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단독] “다케시마의 날 제정은 완전한 오판” 주일본 미국영사관이 진단한 한-일간 독도문제… 센카쿠분쟁 ‘부메랑’ 우려

최석진 기자= “골치 아픈 독도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솔로몬의 해법은 없을까?”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가장 중요한 우방으로 두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일 양국간 최대 이슈 중 하나인 ‘독도문제’가 명쾌하게 해결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주일본 대사관과 각 도시 영사관은 독도 관련 중요 이슈들은 수시로 본국과 아시아의 관련 기관들에 전송해왔다.

지난 2006년 2월 22일의 경우 시마네 현이 논란 속에 강행했던 조례를 제정한 후 처음 맞는 ‘다케시마의 날’(독도의 날)이어서 미국으로서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관련, 일본의 외교전문가들은 “시마네현 관련자들이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던 나머지 조례 제정을 밀어부쳤는데 이는 국제관계를 넓게 보지못한 오판이었다”고 오사카-고베 미국영사관에 털어놓았다.

일본의 외교전문가들은 한-일간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독도처럼, 센카쿠열도는 일본-중국-대만과 분쟁 중인데 일본이 실효지배하는 상황이어서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센카쿠 열도(또는 댜오위다오 및 부속 도서)는 동중국해 남서부에 위치한 다섯 개의 무인도와 세 개의 암초로 구성된 군도로, 타이완과 류큐 제도 사이에 있다. 중국과 대만,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이 지배하고 있다.

이 군도는 일본의 행정 구역상 오키나와 현 이시가키 시에 속하며 중국의 행정 구역상 타이완성에, 중화민국의 행정 구역상 타이완성 이란 현에 속한다. 가장 큰 섬은 우오쓰리 섬(魚釣島, 조어도, 중국명 댜오위)으로, 동서 약 3.5km, 남북 약 2km에 이르는 섬이다. 이 섬의 최고점은 해발 362m이다.

일본의 오사카-고베 미국영사관이 탐문해 국무부와 아시아 각 기관에 전송한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관련 글의 행간에는 독도와 센카쿠열도 정책을 교묘하게 다뤄나가야 하는 일본의 속내가 숨겨져 있다.


■다케시마의 날 : 시마네 현에서 바라본 독도 문제 (2006. 2 .23)

날짜 : 2006년 2월 23일
발신 : 일본 오사카-고베
수신 : CIA/중국 베이징/주일미군사령관/일본 후쿠오카/일본 나고야/일본 나하/일본 삿포로/국가안보회의/주한미군사령관/국방부장관/국무부장관/대한민국 서울/대만 타이베이/미군 태평양사령부

<시마네 현의 오판>
1. 2월 22일은, 시마네 현이 논란거리가 많았던 조례를 2005년에 제정한 후 처음 맞는 다케시마의 날이었다. 한 소식통은 시마네 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조례로 제정한 것은 완전한 오판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국제관계부의 사토시 나카지마 국장에 따르면, 시마네 현 관련자들이 일본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던 나머지 조례 지정의 결과 한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왕에 조례가 통과된 마당에서 시마네 현은 이를 철회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 조치가 한일 관계를 더 후퇴시킬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기념일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 나카지마는 처음 맞는 다케시마의 날이 작년 조례 제정 직후 벌어졌던 상황만큼은 나쁘게 돌아가지 않는 데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경찰관 250명이 행사 내내 주위를 지켰다. 지난해 확성기를 이용해 반한감정을 돋우었던 우익 인사들의 모습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번에는 침묵을 지켰다. 서울에서 날아온 시의회 의원들이 시마네 현 청사 내에서 시위를 시도하다가 항의 문서를 전달했지만, 전단지를 배포하는 행위는 거부되었다.

