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단독] 미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까?

최유진 기자=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타계한지 8년이 지났지만, 최근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흥행몰이를 하면서 추모 열기가 되살아나는 상황이다.

한편으로 역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재임기간 중 ‘한반도 정책에서 미국의 노선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겠다’며 대립각을 세웠던 탓에, 그를 불편하게 여겼던 미국은 그의 죽음을 대한민국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매우 세심하게 살핀 것으로 알려진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주한 미국 대사관의 비밀 외교전문(Confidencial)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미국 내부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 문서는 미국 대사관(대사 캐슬린 스티븐슨)이 작성해 중국대사관, 주일 미군사령관, 주한 미군사령관, 일본대사관, 국가안보위원회, 러시아대사관, 국방부장관, 국무부장관, 대만대사관, 미국 태평양사령부 등 한중러 관계 대사관과 군 사령부에 보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타계한지 10여일 후 작성된 ‘노무현 대통령 서거로 본, 저항 수단으로서의 자살’ 주제의 문서는 “그가 현직에 있을 때 인기도(28%)에 비하면 과도한 추모 분위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 대사관은 “유무죄를 떠나 그의 죽음은 마치 순교자처럼 하나의 전설로 자리잡게 됐다”며 “한국 대중들의 반응(추모 열기)은 정치적 저항의 한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 나라의 역사적 전통과 관련이 깊다”고 진단했다.

대사관은 그의 자살 이유에 대해 검찰 조사 보다는 극심한 우울증에 무게를 뒀다. 전문은 “노무현의 자살은 자살을 항거의 수단으로 선택했던 이전 활동가들이 이룬 성과와 비슷한 결과를 내고 있다”며 “그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드러내고 지지자들을 반정부 운동의 길로 이끌어내고 있다”고 피력했다.

♣다음은 미국 대사관의 외교전문이다. (2009년 6월 5일)

[한국에서의 자살 :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과 관련하여]

◊날짜 : 2009년 6월 5일
◊문서 형태 : 전송 문서(Telegram, Cable)

◊송신 : 대한민국 서울(SOUTH KOREA SEOUL)
◊수신 : 중국 베이징, 주일 미군 사령관, 주한 미군 사령관, 일본 도쿄, 국가안보 위원회, 러시아 모스크바, 국방부장관, 국무부장관, 대만 타이페이시티, 미국 태평양 사령부

  1. 요약

5월 23일 발생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이 한국 대중들 사이에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고 있는데, 현직에 있을 때 그의 인기도에 비하면 과도한 추모 분위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주기도 한다. (노 전대통령이 2008년 2월 퇴임할 때의 지지도는 28%에 불과했다.)

스스로 부정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이라고 여겼던 노 전대통령은 지난 3월 자신의 아내가 부산의 사업가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자인함으로써 지지자와 반대파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그는 자살을 선택함으로써 그에게 씌워질 오명을 일소해버렸다. 유무죄 여부를 떠나 그의 죽음은 마치 순교자처럼 하나의 전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 대중들의 반응은, 정치적 저항의 한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 나라의 역사적 전통과 큰 관련이 있다. 1970년부터 시작해서 지난달까지도 계속된 저항 운동을 통해서 극단적 활동가들은 불의를 환기시키고 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해왔다.

노 전대통령 자살의 직접적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죽음은 민주화 운동 기간에 일어났던 자살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특히나 노 전대통령 자신이 그러한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또, 그의 자살은 검찰 조사의 부당성과 점차 가중되고 있는 현 정부의 권위주의로의 회귀를 대중들에게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1. 전반적 상황

대한민국은 2009년 현재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다른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자살률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한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그 비율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며, 이러한 추세는 1997년의 아시아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그 정도가 증가하고 있다.

학자들은 자살률의 증가를 기본적으로는, 사회 안전망의 부족이나 소득 불평등, 그리고 더딘 사회 통합 노력 같은 사회적 요인 탓으로 돌린다. 한국에서는 75세 이상 노령 인구의 자살률이 15세에서 24세에 이르는 젊은 층의 자살률보다 10배는 더 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 유명인의 자살률도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지난 한 해 몇몇 여배우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1. 자살로 항거한 역사

대한민국에서 자살은 정치적 저항 운동의 강력한 수단 역할을 해왔다. 1970년 22살의 봉제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조건과 저임금의 부당함을 부르짖으며 거리에서 분신자살했다. 그의 자살이 계기가 되어 자유 민주주의를 주장하던 학생 운동권이 열악한 노동 조건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때까지의 학생 운동은 주로 관념적 투쟁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1970에서 2004년 사이에 107명의 한국인들이 자살을 저항의 수단으로 선택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방법은 분신자살이다.(78명, 73%) 그 다음으로 11명이 투신자살을 선택했고, 8명이 목을 매달았으며, 6명은 음독, 3명은 할복을 선택했다.

