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허를 찌른 북한의 권력 승계… 김정은 아니었더라면?

지산하 기자= 최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33)이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불행히도 그 파워는 국민들을 잘 이끄는 힘이 아니라 핵과 미사일로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게 문제다.

아무리 미국과 유엔이 대북제재를 강화하더라도 끝내 미 대륙에 도달할 핵폭탄 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만일 김정일이 김정은이 아닌 장남 김정남이나 차남 김정철, 또는 기술관료를 후계자로 지명했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대부분 전문가들은 김정남, 김정철, 기술관료 등 누가 후계자를 맡더라도 현재보다는 훨씬 유연하게 대외정책을 폈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정일이 각종 질병으로 쇠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 미국으로서도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따라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2006년 2월 정치참사관을 통해 한국 최고의 북한 전문가들을 면접조사해 북한의 후계구도에 대해 진단할 것을 지시했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국무부 보고문서는 당시 6명의 북한전문가들 가운데 절반 이이 ‘차남 김정철’을 차기 승계자로 꼽았으며, 절반은 김정철 또는 김정은 중 선택하든지 아니면 기술관료 중 선택하는 방법을 취할 것으로 답변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2009년 9월 김정은을 차기 후계자로 지정한 뒤 2011년 12월 사망했다. 전문가들의 허를 찌른 셈이다.

김정은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은 2013년 고사포로 처형됐다. 또 장남 김정남은 지난 2월 동남아에서 피살됐다.

전문가들은 김정남이 2001년 도미니카공화국 워조여권 사건으로 김정일의 눈 밖에 났고, 김정철의 경우 나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정은과 경쟁관계였음에도 살아남았던 김정철은 현재 ‘개인 악단’활동을 하는등 철저하게 권력과 거리가 먼 삶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권력 승계: 누가 김정일을 승계할 것인지, 언제 그럴 것인지 대한민국의 관측 엇갈려

대한민국 학계는 정치참사관들에게 최근 몇 주에 걸쳐 인터뷰를 받고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이 근래에 후계자를 지명할 것인지 아닌지, 또 그가 그 아들 중에서 하나를 고를 것인지 아니면 김씨 가족 외부에서 후계자를 찾을 것인가로 의견이 나뉘었다.

한 학자는 김정일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 그의 아버지에게 가장 총애를 많이 받는다고 주장했지만 대부분은 김정일의 차남인 김종철이 가장 유력한 계승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김정일의 아들들이 너무 어리고 지도자를 맡을 자격을 갖기엔 미숙하여 김정일이 그의 가족 외에서 계승자를 찾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 남한 고위 외교관은 김정일이 그의 아들 중 하나를 명목상 지도자로 두고 실질적인 정치 권력은 다른 곳에 둘 것이라고 말하며 두 결과가 동시에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김정일의 노쇠는 후계자를 지명하는 빠른 움직임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북한이 계승에 관한 그 어떤 진지한 논의가 진행되기 전에 체제에 더 유리한 안보 환경을 확보해야 하며 국가의 저조한 경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을 강조하는 가운데 계승 시기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약끝

쏟아지는 최근의 남한과 외신 보도에서는 북한이 그 지도자인 김정일이 곧 그의 후계자를 지명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 참사관은 지난 몇 주 동안 이에 대해 논의하고 승계 문제에 관한 그들의 견해를 구했다.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최진욱 박사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겸 기획조정본부 부장 전현준 박사
  • 대외경제정책 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 팀장 조명철 박사
  • 세종연구소 동북아시아 안보전략연구실 선임연구원 이상현 박사
  • 동국대학교 고유환 북한학 교수
  •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학장 류길재 박사

◇“언제”와 “누가” 될 것인가에 나뉜 견해

남한 학계는 누가 김정일을 계승할 것이며 북한이 후계자를 언제 발표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로 첨예하게 나뉘어져 있다.
절반은 김정일의 차남인 김정철이 가장 유력한 후계자라고 생각하는 반면 나머지 절반은 또다시 김정일이 그의 두 아들 중 한 명을 후계자로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그의 가족과 관련 없지만 적격인 기술관료를 선택할 것인지로 나뉜다.

