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단독문서] 고건 “한국사회, 계급구조에 주목해야”.. 사회통합위원장 당시 스티븐슨 대사와의 대화

최석진 기자= 고건 전 국무총리(1938~ )는 서울시장, 국무총리, 대통령 직무대행을 역임한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시야가 넓고, 이해 당사자간 갈등이 팽배한 사안의 경우 최적의 묘안을 제시하는 행정력으로 인해 그는 오늘날까지도 관료의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진보-보수 진영간 갈등이 첨예화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직전에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던 고건을 2009년 12월 사회통합위원장에 임명하게 된다.

고건 총리는 사회통합위원장을 맡은 바로 다음해 2월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미국대사와 만났다.

미 대사관은 당시 대화 내용을 정리해 국무부장관, 주한 미군사령부, 미국 태평양사령부 앞으로 보냈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이 외교문서는 당시 한국 사회의 갈등 상황을 탁월한 행정가의 시각으로 진단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당시 한국사회의 계급구조적 문제들은 이후 박근혜 정권을 거처 오늘날 문재인 정권의 기저(基底)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음은 2010년 2월 고건 전 총리- 주한미국대사 간의 대화를 요약한 미국대사관의 외교전문이다.

[고건, 한국의 노련한 정치인이 말하는 한국 사회의 갈등]

  1. 요 약

2월 1일 미 대사는 고건 전 총리를 초청해서 오찬을 함께하며 사회통합 위원회의 역할 등을 포함한 폭넓은 분야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최근 사회통합 위원장으로 임명된 고 전 총리는 지난 30년 동안 7개의 정권을 거치면서 공직 생활을 해온 인물이다. 오랜 공직 생활과 지방 및 중앙 무대에서의 풍부한 경험이 합쳐져서, 그는 한국의 정치·경제 발전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고 전 총리는 1월 18일 최초로 취임한 위원회 활동에 대해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북한 녹화 사업에 대한 구상을 설명했다. 그는 편안한 상태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며, 대통령직에 대해 욕심이 결코 없음을 천명했다.

  1. 사회 통합 노력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2월 23일 사회 통합 자문위원회를 새롭게 출범시켰다. 이 위원회는 16명의 정부 각료들과 이전 진보 정부의 고위 관료들을 포함하는 32명의 시민 대표로 구성되었다. 보수와 진보 정권의 행정부를 거치며 공직 생활을 해온 고 전 총리는 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을 약속했다. 그는 오찬 중에 대사에게, 최근의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한국사람 10명 중 8명이 사회 갈등이 10년 전보다 심화되었다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추세가,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사회 계급 때문에 형성되었는데, 그 결과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한국 사회는 아직 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 전 총리는 계급 구조에 주목해야 한국 내 진보와 보수의 근본적인 갈등이 바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수 세력이 개인 능력의 발휘에 주안점을 둔 반면 진보 세력은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1. 사회 통합 노력

고 전 총리는 위원회의 주요 목표를 10개로 정리했는데, 이 목표들 중 하나에는 사회 갈등을 전담하는 기구의 설립이 포함되었다. 그는 갈등 해소 노력을 강화해야할 예로 용산 사태를 들었다.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었다면 용산 사태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았다. (2009년 1월, 경찰은 철거 예정인 건물을 점거 중이던 시위대의 해산에 돌입했다. 이 대치 과정에서 시위대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 전 총리는 자신이 서울 시장을 역임하던 시절(1988~1990, 1998~2002) 토요일마다 시민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경청했다는 일화를 공개했다. 도시 재개발에 따른 문제는 서울에서 그 증가세를 더하고 있으며, 정부가 적당한 대처를 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태가 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1. 지역갈등 해소 노력

고 전 총리가 설정한 위원회의 또 다른 목표는 지역 갈등의 해소이다. 그는 서울로의 거대한 인구 유입이, 특히 젊은 층에서 전통적인 영호남 갈등을 줄이기는 했지만, 지역 정치를 극복해야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영남의 한나라당과 호남의 민주당으로 나누어진 정당들이 지역 정서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들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역사적으로 쌓인 반목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1. 북한 녹화사업

대사는, 고 전 총리가 북한 녹화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에 대해 궁금함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고 전 총리는 이 문제는 사회 통합 위원회의 활동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밝히고, 과거 자신이 공직 생활을 하던 1972년 남한 녹화 사업을 성공리에 수행했던 점을 환기시켰다. 그는 포스코와 같은 남한의 기업들이 배출권 거래제(cap-and-trade)의 일환으로 남아프리카 녹화 사업에 눈을 돌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기업들에 그런 계획 대신에 북한에 눈을 돌릴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의 녹화 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인도적 지원책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나무들이 북한의 정해진 장소에 잘 심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사업이 농작물 지원 사업처럼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방식을 통해서 숲에서 연료를 수확할 수도 있고, 삼림을 감시하는 노동자에게 농업 노동자들처럼 임금을 지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 인터뷰 평가

