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단독문서] ​박정희 사후 정치인들의 ‘동상이몽’과 12.12 쿠데타… 글라이스틴 대사와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전두환에게 기만당했다’

최정미 기자= 오는 26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지 38돌을 맞게 된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타계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시발탄이었다.

박정희 사후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정치인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두달도 채 되지 않아 발생한 12.12 쿠데타로 이들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특이한 것은 12.12쿠데타 이후에도 한동안 정치인들은 ‘민주화 일정’에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이다.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와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쿠데타 직후인 12월 20일 회동했는데, 그 당시 회동 내용을 보면 3김이 ‘군은 최규하 대통령을 지지하며, 최 대통령을 중심으로 민주화일정을 추진하겠다’는 군부의 말을 믿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음은 1979년 12월 20일 글라이스틴 대사와 신민당 총재 면담 내용을 글라이스틴대사가 본국에 보고한 내용이다.

▣ 김영삼 신민당 총재와의 대화 (1979. 12. 20. 글라이스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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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요약: 12월 20일 내가 청한 만남에서 김영삼은 1981년 5월까지는 최규하 대통령 정치 일정에 선거가 없음에 불만을 표시했고, 이들 급진좌파는 오래 지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개인면담에서 그는 이 정치 일정을 감내할 수 있으며, 야당 내에서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삼은 최규하 정부가 군사 정부보다는 낫다는 것에 대한 내 주장에 대해 동의하는 한편, 최규하를 유약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 우유부단함이 군세력을 끌어들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군부 분열이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리의 우려에 동의했고, 군부 일부는 공개적으로 그를 지지한다고 했는데, 이는 군부 분열에 대한 가능성을 실증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의 걱정을 말했고, 그에게 최규하와 맞서야 할지라도 정치 일정에 대한 중도적 입장을 취할 것을 촉구했다. 나는 그가 이전 면담들 때보다 더 솔직하고, 분별있으며, 책임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요약 끝

  1. 12월 20일 신민당 총재 김영삼과 두 번의 대화를 가졌다. 첫째는 당 의원 10여명과 함께였고, 두 번째는 개인 면담이었다. 첫번째 대화에서 그는 12-12 사태에 대한 나의 우려에 대해 끝까지 듣고, 한국의 정치적 미래를 암울하게 그렸다. 그는 최규하 대통령의 정치 일정이 1980년 헌법개정과 1981년 5월과 6월에 선거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통보받았고, 그러므로 신민당은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와 안정은 조기 선거로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긴 일정은 참사를 가져오는데, 최규하는 너무 유약해서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다고 했다.

  2. 나는 군부보다는 민간에 의한 과도정부가 훨씬 우선시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나는 개인적으로 헌법개정은 김영삼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면이 있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군부 내에서 또는 군부와 학생들 사이에 큰 피해를 주는 충돌은 피해야 한다.

  3. 김영삼과 나는 그의 개인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12-12 사태는 정치 일정이 속도를 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제 한국 육군사관학교 11기(전두환)가 권력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나는 그날 밤 일어났던 모든 것을 안다. 그날 밤 최규하는 옳지 못한 일에 동의했다. 그리고 우리는 쿠데타를 당했다. 불안정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년 봄에 일어날 폭동을 내가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겠지만, 미국은 한국 군부가 정치에서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표명해야 한다”고 했다.

  4. 김영삼은 중령과 대령들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그 전날 그가 최전방을 방문했을 때, 한 연대장이 사단장과 다른 장성들 앞에서 신민당 총재를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서 김영삼은 “군에 있는 내 동지들에게 1979년은 1961년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5. 나는 세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김영삼에게 우리는 민간 정부를 지지해왔고, 12-12 사태에 대해 처음부터 군부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핵심 목표는 통합과 안보를 유지하고, 북한의 유도 계략을 피하는 것이며, 군인과 국민들의 충돌이나, 군부 내 분열로 인한 정부에 대한 대규모의 반대가 있다면, 정치뿐만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에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나는 군부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덧붙여 말했다.

  6. 김영삼은 정보가 새지 않도록 당부하며, 1981년 선거 일정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규하 정부가 군사 정부보다 낫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최규하가 계속해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다면, 강한 권력이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김영삼은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지지하기로 약속한 한편, 학생들과 반체제인사들의 동조를 얻는 것은 극도로 힘들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해관계 때문에 그들의 동조를 얻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7. 마지막으로 나는 김영삼에게 그의 어려움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나는 최규하의 정치 일정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에 원칙적으로 인정을 하면서도 과도기간이 너무 길다고 주장했고, 신민당이 이를 단축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삼은 개인적으로는 이 방에서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한다고 했다.

