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 카터가 최규하에게 보내려 했던 ‘未完의 친서’ 12-12사태 참담한 심정… (22)

최정미 기자= 1979년 12월 발생한 12-12 쿠데타 이후 미국 정부는 신군부가 더 이상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지 않도록 한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의하려 했다.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민주화 일정을 강행하려 하는 등 나름의 역할을 하려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당시 한국 외무부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친서가 최규하 대통령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주한미국대사관을 매개로 미국 국무부와 실무협의를 벌여나갔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주한미대사관-국무부 문건에 따르면 양국 정부가 실무적 차원의 친서(카터 -> 최규하) 문구 조율 과정에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내용이 확인됐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문서들로는 당시 카터 대통령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낸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카터가 친서를 보내지 않았다면 당시 실권자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었고, 미국으로서는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최종 내부 협의과정에서 친서를 보내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은 귀하와 각료들에게 왜 미국이 한국 군 내의 갈등을 걱정해왔는지 명백히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더 큰 격동으로 쉽게 발전될 수 있고, 북한에 대한 방어에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으며, 한국의 정치 발전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분열은 외부의 신뢰를 무너뜨려 한국의 안보와 경제복지에 대해서도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걱정에 귀하도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 미국이 한국과 함께 잠재적인 위험을 축소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도 좋습니다…” (1979. 12.29 글라이스틴 대사가 국무부에 보낸 수정안)

카터는 이듬해인 1980년,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최규하 대통령을 강제 하야시키고 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직전인 80년 8월 27일 친서를 보내 김대중 당시 신민당 고문을 선처해줄 것을 부탁하게 된다.

◇신군부에 허망하게 대권 넘겨준 비운의 대통령 ‘최규하’

대한민국 대통령들마다 나름대로 강한 캐릭터와 공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었던 반면 최규하 전 대통령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신군부 세력에 허망하게 대권을 넘겨줬다는 점에서 ‘비운의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만 얻고 있을 뿐이다.

그는 1987년 국회 청문회, 1996년 항소심 때 자신이 신군부로부터 받는 핍박에 대한 증언을 완강하게 거부했다.

이에 대해 ‘원칙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선비의 기개’라는 평가와 ‘불필요한 고집을 부린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한쪽에서는 ‘핍박은커녕 신군부에 협조했던 그에게 비밀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그가 탁월한 관료, 국무총리였지만, 대통령 재목은 아니었다고 평가한다. 대통령 유고라는 시대적 상황만 아니었어도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191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 집안에서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다가 1928년 원주보통학교에 입학했다. 1932년 상경해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를 다녔고, 그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고등사범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1941년 졸업 뒤에는 만주로 건너가 국립대동학원에서 만주국의 수습관료로 근무했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일하다가 1946년 미군정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발탁되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농림행정에 종사하여 농림부 양정과장, 농지관리국장 서리 등을 지냈다.

그 뒤 변영태에게 발탁되어 외무부 통상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1951년 아시아 극동경제위원회(ECAFE)에 한국의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1952년에는 도쿄 주일대표부 총영사로 부임했으며, 1959년에는 주일대표부 공사로 승진했다. 그리고 그해 9월 귀국하여 외무부 차관이 되었고, 12월부터 외무부장관 직무대행을 겸했다.

1960년 4·19혁명 이후에는 외무부 차관에서 사임했으나,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김종필이 주도한 민주공화당 창당준비 과정에 참여했고,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의 외교담당 고문이 되었다.

1967년 외무부장관에 이어 1971년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을 거친 그는 1975년 국무총리 서리를 거쳐 1976년 3월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일본에서 영어를 배웠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영어실력을 쌓아 탁월한 고급영어를 구사했다. 미군정청 시절 미군과의 식량교섭은 물론 정부수립 후에도 쌀 도입에 관한 국제회의나, 교섭, 토의, 계약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그의 뛰어난 영어실력은 소금과 같은 역할을 했다.

