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 미 CIA, 박정희 암살 이후 ‘대한민국 격동의 시기’ 정세예측 실패했다 (19)

[특별취재팀] 최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무대였던 1979~80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나라의 명운이 걸렸던 ‘격동의 시기’였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암살 -> 12월 군부 쿠데타 ->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항쟁…

살얼음판도 같았던 이 시기에 미국 CIA(중앙정보국)는 백악관과 국무부에 어떤 정보들을 타전했을까?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스트랫포(Stratfor) 내부 문건에 따르면 당시 CIA는 한국에서 긴박하게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편향된 정보들을 본국에 타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당시 미국의 한반도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CIA 한국책임자였던 로버트 브루스터는 ‘전두환 장군이 정권을 잡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한국의 재야운동 세력을 과소평가하는 바람에 5.18 광주 민주화항쟁과 같은 대규모 저항운동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스트랫포는 피력했다.

다음은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문건 전문이다.

기밀이 해제된 CIA의 문서들은 미 정보기관이 1979년 대한민국에서 예기치 않게 벌어진 독재자의 암살에 대해 매우 당황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독재자는 그가 거느린 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되었는데, 미 정보부는 뒤이어 촉발된 군사 쿠데타를 예견하지 못했고, 이후 결과적으로 내전 양상으로까지 번지는 사회 불안 양상을 간과하게 된다.

쿠데타에 이어, 1980년 5월에 남부의 광주에서 벌어진 시민 저항 운동은 그 지역을 거의 무정부상태로 몰고 갔다. 북한이 이러한 사회 불안 요소를 악용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미 국무부와 CIA의 조언에 따라 미군 지휘 하에 있던 한국의 군대들이 광주에서 벌어진 봉기를 진압하도록 승인했다. 이러한 묵인의 결과로 수백 명의 시민들이 사망하게 되었다.

이 문서들은 정보공개법에 의거해 팀 셔록이 획득한 것들이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언론인 팀 셔록은 인권운동가로 오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이 문서들을 좌파 외교정책 싱크탱크 웹사이트인 ‘포린 팔러시 인 포커스(Foreign Policy in Focus)’를 통해 폭로했다.

셔록은 광주에서 봉기가 발발하기 한 달 전, CIA가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의 재야에 대한 전망>이라는 분석 보고서를 펴내면서 한국의 야당 뿐만 아니라 노동계와 학생들의 저항 운동을 너무 안이하게 바라보았음을 지적했다. CIA는 운동권의 저항 움직임이 보다 큰 단위의 노동자 권리 투쟁이나 민주 쟁취 운동에 이를 수준까지는 조직화 되지 못한, 무기력한 상태에 있었다고 치부한 것이다.

1979년 6월에 CIA가 분석한 보고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재야 운동권은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안정을 뒤흔드는 데 실패했다. 이 점은 박정권에 저항하는 세력들이 한국 사회에서 폭넓은 지지 기반에 입각하여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허약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의 보안기관들에 의한 대대적인 사전검열 활동이 저항의 움직임을 잠재우고 있으며, 박정권이 취한 경제적·정치적 주도권 장악 노력이 중요하게 먹혀들고 있다.

이 보고서가 발간된 지 넉 달도 되지 않아 박정희 대통령은 그의 부하인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당하고, 저항 운동이 확산되었다.

CIA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저항 운동 주도 세력들의 숫자가 불과 수백 명 선에서 잘해야 수천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세력들이 연합해보았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한국의 인구가 3,700만 명이었던 점에 비추어 운동권 세력의 숫자를 미미한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평범한 근로 대중들은 학생들의 저항 운동을 철이 들지 않은 무책임한 집단의 움직임으로 보고, 재야의 활동에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고 본 것이다.

셔록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이러한 CIA의 분석은 결과적으로 큰 실수를 저지른 꼴이 되었다. 1979년 10월에 수만 명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부산에서 박정권에 저항하는 운동에 세력을 합쳐 들고 일어나게 되었다. 이듬해인 1980년에는 서울을 포함한 기타 도시에서 수 천 명의 노동자들이 비합법적인 파업을 벌이고 박정희의 후계자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학생부터 노동자와 택시 운전사를 포함하는 거의 5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무장 봉기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당시 서울에 있던 미군 사령관인 존 위컴의 회고록 <벼랑에 선 한국: 12.12사태부터 광주항쟁까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존 위컴은 CIA 한국 책임자였던 로버트 브루스터의 당시 확신을 매우 냉소적으로 비꼬고 있다. 그는 당시 브루스터가 1979년 12월 민간 정부를 뒤엎고 권력을 쥔 전두환 장군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브루스터는 전두환과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의 12.12 사태를 미리 통보받지 못했고, 그저 일상적인 주요 문제에 대해서만 자주 의견을 교환했을 뿐이었다.

브루스터는 ‘전두환이 다소 껄끄러운 상대이기는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므로 그와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위컴은 기록했다.

위컴은 또 브루스터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는 기록도 남겼다.

“우리는 전두환이 원한다면 그가 정권을 장악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전두환의 정권 장악 시도가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한국 내부의 상황이 위험에 빠지지 않으며,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전두환을 도와야 한다.”

