본영토로 포함됐다.

공교롭게도 시볼트의 독도 의견이 제출된 시기와 맞물려, 국무부 극동국은 한국이 대일 평화조약에 연합국 일원으로 참여하는 게 바람직한지 검토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1949년 12월에 작성됐다. 미국이 한국의 평화조약 참여를 허용했다면, 독도 영유권 문제는 간단하게 정리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보고서 결론은 ‘한국 참여가 부적절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대일 무력투쟁에 적극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합국 일원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독립투쟁에 대한 낮은 평가는 미 국무부 내에 ‘독도를 굳이 한국에 되돌려주어야만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던 것이다.

오늘날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활용해 패권을 유지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한-일의 최대 갈등 요인이 되고 있는 ‘독도’문제를 예의주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일 미국대사관은 수시로 독도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본국 국무부와 아시아 각 관련 대사관에 보내고 있다.

다음은 2006년 당시 쉬퍼 대사가 나종일 주일대사와의 면담 내용을 정리해 보고한 것이다.


■일본과의 영토분쟁에 대한 한국 대사의 입장

▷원 분류 : 보안 유지 / 현재 분류 : 보안 유지
▷발신 : 일본 도쿄
▷수신 : 중국 베이징/주일미해군사령관/주일미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국무부장관/대한민국 서울/미군 태평양사령부

  1. 요약 : 지난 4월 18일에 이뤄진 면담에서 한국의 나종일 대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독도 주변 수로측량 계획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한다.
    –양측의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한국과 일본 관계는 매우 심각해질 것이다.
    –한일 간 갈등에 미국이 끌려들 것이다.
    –한국 정부가 납북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재 벌어지는 불편한 한일관계에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

[영토 분쟁]
2. 한국의 나종일 대사는, 4월 18일 미리 약속된 오찬 면담에서, 미국 대사에게, 한국 정부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독도/다케시마 인근 해역에서 해저지형 탐사측량을 실시하려는 일본에 강력하게 항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나대사는, 한국이 다가오는 관련 국제회의에서 해저 지명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일본도 독도 주변 탐사 계획을 포기할 것이라고, 일본 외무성 야치 차관이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대사는, 일본이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바랐다면 애초부터 이러한 계획을 언론에 흘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탐사 계획이 언론에 먼저 보도됨으로써 한국 정부는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1. 나대사는, 독도 영유권은 일본에게는 소소한 문제일지 모르지만 한국 국민들에게는 감정을 크게 건드리는 문제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국민들은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나대사는 골치 아픈 양국 관계가 현재 상태대로 계속 표류한다면 서로 간에 적개심만 더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대사는, 지역 내에서 양국 간의 갈등이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음에 주목하면서 미국이 이 문제에 개입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한국 국민들의 상당수는 일본이 오만하게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앞세워 결국은 그렇게 할 것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문제가 파국으로 치달으면 북한의 김정일이 민족주의라는 카드를 쉽게 꺼내들 것이고, 결국 북한에만 이득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2. 나대사는, 일본은 독도 주변 수로측량 계획을 철회함으로써 문제를 손쉽게 풀 수 있다고 밝히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은 연후에야 양측 간에 진지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가 임기를 마치는 9월 이후에 양국 간에 향상된 관계형성이 이뤄지기를 희망했다. 쉬퍼 대사는 일본과 한국 양국은 미국의 굳건한 동맹이며 미국은 양국 간에 우호관계가 이뤄지기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납북문제]
5. 나종일 대사는 북한의 납치 문제가 한국에서 점점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대북정책에서 햇볕정책이라는 감상적인 해결책에 심혈을 기울여온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인권 문제에는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범죄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음에 따라 한국 정부는 납치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에 억류 중인 모든 한국인 납북자들의 송환과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맞바꾸는 제안을 할 것이다. 현재 북한에는 약 5백명의 납북자들과 또 다른 5백명의 전쟁포로들이 있다. 또, 나대사는 이 문제와 함께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해결도 강력하게 요구하도록 남측 참가자들에게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쉬퍼 대사는, 그러한 조치는 분명히 일본인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관계]
6. 나대사는, 북한의 만행에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납치자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인과 심정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일본의 정치권이 양국 관계에 커다란 걸림돌을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대사는 자신이 일본 대사로 발령받을 때를 회상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고이즈미 총리와 일 년에 두 번씩 정상회담을 갖고 역사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노대통령은 처음에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일본 정계 지도자들의 극우적 발언들이 이어지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독도 문제가 불거지고, 일본 역사교과서에 문제되는 내용들이 실리는 등의 도발적 상황들이 이어졌다. 나대사는 일본은 1945년 이전 식민지 시절 상처에 대해 너무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1. 어떻게 하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대사는 한국정부는 일본 총리나 주요 각료들, 그리고 외무상 등이 전쟁과 관련된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성의를 보여야한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나대사는, 일본 정부가 야스쿠니 대신 일본 지도자들이나 외국 손님들이 참배할 수 있는 전쟁 기념관을 건설하는 데에 대해서는 일본과 이해를 같이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이즈미 행정부는 이에 대한 예산을 반영하지 않았다고, 나대사는 애석해했다.
    /SCHIEFFER


▶원문 https://wikileaks.org/plusd/cables/06TOKYO2095_a.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