고 전 총리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상하고 분명하게 밝혔다. 그는 통역에 의존하기는 했지만 상당 부분 영어 대화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가장 젊은 나이에 전라남도지사를 지냈으며(1975~79), 장관직을 두루 거치고(교통부장관 1980~81, 농림수산부장관 1981~82, 내무부장관 1987), 국회의원을 지냈고(1985~88), 서울시장(1988~90, 1998~2002) 국무총리(1997~98, 2003~04)를 역임했다. 한국 국민들은 고 전 총리의 다양하고 오랜 공직 경험을 근거로 그가 2012년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대사가 고 전 총리에게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야망이 없는지 물었을 때 그는 단호하게 부정적 의사를 밝혔다.

VETERAN POLITICIAN GOH KUN ON KOREAN SOCIAL CHALLENGES
2010 February 5, 07:25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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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IDEN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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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 SUMMARY:
On February 1 the Ambassador hosted former Prime Minister Goh Kun for a lunch discussion that covered a range of issues, including his work on the Committee for Social Integration. Goh, recently selected to chair the committee, has now worked for seven different presidents over the past 30 years. This — combined with Goh’s experience serving in local, regional, and national offices — has given him a unique perspective into Korea’s economic and political development. Goh discussed his goals for the committee, which he chaired for the first time on January 18, and his idea for reforestation projects in North Korea. Goh was relaxed and talkative, and declared he “never” would run for a high office.
2. (C) President Lee Myung-bak launched a new advisory committee for social integration on December 23, 2009. The committee consists of 16 government ministers and 32 civilian members, including former high-ranking officials from previous liberal governments. Goh, who has served in the administrations of both conservative and liberal presidents, vowed to maintain the committee’s political neutrality. During lunch, Goh told the Ambassador that a recent public survey indicated that eight out of 10 people thought Korea’s social conflict was worse than it was 10 years ago. Goh explained this sentiment by noting that social classes were formed during the process of industrialization, and Korea has not yet resolved how to handle the ensuing class conflict. Goh noted that the emphasis on class structure underpins the fundamental conflict between progressives and conservatives in Korea. The former group emphasizes equality while the latter argues for individual excellence and advancement.
3. (C) Goh said he has outlined 10 core objectives for his committee, and one of these was building institutions to manage social conflict. As proof of the need for more conflict resolution, he referred to the Yongsan incident and said institutional mechanisms could have prevented the tragedy. (NOTE: In January 2009 police tried to remove protestors who were occupying a building scheduled to be demolished. Five protestors and one police officer died in the ensuing confrontation. END NOTE.) Goh said that when he was Seoul mayor (1988-90 and 1998-2002), he met every Saturday with citizens to hear their concerns. The issue of urban redevelopment was a growing issue in Seoul, and there was a potential for similar incidents if the government did not take action.
————————– Reducing Regional Conflict ————————–
4. (C) Another of the goals Goh set for his committee was reducing regional conflict. Goh noted that the huge influx of people to Seoul had diminished the traditional Youngnam (southeastern Korea) and Honam (southwestern Korea) conflict, especially among young people. The problem was that regional politics still existed. The parties had very strong support bases in the regions — the Grand National Party in Youngnam and the Democratic Party in Honam — and politicians tried to take advantage of historical animosity for their own political gain.
———————– Reforesting North Korea ———————–
5. (C) The Ambassador inquired about media reports that Goh had also advocated reforestation projects in North Korea. Goh noted that that was separate from the work of the committee and instead hearkened back to work he had done in 1972 as part of the successful efforts to reforest South Korea. Goh noted that South Korean companies like Posco were looking at reforestation projects in South America as part of cap-and-trade requirements. He encouraged them to think about projects in North Korea instead. Goh argued that reforestation projects could also be part of humanitarian aid. It would be easier to verify that trees were delivered to the proper place. It should be treated as a crop, Goh said. That way, the wood could be harvested for fuel and workers who oversaw the maintenance of the trees could be paid like agricultural workers.
——– Bio Note ——–
6. (C) Goh was talkative and articulate. He relied on the interpreter, but often seemed to understand most if not all of the English. Goh was the youngest-ever governor (1975-79) of South Jeolla province and has also served as minister (Transportation 1980-81; Agriculture and Fisheries 1981-82; Home Affairs 1987); National Assembly member (1985-88); Seoul Mayor (1988-90 and 1998-2002); and as Prime Minister (1997-98 and 2003-04). His long and diverse government experience has prompted people to suggest him as a possible Democratic Party candidate for the 2012 elections. When the Ambassador made a general inquiry about his political ambitions, Goh quickly replied “never.” STEPH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