또한 후계자 발표 시기에 관해서도 이르면 다음해에서 북한이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눈에 띄게 해결이 될 시점 이후의 불특정미래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후계자는 이르면 2007년에 지명될 수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김정일이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이 가까워졌고 그 발표가 이르면 김일성의 생일 95주년을 기념하는 2007년4월 15일에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인 전현준 박사가 본 바로는:
– 김정일은 늙어간다;
– 모두 상대적으로 어린 그의 아들들은 승계를 준비하기 시작해야 한다;
–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의 죽음 전과 후에 했던 것처럼 그를 잇는 후계자로 지목되기 전과 후로 자신의 지지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길고 고된 과정을 거쳤다.
– 북한은 특별한 기념일들을(김일성의 탄생 95주년과 같은) 거창한 정치적 행사로 기념하려는 경향이 있다.

전씨는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하여 그의 아버지 생일 95주년은 김정일이 그의 후계자를 발표하기에 알맞은 시기라고 결론 내렸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그의 후계자를 준비하는 데 낭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고 또한 축하 행사 중에도 김일성의 이미지는 대중들에게 김씨 가문의 유산이 이어져야 한다는 시각적 암시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평양으로부터의 “신호”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상현 박사는 김정일의 아들들이 후계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데 필요한 고위층과 군 관계자들의 정치적 지지를 모으는 데 필수적인 자격을 갖추어 가는 데에 십 년 혹은 더 걸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일이 64세였을 때부터, 설사 그가 계승 작업을 바로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의 아들이 그의 자격을 갖출 즈음에는 70대 중 후반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모두 계승이 이루어지게 하는 빠른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보여지게 한다.
사실 이씨는 승계에 대한 준비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징후가 평양에서 있었다고 주장했다.

첫째, 2002년에 김정일의 차남과 삼남(김정철과 김정은)의 어머니인 김정일의 셋째 부인인 고영희에 대한 개인 숭배가 형성되었다.
이것은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이 김일성이 김정일을 그의 후계자로 지목하기 직전에 신격화되었던 것을 연상시킨다고 이씨는 말했다.

둘째로, 2004년 김정일은 그의 고모부인 장성택, 그리고 조선노동당과 군부 내 그의 측근과 보좌관들을 경질시켰다.
장성택은 2006년 1월부터 공개 석상에 등장하지 않았고, 보도에 따르면 조선노동당에서 이전보다 훨씬 적은 권한을 가진 다른 지위로 옮겼다고 여겨진다.
이씨는 이것이 승계 문제에 손대지 말라는 김정일의 –- 그의 숙청 이전까지는 북한 정계 내에서 권력 2순위로 여겨졌던 — 장성택에 대한 명확한 경고라고 말했다.

셋째, 아마 계승에 대한 준비가 2006년에 시작할 수도 있다고 암시하도록 북한의 2006년 신년공동사설과 다른 공식 선전물이 “혁명의 제 3,4세대”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김정일은 다수의 김일성 세대의 내각 원로들을 2003년 박봉주를 총리로 삼는 것으로 시작하여 젊은 관료들로 대체했고 이 젊은 관료들은 그들의 연로한 동료들보다 젊은 후계자를 더 환영할 것으로 보인다.

◇좋지 않은 시기: 김정일은 안보와 경제를 더 우선적으로 원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직까지 나온 승계 과정에 대한 증거가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국대학교 북한학 교수 고유환 박사는 북한의 절박한 안보와 경제적 문제에 있어서 승계를 염두에 두고 김정일 또는 그의 신봉자가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김일성이 죽기 몇 년 전 김정일이 사실상 가장 실질적인 권력을 그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았다는 보도에 주목하면서 고 박사는 김정일이 만약 너무 이르게 후계자를 발표한다면 정치적 재편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레임덕을 겪고 위태로워지기 전에, 김정일은 미국의 경제적 제재를 해제하고 테러 지원국 명단에서 탈퇴하고, 미국과 북한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북한의 경제적 상황이 향상되고 국가의 안보 문제가 해결되게 하고자 한다.