<왜 이 시점에서…: 역사와 경제>
3. 시마네 현은 다케시마(한국 명칭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한다. 조례에 따르면 다케시마의 날 제정은 다케시마에 대한 영유권을 초기에 재정립하고, 전국에 다케시마에 대한 여론을 일깨우는 데 목적이 있다. 이 행사는 매년 2월 22일이면 거행되는 연례행사가 될 것이다. 어쩌면 식민지 시절의 역사적 배경은 무시하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시마네 현 생활환경국 카수히로 이노우에 국장은 다케시마가 시마네 현 영토의 일부로 공식 지정된 지 1 백 주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조례 지정에 촉진제가 되었다고 말했다.

  1. 비론 언사는 영유권 주장이나 50년 전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의 처사에 국한되었지만(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과거 시마네 현 어부들을 다케시마에 구금, 축출한 바가 있고, 그 중 일부가 사망하기도 했다.) 시마네 현 사람들의 실제 관심사는 어업권에 있다. 혼슈 지역과 다케시마 사이의 해역은 현의 어업에 없어서는 안 될 수산자원의 보고이다. 시마네 현의 부족한 일거리와 히로시마나 고베와 같은 지방 상권에서조차 멀리 떨어진 지역적 특성, 그리고 낙후된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하면 어업은 현의 정가에 최대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2. 이노우에는 시마네 현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일본 외무성에 로비를 해왔는지에 대해 소상히 밝혔다. 그들은 일본 외무성을 향해 다케시마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해서 자신들이 어업을 자유로이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수십 년 동안 호소해왔다. 한국과 일본이 어업공유권에 대해 협약을 맺었지만 한국 정부는 협의된 조항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이노우에는 밝혔다. 시마네 현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유권 주장을 금세 망각하거나 외무성에 의해 무시당할까봐 작년에 자신들이 직접 이 문제를 이슈화하기로 결정했다. 이노우에는 또한 중국이 다케시마 문제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며 걱정했다. 일본 정부가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도 실효적 점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의 예를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논평 : 다케시마 문제는 멀리 떨어져있는 도쿄에서보다는 시마네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문제가 되고 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1. 이노우에는 한국 자치단체와의 선린관계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을 일관되게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시마네 현과 자매결연을 맺은 경상북도 사이에 조례 제정 후에도 기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논평 : 엄밀히 말해서, 조례 제정 후에는 경상북도의 반응이 싸늘히 돌아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상북도는 다케시마의 날 제정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시마네 현과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최후통첩을 보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노우에의 언급이나 지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양측 간의 학술적·문화적 교류는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현의 관리들이 경제적·문화적·정치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한국을 왕래하는 인적 교류도 다케시마의 날 제정 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 시마네 현은 22일의 행사 전 단계로 언론 인터뷰나 홍보물 제작, 사마네 현 청사 로비에서의 사진전(한 달 간 진행 중임), 그리고 현에서 지원하는 TV와 잡지 홍보 등의 행사를 추진 중에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다케시마를 주제로 하는 두 시간짜리 포럼도 개최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시마네 현은 한국 정부의 대표를 초대하지 않았으며,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는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어떤 인사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노우에는 이 포럼이 시마네 현의 시각에서 개최되는 일방적 행사라는 점을 시인했다. 포럼에는 시마네 현 지사와 의회 및 시민 대표들만 참석했다.

■ SHIMANE’S MISCALCULATION

  1. (SBU) February 22 was the first time Shimane Prefecture
    celebrated Takeshima Day after enacting a controversial
    ordinance in 2005. A contact confided that the prefectural
    assembly made a gross miscalculation about the Takeshima Day
    ordinance. Meant more as a means of exerting pressure on the
    GOJ, no one in the prefectural government foresaw the
    reaction this would have in South Korea, according to
    International Affairs Director Satoshi Nakajima. But now
    that the ordinance had passed, the prefectural assembly could
    not back down and repeal it. They felt forced to carry out
    the celebrations, even though they realize now how it could
    further set back Japanese-Korean relations.