  8. 의견: 김영삼은 확실이 급진좌파와 자신 사이에 신뢰가 유지될 필요가 있는 그의 취약한 입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신민당 의원 오세응이 나와 함께 대사관으로 돌아가면서 그 역시 1981년 선거 일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세응은 단체 대화에서 최소 한 명 이상의 신민당 의원이 내가 최규하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나는 사실이라고 뜻을 비쳤으며, 확실히 최규하 정부가 두 정당이 바라는 하나의 목적을 향한 과도정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했다. 이 면담에서 나는 김영삼이 전보다 더 분별있고 책임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고할 사항: 최규하의 정치 일정에 관한 김영삼의 정보는 법무부장관에게서 나온 것으로 그가 김영삼을 신민당 본부로 불러 오전에 나를 만나도록 한 것이다. 그는 또한 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도 불렀다. 이리하여 최규하 정부는 공식 발표 이전에 최소한 두 정당에 통보하는 단계를 밟았다. –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



▣ SUBJECT: MY DECEMBER 20 CONVERSATION WITH NDP PRESIDENT KIM YONG-SAM

  1. (C) ENTIRE TEXT.
  2. SUMMARY: DURING MY CALL DECEMBER 20 KIM YONG-SAM COMPLAINED THAT PRESIDENT CHOI’S POLITICAL TIMETABLE WILL NOT PROVIDE FOR ELECTIONS UNTIL ABOUT MAY, 1981, AND SAID THAT THE RADICAL LEFT WILL NOT PUT UP WITH THAT LONG A DELAY. IN A PRIVATE FOLLOW-ON CONVERSATION, HOWEVER, HE ADMITTED THAT HE COULD LIVE WITH THE TIMETABLE, AND WOULD TRY TO WORK FOR PROPER ACTION WITHIN THE OPPOSITION. WHILE AGREEING WITH MY ARGUMENT THAT THE CHOI GOVERNMENT IS BETTER THAN A MILITARY ONE, KIM CRITICIZED CHOI AS A “WEAKLING” WHOSE VACILLATION MAY ENCOURAGE THE MILITARY TO MOVE IN. HE ENDORSED OUR CONCERN THAT DIVISION IN THE ARMY COULD LEAD TO DISASTER, NOTING THAT SOME IN THE MILITARY OPENLY SUPPORT HIM, WHICH ILLUSTRATES THE POTENTIAL FOR DIVISION IN THE ARMY. I DESCRIBED MY WORRIES, WHAT WE WERE DOING ABOUT THEM, AND URGED HIM TO TAKE A MODERATE STANCE ON CHOI’S TIMETABLE, EVEN IF HE MUST, AT THE SAME TIME, OPPOSE IT. I FOUND KIM MORE CANDID, MATURE, AND RESPONSIBLE THAN IN PREVIOUS MEETINGS. END SUMMARY.

  3. I HAD WHAT AMOUNTED TO TWO CONVERSATIONS WITH NDP PRESIDENT KIM YONG-SAM ON DECEMBER 20. THE FIRST WAS WITH ABOUT TEN PARTY OFFICIALS PRESENT, AND THE SECOND WAS PRIVATE. DURING THE FIRST, HE HEARD ME OUT ON THE NATURE OF CONCERNS OVER THE DECEMBER 12 INCIDENT AND THEN PAINTED A GLOOMY PICTURE OF KOREA’S POLITICAL FUTURE. HE HAD BEEN INFORMED THAT PRESIDENT CHOI’S (CH’OE KYU-HAH) POLITICAL TIMETABLE PROVIDES FOR CONSTITUTIONAL REVISION DURING 1980 WITH ELECTIONS TO BE HELD IN MAY OR JUNE OF 1981, THEREFORE, THE NDP WOULD NOT PARTICIPATE IN THE INAUGRATION. THE LENGTHY TIMETABLE COURTS DISASTER SINCE DEMOCRACY AND STABILITY CAN ONLY BE ACHIEVED BY EARLY ELECTIONS. “CHOI IS SUCH A WEAKLING THAT HE’S CAUSING INSTABILITY.”

  4. I ARGUED THAT A CIVILIAN INTERIM GOVERNMENT IS MUCH TO BE PREFERRED TO A MILITARY ONE. MOREOVER, I PERSONALLY FELT THE CONSTITUTIONAL REVISION WAS SOMEWHAT MORE DIFFICULT THAN KIM BELIEVED. ABOVE ALL, A DAMAGING STRUGGLE WITHIN THE MILITARY OR BETWEEN THE MILITARY AND STUDENTS MUST BE AVOIDED.

  5. KIM AND I THEN MOVED TO HIS PRIVATE OFFICE. THE DECEMBER 12 INCIDENT WOULD NOT HAVE HAPPENED IF THE POLITICAL SCHEDULE HAD BEEN SPEEDED UP, HE SAID. “NOW, THE ELEVENTH CLASS OF THE KMA IS IN POWER. I KNOW EVERYTHING ABOUT WHAT HAPPENED THAT NIGHT, ALTHOUGH NOT MANY DO. CHOI AGREED TO THE WRONG THINGS THAT NIGHT, AND WE HAD A COUP DE’ETAT. THE POTENTIAL FOR INSTABILITY IS VERY HIGH. I DON’T THINK THAT I CAN STOP THE RIOTS NEXT SPRING. I’LL DO WHAT I CAN, BUT THE U.S. SHOULD COME DOWN HARD ON THE MILITARY TO KEEP THEM OUT OF POLITICS.”