현재 6자회담에서의 교착 상태를 감안할 때, 후계자 지명을 향한 실질적인 움직임은 따라서 거의 없을 것이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최진욱박사 역시 비슷하게 북한은 후계자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2007년 계승을 예측할 때 확실한 증거보다는 가정에 근거한 주장으로 뒷받침한다고 경고했다.

김정일은 그의 후계자를 지지하는 척 한 채로 그의 권한에 도전하는 관료들을 끊임없이 철저한 감시를 유지했다.

불복종에 대한 김정일의 극단적인 편집증의 한 예로, 최 박사는 김정일이 모든주요 내각 부처와 조선노동당 내 부서를 뽑는 데 그 책임을 자신의 측근을 제 1부총리와 부위원장으로 삼아 지게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료들은 모두 총리와 위원장을 회피하여 연로한 당원을 허수아비로 두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했다.

김정일의 밀착감시 시스템은 그 누구도 보복을 감수하지 않고는 승계에 대해 언급도 못하도록 효과적으로 방지했다.
게다가 12월에 승계에 대한 논의를 금지하는 김정일의 보고된 명령은 그만이 유일하게 그의 후계자를 선택할 것이고 그가 고르는 시기에 선택할 것이라고 명확하게 보여준다.

◇둘째 아들?

우리가 자문한 학자 6명 중 4명은 김정일이 그의 후계자를 세 아들 중에서 고를 것이고, 4명 중 3명은 김정일의 차남이자 고영희의 첫째 아들인 김정철을 명백한 후계자로 꼽았다.

세종연구소의 이 박사는 이러한 요인들을 합친 것이 김정남이라는 이복 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철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만든다고 단언했다.
김정철의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되기 전에 자신의 첫 번쨰 경력을 쌓았었던 두 부서 – 에서의 김정철의 직위 뿐만 아니라 김정철의 어머니인 고영희에 대한 신격화 보고는 김정철이 김정일을 승계할 것이라는 강력한 증거이다.

김정철의 사진(아래 원내)이 김정일의 당국 사무실에 전시되어 있다는 최근의 보도가 정확하다면, 1월에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가 동행했으며 김정철이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의 무덤 앞에 꽃을 놓았던 것이 나아가 그가 김정일을 승계할 것이라는 주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이 박사는 이야기했다.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류길재 박사도 이 박사의 분석에 공감했다.

류 박사는 한국의 전통은 상속 문제에 있어 보통 장남을 선호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2001년 도미니카 공화국의 위조된 여권으로 여행하다가 일본에서 추방되었을 때 크게 힘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의 낭패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어머니인 성혜림이 김정일과의 관계를 좋지 않게 끝냈다는 사실은 이미 김정남에게 불이익이었다고 류 박사는 주장했다.

◇어쩌면 셋째 아들일수도

김정철의 명백한 우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셋째 아들, 21세의 김정은은 일축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통일연구원의 전현준은 단언했다.

김정일의 전 일식 요리사 켄지 후지모토와 같은 많은 관측통들은 김정일이 다른 아이들보다 김정은에게 더 큰 애정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후지모토는 그의 회고록에 김정일이 김정은을 자신을 생김새와 성격 모두 자신을 닮았다고 예뻐했었다고 기록했다.

김정일은 김정철을 비교적 강한 지도자가 되기엔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전 박사는 김정철이 여성의 2차성징 징후를 보이는 최근 보고가 나타내듯 체내 여성호르몬 수치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정일이 그의 군사를 제 1로 여기는 정책을 이어가 주리라 믿는 누군가에게 그 어떤 “나약한” 특성에 얼굴을 찌푸릴 그를 계승할 기회를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다.

◇전임 북한 학자 또한 왕조의 계승을 예상한다

1994년 탈북한 김일성 종합대학의 경제학자는 북한의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서 김정일의 후계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그의 아들 사이에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일가는 북쪽에서 우상화되었고, 이는 북한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김씨 혈통을 존경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관료들이 김정일의 아들이 만약 고위직에 있고자 한다면 즉각 지지를 모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유일한 진짜 의문은 김정일이 어떤 아들을 고를 것인가이다.

