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 美 대사, 전두환 장군에게 “김재규 고문은 안된다”… 순교자 위인화도 반대 (23)

[특별취재팀] 박정희 시해사건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이 사건은 김재규의 우발적인 단독범행이었나? 아니면 배후세력이 있었던 것일까?

수사 결과는 김재규의 단독범행으로 발표됐지만, 그가 사건을 일으킨 지 7개월 후 사형됨에 따라 박대통령의 심장을 겨눈 진짜 이유와 배후세력 유무는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게 됐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에 총격을 가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수개월에 걸쳐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를 받았다.

그는 처음부터 단독범행이라는 것을 주장했지만, 합수부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1978년 1월 취임한 이후부터 줄곧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주한미군 철수-인권문제로 압박해왔기 때문에 합수부는 김재규 뒤에 반드시 미국 CIA와의 모종의 연계세력, 군부 세력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김재규로부터 원하는 답변이 돌아오지 않자 전기고문 등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려 했던 것이다. 이같은 전기고문설은 김재규를 면회했던 가족들이 제기하기 시작했으며, 합수부가 귀를 기울이지 않자 미국 대사관 경로를 통해 제보하기에 이르렀다.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1979년 12월 29일 본국 국무부에 보낸 전문을 통해 ‘김재규 고문설’에 대한 미대사관의 조치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우리는 김재규의 부인과 남동생이 수사가 이뤄지는 동안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합동수사본부에 확인을 했는 바, 어떤 가혹한 조치도 가하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답을 들었다”고 보고했다.

대사는 “나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들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을 것이고, 당시 김재규의 부인과 동생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확답을 다시 한번 듣게 됐다”고 덧붙였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수감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사 이야기들은 분명히 계속 나올 것이고, 또 일부는 근거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 미국이 김재규의 죄에 대해 관용을 바라는 듯한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연루돼 버리거나 심지어 연루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피력했다.

김재규가 일부 사람들로부터 순교자적인 지위를 얻었지만, 엄연히 동맹국의 대통령을 암살한 사람이기 때문에 암살범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자칫 ‘미국 배후설’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이에따라 미국의 각 기관들이 개별적으로 김재규 가족을 만나는 것을 지양하며 대사관으로 창구를 일원화해줄 것을 주문했다.

김재규는 숱한 의문을 남긴 채 1980년 5월 24일 사형 집행됐다.

그를 지지하는 인사들은 “박정희가 살아있는 한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에, 김재규는 박정희가 사망함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펼쳐질 것을 기대했고 본인이 특별한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정교한 사후 시나리오를 짜놓지 않았던 것”이라며 ‘김재규 영웅설’을 주장하고 있다.

38년이 지난 오늘날 김재규의 행동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하지 않았더라면 대한민국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김재규가 미국과 상의해 대안을 마련해놓고 시해사건을 일으켰다면? 아니면 김대중-김영삼 등과 민주화 시나리오를 짠 후 시해사건을 일으켰다면? …

역사가 밟아오면서 확인한 사실은 그가 정교한 마스터플랜 없이 거사를 일으키면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12․12 쿠데타가 발발했고, 5․18 광주항쟁을 거치며 수백명의 희생을 거친 후 7년 암흑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서야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는 점이다.

다음은 글라이스틴이 1979년 12월 29일 본국에 보고한 문건이다.


■ 주제: 김재규 고문 의혹 (1979년 12월 29일)

  1. (S) 전체 문장.
  2. 우리는 김재규의 부인과 남동생이 수사가 이뤄지는 동안 심한 고문을 받았다는 의혹에 관해 합동수사본부와 함께 확인을 했고, 어떤 가혹한 조치도 가하지 않았다고 부정하는 답을 들었다. 두 사람은 박정희 암살 직후 체포됐으며, 국군기무사령부에 의해 약 일주일 간 수감돼있었다. 조사를 통해 암살 음모 연루 여부나 정보를 밝히는 데 실패했고, 두 사람은 후에 석방되어 서울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

  3. 이런 혐의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바로 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들은 그런 방법을 쓰지 않을 것이고, 당시 김재규의 부인과 동생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확답을 다시 한번 듣게 됐다.

  4. 수감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사 이야기들은 분명히 계속 나올 것이다. 사실 일부는 근거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참조문서에서 지적했듯, 현 체제를 폄하하기 위한 비판들이 현란하게 나올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책임자들에게 비인간적인 처사에 대한 혐오감을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전달할 것이다.
  5. 김재규의 딸과 친지들의 방문과 관련해서, 나는 김재규의 죄에 대해 관용을 바라는 듯한 행동으로 인해 우리가 연루돼 버리거나 심지어 연루된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위험을 강조하고 싶다. 김재규가 일부 사람들로부터 순교자적인 지위를 얻었지만, 엄연히 우리 동맹국의 대통령을 암살한 사람이다. 나는 암살범을 보호하려는 노력에 대한 정치적 도덕적 결과는 뒤로 하고, 현 권위자들이 우리의 노력을 묵살하며 박 대통령의 죽음에 우리가 관여했다는 한국인들의 의혹을 더 크게 남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누구라도 김재규의 친지들을 만나야 한다면, 대사관을 통해야 한다. –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

▶원문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413_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