  2. (SBU) Nakajima was happy to report that the first
    Takeshima Day was “not as bad as last year” in the fallout
    over the ordinance. 250 riot police kept watch over events.
    The right wingers who led vocal demonstrations against the
    ROK last year were present, but quiet. A delegation of city
    assembly members from Seoul who tried to protest inside the
    prefectural government building delivered a protest letter
    but were denied permission to pass out leaflets.

WHY NOW: HISTORY AND ECONOMICS

  1. (SBU) Shimane Prefecture claims the Takeshima Islands
    (Tokdo in Korean) as part of its territory. The purposes of
    Takeshima Day, according to the ordinance, are &to promote
    early reestablishment of Shimane,s territorial rights over
    the Takeshima islands and to enlighten public opinion
    throughout the country and prefecture about Takeshima.8
    This will be an annual event held each February 22. Perhaps
    ignorant of the negative colonial context (reftel), Director
    General of Shimane Prefecture’s Environment and Life
    Department Katsuhiro Inoue said that the 100th anniversary of
    Takeshima being officially designated part of Shimane gave
    the prefecture an additional impetus to create the ordinance.

  2. (SBU) Although the talk is all about territory and the
    historical injustice of Syngman Rhee,s detention, and later
    expulsion and some deaths, of Shimane fishermen from the
    island over 50 years ago, the real issue for the prefecture
    is fishing rights. The area between Honshu and the islands
    is a rich fishing ground for the prefecture,s fishing
    industry. Given Shimane,s lack of jobs, isolation from even
    regional centers such as Hiroshima or Kobe, and poor economic
    performance, the fishing industry has political clout.

  3. (SBU) Inoue recounted how Shimane appealed to MOFA every
    year for decades to get the ministry to assert its
    territorial rights over the islands so that it could fish in
    the area. Although the two countries reached an agreement on
    shared fishing rights, Inoue said that the ROKG was not
    honoring the terms of the agreement. Worried that people
    would soon forget about Shimane,s claim to the territory,
    and ignored by MOFA, the prefecture decided to take matters
    into its own hands last year. Inoue also added that he was
    concerned that China was watching the Takeshima issue
    closely, and might decide to follow the Korean example of
    &actual occupation8 in the Senkakus if the GOJ did not take
    action. COMMENT: Clearly, the Takeshima issue is far more
    visceral to residents of Shimane than in far-off Tokyo. END
    COMMENT.

  4. (SBU) Inoue did not stray from his rosy description of
    current prefectural relations with the ROK. He pointed to
    the fact that Shimane and its Korean sister state, North
    Gyeongsang Province, were continuing grassroots exchanges
    even after the ordinance came on the books. COMMENT:
    Technically speaking, sister-state relations were frozen by
    the North Gyeongsang governor following enactment. The

OSAKA KOBE 00000088 002 OF 002

province delivered an ultimatum to Shimane: without a repeal
of Takeshima Day, prefectural relations would be kept on
hold. But what Inoue’s comment, and local press reporting,
confirm is that two-way academic and cultural exchanges, and
even “personal” travel of prefectural and city officials to
South Korea to discuss further economic, cultural and
political relations, have continued even after the creation
of Takeshima Day. END COMMENT.

  1. (SBU) In addition to media interviews, PR brochures, a
    month-long Takeshima photo display in the prefectural
    government building lobby, and prefecture-sponsored TV and
    magazine messages targeting the run-up to the 22nd, Shimane
    held a two-hour &Forum to Consider Takeshima.8
    Unfortunately, the prefecture did not invite representatives
    of the ROKG, or anyone with a Korean point of view, for that
    matter, to any of the events of Takeshima Day. Inoue
    admitted that the forum was a one-sided event from Shimane,s
    point of view only, in which the governor, prefectural
    assembly and citizen representatives participated.

▶원문 https://wikileaks.org/plusd/cables/06OSAKAKOBE88_a.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