조씨는 계승이 그 가족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두 번째 이유를 왕조 형태가 아닌 승계가 후계자에 의해 그 전 지도자들에의 심각한 위기를 야기했던 전 소비에트 연방의 계승 역사라고 주장했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업적과 신격화가 모두 유지하는 것을 보장하는 데 관심이 컸던 김정일은 그의 후손 사이에서 고르는 것 외에는 선택권이 없었다.

◇먼저 집무실을 손아귀에 넣어 아버지의 기를 흔들고 그 자리를 따낸다

조씨는 북한 엘리트 사이에서 살았던 경험에 비추어(그의 아버지는 전 건설부 부장 조철준이다) 어떤 아들이 먼저 지위를 굳건히 하고 그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이는 자가 김정일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김정일의 이복형제들과 수년간 학교를 같이 다니며, 조씨는 고등학교 때까지 그의 학창시절에 김일성은 김정일의 이복 형인 김병일을 후계자로 훨씬 더 선호했었다고 회고했다.
김일성의 둘째 부인이자 김평일의 어머니인 김성애는 김정일보다 13살이 어린 김평일의 초등학교, 중학교 12년 과정을 11년으로 단축시켜 김일성 종합대학을 일찍 졸업할 수 있게 하고 정부 업무를 시작하게 하기까지도 했다.

김평일이 졸업할 즈음 김정일은 이미 주요 영역을 손아귀에 넣고 그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유일하게 그를 계승할 수 있다고 설득해 놓았다.

◇아니면 설마 기술관료

통일연구원 최진욱은 김정일의 자녀가 아마 핵문제나 경제 상황 개선에 대한 해결책을 들고 오는 것 만큼이나 지금의 도전들에 난투를 성공적으로 벌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않을 만큼 왕조의 또 한 세대가 계승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아들들은 북한에서의 커다란 변화를 관리할 능력을 기를 만한 충분한 시간이 없을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후보는 따라서 군부나 내각, 또는 조선노동당 내 지위가 올라갈 것이다.

그는 또한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북한의 유산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동국대학교 고유환은 또한 김정일의 후계자는자격을 굳건히 갖춘 기술관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정일이 수년간 자신의 승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쓴 자신의 “후계자 이론”에 주목하여 고유환은 김정일의 글들이 그의 후계자에 대한 이상적인 자질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김정일은 그의 후계자가 그와 노동자의 혁명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을 보여야 한다고 기대했다.

후계자는 지도력과 강력한 도덕성,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념에 대한 철두철미한 지식, 그리고 국제와 국내 정사에 모두 능통함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또한 실제 성취를 통해 대중들로부터 절대적인 자신감을 향유해야 한다.

이런 기준 하에, 김정일의 아들들은 아마 유력한 후보가 아니었을 것이다.

예컨대 대부분이 만약 모든 아들들이 서양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이념적으로 불순하다”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고씨는 북한 당국의 발표가 혈족 계승의 필요를 밝히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씨와 고씨는 김정일을 승계하기 위해 기술관료 중에서 잠재적 후보자를 확인하는 것이 그의 아들 사이에서 승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인정했다.

◇북한의 관료들은 이 시점에서 충분히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다가 2003년 군부와 조선노동당 관료를 거치지 않고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급부상한 백세봉이라는 정식 인사에 주목했다.
학자들은 백세봉이 장차 김정일에게 관리되고 있고 그를 승계할 누군가의 가명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참고: 백세봉은 기술관료일 필요가 없다; 일부 관측통은 그가 김정일의 아들 중 하나의 가명이라고 추측한다. 참고 끝.)

◇일본식 모델

전 국가 안보 보좌관은 몇 달 전에 북한이 실질적인 권력을 다른 곳에 두고 왕가는 형식적인 우두머리로 대리하는 “일본식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해결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가설 하에서 김정일은 그의 아들 중 하나를 형식적인 지도자로 취함으로써 정권의 정당성을 지키고 사람들의 눈에는 그의 자녀들의 안녕을 보장하는 것으로 비쳐지고 그의 유산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아들 중 나라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김정일은 한 명 이상의 기술관료를 정부에 투입할 것이다.