브루스터는 퇴임한 후 CIA가 수여하는 정보 훈장을 받고, 1981년 암으로 사망했다.
브루스터의 조언이 있은 후 6개월이 지나 광주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위키리크스의 스트랫포 문건]
세계 최대 군사정보 싱크탱크인 스트랫포(Stratfor)의 내부 메일 문서다. 조지 프리드먼이 설립한 스트랫포는 ‘민간CIA’로 불릴만큼 전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각국 정보기관의 기밀문건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해 전 세계 정부, 정보기관, 군사기관, 대기업들에게 프리미엄제로 비밀리 제공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최석진, 최정미, 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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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ROK/DPRK/MIL/CT- HISTORY-

CIA documents detail false predictions on Korea

Released on 2013-11-15 00:00 GMT

Email-ID 1649154
Date 1970-01-01 01:00:00
From sean.noonan@stratfor.com
To os@stratfor.com
US/ROK/DPRK/MIL/CT- HISTORY- CIA documents detail false predictions
on KoreaCIA documents detail false predictions on Korea
By Jeff Stein | June 2, 2010; 4:15 PM ET
http://blog.washingtonpost.com/spy-talk/2010/06/declassified_cia_documents_on.html?wprss=spy-talk

 

Declassified CIA documents on South Korea show that the spy agency was
surprised by the 1979 assassination of its dictatorial president by his
intelligence chief, did not anticipate the military coup d’etat that
ensued, and dismissed the strength of growing unrest that eventually
erupted in near-civil war.

Following the coup, in May 1980, protest and civil unrest in the southern
city of Kwangju plunged the country into near anarchy. President Jimmy
Carter, upon the advice of the U.S. State Department and the CIA, and
fearing North Korea might take advantage of the instability, authorized
U.S.-led South Korean troops to put down the Kwangju a**uprising,a**
resulting in the deaths of hundreds of protesters.

The documents were obtained under the Freedom of Information Act by Tim
Shorrock, a Washington-based journalist and longtime human rights
activist, who published them Tuesday on the Web site of Foreign Policy in
Focus, a project of the left-leaning Institute for Policy Studies.

Shorrock reports that a**months beforea** the uprising, a**in an analysis
entitled a**The Outlook for President Pak [Chung Hee] and South Korea’s
Dissidents,a** the CIA dismissed the worker and student resistance, as
well as the political opposition, as unorganized and ineffectual and
unable to muster public sympathy for its demands for greater democracy and
worker rights.a**

The CIAa**s June 1979 analysis read:

a**The failure of the underlying malaise to disrupt domestic
tranquility in South Korea so far reflects inherent weaknesses of the
dissident movement, including the inability of Paka**s critics to
articulate goals with broad appeal in Korea. Beyond this, the massive
precautions taken by government security forces to head off disturbances
and the positive economic and political initiatives the Pak government has
taken to strengthen key bases of supporta*|have been especially important
a*|a**

Less than four months later, Park was assassinated by his intelligence
chief. Protest spread.

The CIA estimated that chances of the opposition coalescing were
a**a**smalla** because South Korea’s active dissentersa** numbered from
a**the hundreds to perhaps a few thousand,a** in a country of 37 million.
Moreover, a**the average Korean wage earnera** saw student protest as a
a**reflection of immaturity and lack of real responsibilitiesa** and was
unlikely to participate in dissident politics.

Shorrock adds:

a**This analysis turned out to be a colossal mistake. In October 1979,
tens of thousands of students and workers joined in anti-Pak
demonstrations in the industrial city of Pusan. The next year in Seoul and
other cities, thousands more workers organized wildcat strikes and joined
students in daily demonstrations against Park’s successors. And in Kwangju
in May 1980, nearly half a million people, from students to factory
workers to cab drivers, took part in the armed rebellion.a**

Much of the same ground has been covered elsewhere, notably in a memoir,
a**Korea on the Brink: From the a**12/12 Incidenta** to the Kwangju
Uprising, 1979a**1980,a** by Gen. John A. Wickham, commander of U. S.
forces in Seoul at the time.

Wickham somewhat wryly recalls assurances by the CIA station chief, Robert
G. Brewster, that he had a**developed a close relationshipa** with Gen.
Chun Doo-hwan, who had overthrown the civilian government on Dec. 12, 1979
— a**not close enough to have been warned in advance of Chuna**s move on
December 12, but close enough that the two frequently consulted on
important matters. He offered me that channel if I ever needed it.a**

Brewster, Wickham says, told him Chun was the a**only horse in town and we
have to work with him, even if it has to be at arma**s length.a**

a**We have to do our best to assure that Chuna**s movement toward total
control over the political structure, if thata**s what Chun intends, is
accomplished in legitimate ways and without jeopardizing domestic
stability or provoking a North Korean intervention,a** Brewster advised,
according to Wickham’s account. Brewster, who received the CIA’s
Distinguished Intelligence Medal when he retired, died from cancer in
1981.

Six months after Brewster rendered his advice, Kwangju erupted.


Sean Noonan
Tactical Analyst
Mobile: +1 512-758-5967
Strategic Forecasting, Inc.
www.stratf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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