  6. KIM SAID THAT THE LIEUTENANT COLONELS AND COLONELS ARE VERY IMPORTANT. DURING HIS VISIT TO THE FRONT LINES THE DAY BEFORE, ONE REGIMENTAL COMMANDER HAD TOLD KIM IN FRONT OF HIS DIVISION COMMANDER AND SOME OTHER GENERALS, THAT HE SUPPORTED THE NDP PRESIDENT. KIM WENT ON TO SAY”I AM TELLING MY FRIENDS IN THE MILITARY THAT 1979 IS NOT 1961 AND THAT PRESIDENT PARK IS GONE.”

  7. WHILE I DIDN’T GO INTO DETAILS, I EMPHASIZED TO KIM THAT WE HAD MADE OUR SUPPORT FOR THE CIVILIAN GOVERNMENT AND DISMAY AT THE DECEMBER 12 INCIDENT CLEAR TO THE MILITARY FROM THE VERY FIRST. OUR KEY PURPOSE IS TO MAINTAIN UNITY AND SECURITY AND AVOID TEMPTING THE NORTH. IF THERE WERE LARGE-SCLE OPPOSITION TO THE GOVERNMENT BY THE PEOPLE PITTING SOLDIERS AGAINST THE PEOPLE, OR DIVISION IN THE MILITARY, IT WOULD BE DISASTROUS, NOT ONLY FOR POLITICS, BUT FOR RELATIONS WITH THE U.S. AND ECONOMIC GROWTH. I ADDED THAT I FELT THAT MANY IN THE MILITARY WERE CAPABLE OF UNDERSTANDING THIS.

  8. ASKING THAT THE INFORMATION BE VERY CLOSELY HELD, KIM ADMITTED THAT HE COULD LIVE WITH A TIMETABLE CALLING FOR ELECTIONS IN 1981. HE AGREED THAT CHOI IS BETTER THAN A MILITARY GOVERNMENT. IF CHOI CONTINUES VACILLATING, HOWEVER, A STRONG POWER MIGHT MOVE IN. KIM SAID THAT WHILE SOME CHRISTIAN LEADERS HAD PROMISED TO SUPPORT HIM IN ANY DECISION HE MADE, KEEPING THE STUDENTS AND DISSIDENTS IN LINE WOULD BE EXTREMELY DIFFICULT. I SAID HE SHOULD DO HIS VERY BEST TO KEEP THEM IN LINE, BECAUSE OF THE STAKES INVOLVED.

  9. IN CLOSING, I TOLD KIM I UNDERSTOOD HIS DIFFICULTIES. I ADVISED HIM NOT TO COMPLETELY REJECT CHOI’S TIMETABLE. RATHER HE COULD GIVE APPROVAL TO IT IN PRINCIPLE WHILE AT THE SAME TIME MAKING THE POINT THAT THE TRANSITION PERIOD WAS TOO LONG AND SAYING THAT THE NDP WOULD WORK TO SHORTEN IT. KIM SAID THAT HE PERSONALLY AGREED “WITH EVERYTHING THAT’S BEEN SAID IN THIS ROOM”.

  10. COMMENT: KIM IS OBVIOUSLY WORRIED ABOUT HIS DELICATE POSITION BETWEEN THE RADICALS ON THE LEFT AND HIS OWN NEED TO MAINTAIN CREDIBILITY. NDP ASSEMBLYMAN O SE-UNG RODE BACK TO THE EMBASSY WITH ME AND SAID THAT HE TOO COULD LIVE WITH A 1981 TIMETABLE. O SAID THAT AT LEAST ONE NDP MEMBER IN THE LARGE MEETING HAD FELT I WAS BEING AN APOLOGIST FOR PRESIDENT CHOI. I SAID THAT WAS TRUE WITH THE EXTREMELY IMPORTANT QUALIFIER THAT I DID SO ONLY WITH THE CLEAR UNDERSTANDING THAT THE CHOI GOVERNMENT WAS A TRANSITIONAL ONE TOWARD AN OBJECTIVE DESIRED BY BOTH ELECTED POLITICAL PARTIES. DURING THIS MEETING I FOUND KIM MORE MATURE, RESPONSIBLE THAN HE HAD IN THE PAST.

FYI: KIM’S INFORMATION ON CHOI’S POLITICAL SCHEDULE WAS GIVEN TO HIM BY THE JUSTICE MINISTER WHO CALLED ON HIM AT NDP HEADQUARTERS ON THE MORNING OF MY VISIT. HE ALSO CALLED ON DRP PRESIDENT J. P. KIM. THUS, THE CHOI GOVERNMENT TOOK THE STEP OF AT LEAST INFORMING BOTH POLITICAL PARTIES IN ADVANCE OF THE ANNOUNCEMENT. GLEYSTEEN

▶원문 링크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204_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