일본의 왕가와 같이 김씨 일가는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을 것이다.

조명철은 이런 제도가 김정일의 당 이념이나 계승 이론에 반하여 북한에서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 버시바우 –

■ THE DPRK LEADERSHIP SUCCESSION: ROK OBSERVERS DIVIDED ON WHO WILL SUCCEED KIM JONG-IL, WHEN HE WILL DO IT

Date:2006 February 23, 07:58 (Thursday) Canonical ID:06SEOUL595_a


DIVIDED ON WHO WILL SUCCEED KIM JONG-IL, WHEN HE WILL DO IT

SUMMARY

  1. (SBU) ROK academics interviewed in recent weeks by poloff
    were divided on whether North Korean leader Kim Jong-il would
    name his successor in the near future, and on whether Kim
    would choose one of his sons as his heir or seek outside the
    Kim family. Most believed Kim Jong-il’s second son, Kim
    Jong-chul, was the most likely heir, although one scholar
    asserted that third son Kim Jong-un was his father’s
    favorite. Others argued, however, that Kim’s sons are too
    young and inexperienced to develop the credentials needed to
    assume leadership and predicted Kim Jong-il would reach
    outside his family for a successor. A senior South Korean
    diplomat managed to predict both outcomes at the same time,
    saying Kim would install one of his sons as a figurehead
    leader while real political power would lie elsewhere. There
    was also no consensus on the timing of the succession, with
    some of our contacts emphasizing that Kim Jong-il’s advancing
    age mandated rapid moves toward designating a successor,
    while others believed the DPRK would need to secure a more
    favorable security environment for the regime and improve the
    nation’s abysmal economic conditions before any serious
    discussion on succession could take place. END SUMMARY.

  2. (SBU) A flurry of recent South Korean and foreign reports
    have speculated that North Korea was signaling its leader,
    Kim Jong-il, would soon name his successor. Poloff engaged
    the following Embassy contacts over the past few weeks to
    discuss these reports and solicit their views on the
    succession issue:

  • Dr. Choi Jin-wook, Senior Research Fellow, Korea Institute
    of National Unification (KINU);

  • Dr. Chon Hyun-Joon, Senior Research Fellow and Planning and
    Coordination Division Director, KINU;

  • Dr. Cho Myungchul, Head of the Office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for Korean Unification, Korea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 Policy (KIIEP);

  • Dr. Lee Sang Hyun, Senior Research Fellow for Northeast
    Asian Security, Sejong Institute;

  • Dr. Koh Yu-hwan, Professor of North Korean Studies, Dongguk
    University; and

  • Dr. Ryoo Kihl-Jae, Dean of Academic Affairs, College of
    North Korean Studies, Kyungnam University.
    .

VIEWS DIVIDED ON “WHEN” AND “WHO”

  1. (SBU) The South Korean academics were sharply divided on
    the questions of who would succeed Kim Jong-il and when the
    DPRK would announce the successor. Half thought KJI’s second
    son, Kim Jong-chol, was the most likely heir, while the other
    half were split among those who believed KJI would choose as
    his successor one of his other two sons or a well-qualified
    technocrat who was not related to the Kim family. They also
    diverged in their views on the timing of announcing a
    successor, from as early as next year to a non-specific point
    in the future when, after the DPRK presumably resolved many
    outstanding security and economic issues, KJI would feel more
    secure about revealing his heir.
    .

SUCCESSOR COULD BE NAMED AS EARLY AS 2007

  1. (SBU) Some of the analysts believed KJI was close to
    naming a successor and that the announcement could come as
    early as 2007, timed to the 95th anniversary of the birth of
    Kim Il Sung on April 15. Dr. Chon Hyun-Joon, Senior Research
    Fellow at the Korea Institute of National Unification (KINU),
    observed that:
  • KJI was getting old;

  • his sons, all relatively young, would need to begin

“preparing” for succession;

  • KJI went through a lengthy and arduous process of
    consolidating his support base before and after being named
    successor to his father, as well as before and after his
    father’s death; and,

  • the DPRK tended to mark special anniversaries (such as the
    95th year since Kim Il Sung’s birth) with grandiose political
    events.