외무장관이던 1970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연설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연단에 올라갔다가 박수갈채를 받으며 내려왔다.

당시 그의 손에는 백지 한 장이 드려있었다. 그는 측근들에게 “미리 준비해온 연설문을 읽었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어 백지를 들여다보며 연설했다”고 털어놓았다.

국무총리 시절, 그가 호주에서 영어로 연설을 한 적이 있는데, 그의 고급영어에 감탄한 호주 의원이 한국 수행기자들에게 “최총리의 영어는 우리가 쓰는 영어보다 더 고급영어”라며 감탄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언어구사 능력은 물론, 외국과의 협상에서도 상대방들이 혀를 내두를만큰 끈질긴 협상력을 발휘했다. 국무총리 시절에는 대통령제 하에서 ‘대독총리’라는 악평을 받을만큼 박정희 대통령의 서포터(supporter)로서 묵묵히 역할을 해 초장수 총리의 길을 걷는 듯 했다.

그러나 그의 공직 삶에 새로운 시련이 닥쳐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상상치도 못했던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이후로 그는 호랑이 등에 탄 사람처럼, 본인이 상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대통령 유고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 그는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하여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틀 후인 28일 전두환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이어 11월 6일에는 유신헌법에 따라 새 대통령이 됐다. 그는 빠른 시일 안에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시국에 관한 담화’를 발표했고,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민주화를 위한 초석을 놓는 듯 했다. 12월 7일 긴급조치 9호를 해제하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된 학생과 일반인 68명을 석방한데 이어 1,700명에 대한 특별사면과 감형을 단행했다.

10.26으로 기대됐던 민주화의 대장정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최규하를 가리켜 과도기에 중도적인 입장에서 상황을 주도해나갈 적격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최규하의 행보는 여기까지였다. 불과 5일 후인 12월 12일 전두환 등이 일으킨 군사정변으로 실권을 잃은 채, 허수아비처럼 자리만 지키다 다음해인 1980년 8월 16일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됐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1년 4월부터 1988년 2월까지 국정자문회의 의장을 지냈던 그는 2006년 10월 22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역사에 IF(만일)는 의미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한다.

그가 만일 전두환의 신군부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신군부의 압력에 목숨을 걸고 저항했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주제: 최규하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에 대한 제안

  1. 전체문장

  2. 위컴 장군과 저는 카터 대통령이 최규하 대통령에게 실질적인 메시지를 보내도록 귀하가 미 국무부에 제안한 것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약간의 예외가 있지만 관련문서의 내용에 동의하는데, 특히 한국의 관료들과의 접촉에서 위컴과 제가 취한 입장을 카터 대통령의 서한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3.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서신 내용에 다음의 변경과 추가를 제안합니다.

  • (C)문단에서 ‘글라이스틴 대사가 귀하에게 보고할 것입니다’를 ‘글라이스틴 대사가 박 외무부 장관에게 보고했습니다’로 변경하고, 문장의 뒷부분은 전부 뺍니다. (의견: 지금 남북한 문제를 걸고 넘어가기에는 한국인들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1980년에는 우리가 이 부분을 강하게 밀고 나가려 한다는 의도를 내비치는 것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 그렇게 할지 안 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 (D)문단 앞에 다음의 문단 전체를 추가합니다. ‘최근 연설에서 말한 목표를 이루려는 귀하의 결심을 환영하고, 안보를 위한 한미 공동의 노력을 유지하길 바라지만, 12-12 사태에 대해서는 아주 참담한 심정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은 귀하와 각료들에게 왜 미국이 한국 군 내의 갈등을 걱정해왔는지 명백히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더 큰 격동으로 쉽게 발전될 수 있고, 북한에 대한 방어에 큰 위험을 가져올 수 있으며, 한국의 정치 발전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런 분열은 외부의 신뢰를 무너뜨려 한국의 안보와 경제복지에 대해서도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걱정에 귀하도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 미국이 한국과 함께 잠재적인 위험을 축소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도 좋습니다.’