증가세가 줄고는 있다 해도 4월 30일에도 한국화물운송노동자노조의 광주 지부장이 76명의 화물노동자의 해고에 반발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부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유서를 통해 “우리는 힘든 싸움을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저항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의사를 전달하고자하는 강한 욕구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정부의 부당함에 도덕적으로 도전하고 대중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감행한다는 것이다. 자살이라는 행위는 기존의 정치, 경제 체제에 대한 궁극적인 저항의 표시이다. 대중들은 자살이라는 절박한 행위로부터 부당함을 뼈저리게 자각하고 자살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식의 자살이 특별히 호소력을 지닌 듯해 보이고, 대중들을 동원하는 데 일정부분 성공해온 것처럼 보인다. 유교 문화의 뿌리가 깊은 한국에서는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죽음은 칭송할 가치가 높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러한 점 또한 저항 운동으로서의 자살에 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1. 코멘트

노무현 전대통령의 경우에는, 그가 남긴 유서로 보아 가족의 재무 상태에 대한 검찰의 조사가 자살의 직접적 원인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자살의 원인을 극심한 우울증 탓으로 돌리고 있기는 하다. 그가 유서에서 심한 불면증을 거론하고 먹지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고 호소한 점으로 보아 우울증을 의심할 수는 있지만, 그가 왜 이러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대중들의 광범위한 애도 분위기는 그가 임기 말년 무렵에 감내해야 했던 비난과 낮은 지지도와 상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살은 이명박 정부와 검찰에 대한 대중적 분노를 충동하고 있다. 이러한 애도 분위기는 장례식을 전후해서 더 많은 대중들을 저항 운동으로 유도하고는 있지만, 이 기간 동안 경찰의 봉쇄 움직임 또한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전대통령의 자살은 자살을 항거의 수단으로 선택했던 이전 활동가들이 이룬 성과와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드러내고 지지자들을 반정부 운동의 길로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문서 원문] SUICIDE IN KOREA: ROH’S DEATH IN CONTEXT

https://wikileaks.org/plusd/cables/09SEOUL895_a.html

SUICIDE IN KOREA: ROH’S DEATH IN CONTEXT
2009 June 5, 07:28 (Friday)
09SEOUL895_a
CONFIDENTIAL
CONFIDENTIAL

In the metadata of the Kissinger Cables this field is called ‘Previous Handling Restrictions’.Cablegate does not originally have this field. We have given it the entry ‘Not Assig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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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SEOUL 00823 C. SEOUL 00853 Classified By: POL Joseph Y. Yun. Reasons 1.4 (b,d). 1. (C) SUMMARY: The May 23 suicide of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sparked a public outpouring of grief seemingly disproportionate to the man’s popularity — he left office in February 2008 with approval ratings of only 28 percent. Roh, who touted himself as a corruption-free politician, shocked supporters and opponents alike in admitting in March that his wife had indeed accepted funds from a Busan businessman. In death, however, Roh has revamped his image. Far from proving his guilt, Roh’s suicide has become the stuff of legends, even of martyrs. The reaction of the Korean public stems in large part from the country’s history of suicide as a form of protest. Beginning in 1970 until as recently as last month, ardent Korean protesters have killed themselves as a means of highlighting injustice and mobilizing supporters. Regardless of Roh’s real motivation in taking his life, for many Koreans his death was reminiscent of suicide protests during the democracy movement — in which Roh played an active role — and highlighted the injustice of the prosecutor’s investigation and the allegedly increasingly authoritarian bent of the current administration. END SUMMARY. ————————— An All-to-Common Phenomenon ————————— 2. (SBU) The Republic of Korea, as of 2009, had the highest suicide rate of any OECD country. While most developed countries have experienced a decline in suicide since the 1970s, Korea is one of a handful of countries in which the rate continues to climb, showing a sharp increase starting with the 1997 Asian Financial Crisis. Scholars attribute the rise in suicides primarily to social factors — lack of a social safety net, growing income inequality, and weakening social integration. Older Koreans (above the age of 75) are ten times more likely to commit suicide than young people (aged 15-24). Celebrity suicide is also relatively common. In the last year several well-known actresses have taken their own lives. ————————– History of Suicide Protest ————————– 3. (SBU) Suicide has also been a powerful form of protest in Korea. In 1970, Chun Tae-il, a twenty-two year old garment worker, immolated himself on the street to protest working conditions and wages. His suicide became a pivotal event and brought labor issues to the attention of student activists arguing for liberal democracy, a movement that had, until then, existed mainly on the philosophical level. Between 1970 and 2004, 107 Koreans died from the act of suicide protest. Self-immolation was the predominant form of protest representing 73 percent (78 people) of the total. Other protestors threw themselves from buildings (11), hanged themselves (8), drank poison (6), or disembowled themselves (3). Although the trend has slowed, on April 30 the head of the Korea Cargo Transport Workers’ Union Gwangju Chapter took his own life to protest the firing of 76 delivery drivers. The suicide note he left his wife said, “We must win the dark fight.” 4. (C) Scholarship on the topic contends that the use of suicide protest is primarily a means of communication intended to challenge the government morally and awaken public consciousness. The act of suicide is the ultimate gesture of denial of the existing political and economic systems. Such a dire act conveys the depth of the individual’s sense of injustice and compels the community to avenge the deceased. In Korea, such protests seem to have a certain appeal and have often been at least partially successful in mobilizing supporters. In the Confucian tradition, which has had a profound influence on Korean culture, death for moral justice is considered praiseworthy, which perhaps has provided another incentive for such suicides. ——- Comment ——- 5. (C) In Roh’s case, it is clear from Roh’s suicide note that his intent was not to protest the prosecutors’ investigation into his family finances. Why he felt driven to such extreme measures remains a mystery, although many analysts have pointed to deep depression as the likely cause; certainly references in Roh’s suicide note to his inability to sleep, eat or read books seem to support this. The scale of public grief over Roh’s death belies the low approval ratings and public censure Roh experienced during the end of his term. Nevertheless his suicide has provoked public outrage at the Lee Administration and the prosecutors. It also prompted calls for more protests, which have been largely blocked by the impressive police presence deployed before, during, and after the funeral. Consequently, Roh’s death fulfilled goals similar to those of suicide protests — it demonstrated his unjust treatment and mobilized supporters to oppose the government. STEPH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