Chon concluded from the totality of these factors that the
95th anniversary of his father’s birth would be an
appropriate time for KJI to announce his successor, partly
because he could not afford to waste any more time in
preparing his heir, but also because the imagery of Kim Il
Sung during the celebratory events would act as a visual
reminder to the masses that the Kim family legacy should live
on.
.

“SIGNS” FROM PYONGYANG

  1. (SBU) Dr. Lee Sang Hyun, Senior Research Fellow at Sejong
    Institute, opined that it could take ten years or more for
    any of KJI’s sons to build up the credentials necessary to
    garner the political support from high-ranking party and
    military officials that would be required to be viable as a
    successor. Since KJI was 64, even if he were to begin the
    succession process immediately, he would be in his
    mid-to-late 70s by the time his son established his
    credentials. These factors all argued in favor of rapid
    moves to establish a successor.

  2. (SBU) In fact, Lee argued, there were indications from
    Pyongyang that preparations for the succession had already
    begun. First, a personality cult had formed in 2002 around
    KJI’s third mistress, Ko Young-hee, who was the mother of
    KJI’s second and third sons (Kim Jong-chol and Kim Jong-un).
    This was reminiscent of the deification of KJI’s mother, Kim
    Jong-suk, shortly before Kim Il Sung named KJI his successor,
    Lee said. Second, KJI removed his brother-in-law, Chang
    Song-taek, and Chang’s close aides from their offices in the
    KWP and the military in 2004. Chang was not seen in public
    until January 2006, when he reportedly assumed a different
    position in the KWP but with far less authority than before.
    Lee said this was KJI’s clear warning to Chang — widely
    thought to have been the second most powerful figure in DPRK
    politics until his purge — to stay out of the succession
    issue. Third, the DPRK’s 2006 New Year’s joint editorial and
    other forms of official propaganda made repeated references
    to “the third and fourth generations of the revolution,”
    possibly hinting that preparations for succession would begin
    in 2006. Finally, KJI had replaced many KWP and cabinet
    “elders” from the Kim Il Sung era with younger officials,
    beginning with Pak Pong Ju as Premier in 2003; these younger
    officials would presumably be more welcoming to a younger
    heir than would their older colleagues.
    .
    BAD TIMING: KJI WANTS BETTER SECURITY AND ECONOMY FIRST


  1. (SBU) Most of the scholars, however, believed that
    available evidence of a succession process was still
    inconclusive. Dr. Koh Yoo-hwan, Professor of North Korean
    Studies at Dongguk University, was skeptical that KJI or his
    confidantes would be in the right frame of mind to
    contemplate succession, given the DPRK’s urgent security and
    economic concerns. Noting reports that KJI had effectively
    wrested most real political power from his father years
    before Kim Il-sung’s death, Koh added that KJI would be
    acutely aware of the potential for political realignment if
    he were to announce his successor prematurely. Before he
    would risk becoming a lame duck, KJI would want to ensure
    that DPRK economic conditions improved and the nation’s
    security concerns were resolved through the lifting of U.S.
    economic sanctions, removal from the list of state sponsors
    of terrorism, advances in U.S.-DPRK relations, and
    normalization with Japan. Given the current stalemate in the
    Six Party process, real movement toward naming a successor

was therefore highly unlikely.

  1. (SBU) Similarly, Dr. Choi Jin-wook, Senior Research
    Fellow at KINU, asserted that the DPRK did not appear to be
    preparing for a successor. He cautioned that most observers
    predicting a 2007 succession based their argument on some
    generous assumptions, rather than on solid evidence. Indeed,
    given the uniqueness of its political structure, Choi
    expressed doubt that the DPRK even had any specific long-term
    plan on succession. KJI maintained a constant vigil against
    any attempts by officials to challenge his authority under
    the guise of supporting his heir. An example of Kim’s
    extreme paranoia about insubordination, Choi said, was KJI’s
    practice of delegating responsibility for all key cabinet
    ministries and KWP departments to his cronies as first vice
    ministers and vice directors. These officials all reported
    directly to KJI, sidestepping the ministers and directors,
    who were elder party officials kept in place primarily as
    figureheads. This system of close monitoring by KJI
    effectively prevented anybody from even mentioning succession
    without risking retribution. Moreover, KJI’s reported order
    in December banning all discussion on succession was a clear
    indication that only he would select his heir, and that he
    would do so at a time of his choosing.
    .