  • 이 문단의 첫 부분을 다음과 같이 변경합니다. ‘지휘 계통이 끊어지고 12-12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서 우려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위컴 장군은 이미…’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

■SUBJECT: PROPOSED LETTER TO PRESIDENT CHOI (1979.12.29.)

  1. (S) ENTIRE TEXT.
  2. GENERAL WICKHAM AND I ENDORSE YOUR PROPOSAL TO THE SECRETARY THAT PRESIDENT CARTER SEND A SUBSTANTIVE MESSAGE TO PRESIDENT CHOI. WITH MINOR EXCEPTIONS, WE CONCUR IN THE LANGUAGE PROPOSED REFTEL, BUT WE BOTH FEEL IT HIGHLY IMPORTANT THAT ANY LETTER FROM PRESIDENT CARTER SPECIFICALLY ENDORSE THE POSITIONS WICKHAM AND I HAVE ADOPTED IN OUR CONTACTS WITH KOREAN OFFICIALS.

  3. WITH THIS IN MIND, I SUGGEST THAT YOU MAKE THE FOLLOWING CHANGES AND ADDITIONS TO THE TEXT CONTAINED PARA 3 REFTEL:

— IN PARAGRAPH (C) CHANGE “AMBASSADOR GLEYSTEEN WILL BE BRIEFING YOU” TO “AMBASSADOR GLEYSTEEN HAS BRIEFED FOREIGN MINISTER PARK”, AND DROP THE LAST FULL SENTENCE. (COMMENT: THE SOUTH KOREANS ARE NOT IN VERY GOOD SHAPE TO TACKLE NORTH/SOUTH KOREAN QUESTIONS AT THIS TIME, AND WE SHOULD PROBABLY AVOID IMPLYING TO THEM THAT WE ARE GOING TO MAKE A MAJOR PUSH ON THIS FRONT DURING 1980. WHETHER WE DO SO OR NOT IS ANOTHER MATTER.)

— PRIOR TO PARAGRAPH (D), ADD FOLLOWING FULL PARAGRAPH: “WHILE I WELCOME EVIDENCE OF YOUR DETERMINATION TO MEET THE GOALS SET OUT IN YOUR RECENT SPEECH AND WISH TO MAINTAIN SOLIDARITY IN OUR COMMON DEFENSE EFFORTS, I MUST EMPHASIZE THAT I WAS DEEPLY DISTRESSED BY THE EVENTS OF DECEMBER 12/13. AMBASSADOR GLEYSTEEN AND GENERAL WICKHAM HAVE MADE CLEAR TO YOU AND SENIOR MEMBERS OF YOUR GOVERNMENT WHY THE UNITETES HAS BEEN SO CONCERNED OVER STRIFE WITHIN THE KOREAN ARMY. THIS COULD EASILY LEAD TO FURTHER TURBULENCE WITHIN THE ARMED FORCES, RUN SEVERE RISKS IN DEFENSE AGAINST NORTH KOREA, AND UNDERMINE THE PROSPECTS FOR POLITICAL PROGRESS IN YOUR COUNTRY. SUCH DIVISIONS COULD ALSO DESTROY THE EXTERNAL CONFIDENCE WHICH IS SO CRITICAL TO KOREA’S SECURITY AND ECONOMIC WELL-BEING. I KNOW YOU SHARE THESE CONCERNS, AND YOU CAN BE CONFIDENT THAT WE WILL WORK WITH YOU TO TRY TO MINIMIZE THE POTENTIAL DAMAGE.” — REVISE THE FIRST PART OF THE PARAGRAPH TO READ: “I HAVE BEEN PARTICULARLY CONCERNED AT THE BREACH OF THE CHAIN OF COMMAND WHICH OCCURRED ON DECEMBER 12/13. GENERAL WICKHAM HAS ALREADY….” GLEYSTEEN

▶원문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408_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