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청와대-백악관 x파일

청와대-백악관 x파일

[청와대-백악관 X파일] 미 CIA, 박정희 암살 이후 ‘대한민국 격동의 시기’ 정세예측 실패했다 (17)

최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무대였던 1979~80년은 우리 현대사에서 나라의 명운이 걸렸던 ‘격동의 시기’였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암살 -> 12월 군부...

[청와대-백악관 X파일] 전두환의 ‘케네디- 박정희 암살 비교론’에 미국 정부, CIA 기만당했다 (16)

“미국은 큰 나라라서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에도 나라가 안정을 잃지 않았지만, 한국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엄중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저는 정치에...

[청와대-백악관 X파일] “우리도 너무 당혹스럽다” 박정희 사망 직후 미국 국무부 혼란 (15)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예상했을까? 김재규는 혹시 미국 CIA와 어느 정도 교감한 후 거사를 일으켰을까?.... 미국은 박정희 정권 후반부에 인권문제로 상당히 불편한 관계에...

[청와대-백악관 X파일] 미 국무부, 박정희 시해사건 전세계 대사관에 긴급 타전하다 (14)

<한국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8시, 작은 만찬 자리에서 당한 총상으로 즉시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내각이 기능을 발휘 중에 있고, 헌법에 따라...

[청와대-백악관 X파일] ‘주한미군 철수 유보 감사’ 박정희, 카터에게 편지 보내다 (12)

1979년 7월 1일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대통령이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간신히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후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워싱턴에 돌아온 카터는 이후로도...

[청와대-백악관 X파일] 드디어 만난 박정희- 카터 ‘피말리는 협상.. 그리고 공동성명’ (11)

박정희의 줄기찬 노력으로 1979년 6월 지미 카터의 방한이 이뤄졌다. 주한미군철수, 인권문제 등이 여전히 양국 정부의 마음을 여는데 걸림돌이 됐지만, 미 의회를 들끓게 했던...

[청와대-백악관 X파일] 박정희 대통령, 홀브루크 차관보에게 “정상회담 서둘러달라” (10)

‘주한미군 철수문제’라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황을 안고 79년 1월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킨 박정희 대통령으로서는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지미 카터 대통령을 만나는게 시급했다. 다행히 2년여 동안 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