SON NUMBER TWO?

  1. (SBU) Four of the six academics we consulted thought KJI
    would choose his successor from among his three sons, with
    three of the four picking 24-year-old Kim Jong-chol, KJI’s
    second son and the eldest of Koh Young-hee’s children, as the
    heir apparent. Sejong Institute’s Lee asserted that a
    combination of factors made Kim Jong-chol the favorite,
    despite the presence of an older half-brother, Kim Jong-nam.
    The reports of a personality cult forming around Koh
    Young-hee, Kim Jong-chol’s mother, as well as his positions
    in the KWP Organization and Guidance Department and the
    Propaganda and Agitation Department — both offices in which
    KJI had begun his own career before being named successor —
    were strong evidence that Kim Jong-chol would succeed KJI.
    If accurate, recent reports that Kim Jong-chol’s picture was
    displayed along with KJI’s in party officials’ offices, that
    he accompanied KJI to China during his January visit to
    China, and that the young Kim visited and laid flowers before
    the grave of Kim Jong-suk, KJI’s mother, would further
    support the argument that he would succeed KJI, Lee said.

  2. (SBU) Dr. Ryoo Kihl-Jae of Kyungnam University’s College
    of North Korean Studies echoed Lee’s analysis. Noting that
    Korean tradition typically favored the eldest son in matters
    of family inheritance, Ryoo argued that KJI’s first son, Kim
    Jong-nam, was effectively put out of the running when he was
    deported from Japan in 2001 for traveling on a falsified
    Dominican Republic passport. Even without the fiasco in
    Japan, however, the fact that his mother, Song Hye-rim, had
    ended her relationship with KJI on a bad note was already a
    disadvantage for Kim Jong-nam, Ryoo argued.
    .

PERHAPS EVEN SON NUMBER THREE

  1. (SBU) Despite Kim Jong-chol’s clear advantages, KJI’s
    third son, the 21-year-old Kim Jong-un, ought not be
    dismissed, asserted KINU’s Chon Hyun-joon. A number of
    observers, such as KJI’s former Japanese chef Kenji Fujimoto,
    asserted that KJI showed greater affection for Kim Jong-un
    than for his other children. Fujimoto wrote in his memoirs
    that KJI adored Kim Jong-un for resembling himself, both in
    image and in personality. KJI thought Kim Jong-chol, in
    contrast, was “too effeminate” to be a strong leader. In
    fact, noted Chon, Kim Jong-chol might have problems with the
    levels of estrogen in his system, as recent reports indicated
    that he exhibited female secondary sex characteristics. This
    would seriously impede his chances of succeeding KJI, who
    would frown upon any “unmasculine” characteristics from
    someone whom he would trust to continue his military-first
    policy.
    .
    FORMER DPRK ACADEMIC ALSO PREDICTS DYNASTIC SUCCESSION

  1. (SBU) Dr. Cho Myungchul of the Korea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 Research, a former professor of
    economics from North Korea’s Kim Il Sung University who
    defected to the ROK in 1994, said that in the DPRK’s cultural
    and political context, the successor to KJI would undoubtedly
    come from among his sons. The entire Kim family was idolized
    in the North, meaning that the people of North Korea
    automatically revered all offspring of Kim lineage. It
    naturally followed that officials would be able to rally
    support immediately for a son of KJI if he were to assume a
    high-profile position. The only real question was which son
    KJI would choose.

  2. (SBU) Cho argued that a second reason why succession had
    to take place within the family was the history of succession
    in the former Soviet Union, which demonstrated that
    non-dynastic succession resulted in severe criticism of
    former leaders by their successors. KJI, who had every
    interest in ensuring that both his accomplishments and his
    idolization remain untouched after his passing, had no choice
    but to choose from among his offspring.
    .
    FIRST TO GRAB OFFICE, WAVE FATHER’S FLAG WINS THE CROWN


  1. (SBU) Cho, based on his experience living among the DPRK
    elite (his father was former Construction Minister Cho Chul
    Jun), believed that whichever son was the first to
    consolidate his position and display absolute loyalty to his
    father would become KJI’s heir. Having attended school with
    KJI’s half-brothers for years, Cho recalled from his school
    days that, up until high school, Kim Il Sung heavily favored
    KJI’s half-brother Kim Pyong-il as successor. Kim Song-ae,
    second wife to Kim Il Sung and Kim Pyong-il’s mother, even
    arranged to have Kim Pyong-il, who was 13 years younger than
    KJI, begin government work early by shortening his primary
    and secondary school education from 12 years to a total of
    11, and allowing early graduation from KIS University. By
    the time Kim Pyong-il graduated, however, KJI had already
    seized control of all key areas and convinced his father that
    he was the only one fit to succeed him.
    .

OR PERHAPS A TECHNOCRAT

  1. (SBU) Choi Jin-wook of KINU argued that another
    generation of dynastic succession was unlikely, as KJI’s
    children probably did not have the ability to grapple
    successfully with the current challenges before the DPRK, as
    well as those that would arise with the resolution of the
    nuclear issue and improved economic conditions. The sons
    would not have sufficient time to develop the ability to
    manage large-scale changes in the DPRK. The ideal candidate
    would therefore ascend from the ranks of the military, the
    cabinet or the KWP. He would also need to have demonstrated
    absolute loyalty to Kim Il Sung, Kim Jong-il, and their
    legacy for the DPRK.

  2. (SBU) Koh Yoo-hwan of Dongguk University likewise
    believed that KJI’s successor would be a technocrat with
    well-established credentials. Noting that KJI wrote
    extensively on his “successor theory” in the years leading up
    to his own ascension, Koh stressed that KJI’s own writings
    provided the best indication of the ideal qualities for his
    successor. KJI expected his successor to have demonstrated
    absolute loyalty to himself and to the workers’ revolution.
    The successor needed to demonstrate leadership and strong
    ethics, a thorough knowledge of both Kim Il Sung’s and KJI’s
    ideology, and a full grasp of both international and domestic
    affairs. He also had to enjoy absolute confidence from the
    public through real achievements. Under such criteria, KJI’s
    sons were probably not viable candidates. For example, most,
    if not all of the sons had studied in the West, allowing
    critics to argue that they were “ideologically impure.”
    Furthermore, Koh argued, no official DPRK publication had
    ever declared the need for dynastic succession.

  3. (SBU) Both Choi and Koh acknowledged that it was far

more difficult to identify potential candidates to succeed
KJI among technocrats than among his sons. No DPRK official
was sufficiently visible at the moment. They noted, however,
the rapid rise of an official named Paek Se-bong, a
mysterious individual who seemingly appeared out of nowhere
to become a member of the National Defense Commission in
2003, bypassing a number of senior military and KWP
officials. The academics speculated that Paek Se-bong could
be the pseudonym of somebody being groomed by KJI to succeed
him. (NOTE: Paek need not be a technocrat; some observers
have suggested Paek is a pseudonym for one of Kim’s sons.
END NOTE.)
.

THE JAPAN MODEL

  1. (SBU) A former National Security Advisor predicted to us
    several months ago that the DPRK would resolve the succession
    issue by adopting the “Japan model” of an imperial family
    acting as head of state, while real political power lay
    elsewhere. Under this hypothesis, KJI would install one of
    his sons as a figurehead leader, thereby securing the
    legitimacy of the regime in the eyes of the people, ensuring
    the well-being of his children, and protecting his own
    legacy. Recognizing that none of his sons were equipped to
    run the country, however, KJI would put one or more
    technocrats in charge of the government. Like the Japanese
    Imperial Family, the Kim family would reign but not rule.
    Cho Myung-chul, however, did not believe such a system was
    viable for the DPRK, as it would contradict KJI’s own
    writings on both party ideology and successin theory.
    VERSHBOW

▶원문 https://wikileaks.org/plusd/cables/06SEOUL595_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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