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캠벨 차관보, 탈북자 단체 대표들과 회동

문서번호 생성일 분류 출처 태그
09SEOUL1170 2009-07-24 07:06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 기 밀 SEOUL 001170
  • 국방부망 배포1)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7/24/2019
  • 태그: PGOV2), PREL3), PREF4), PHUM5), PINR6), KN7), KS8)
  • 제 목: 커트 캠벨 차관보, 탈북자 단체 대표들과 회동
  • 참조하는 전문: 09SHENYANG220
  • 분류자: 스티븐스 대사. 근거 1.4(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5/26 14:09

1. (기밀) 모두 탈북자들이며, 탈북자와 함께 일하는 민간단체 대표들은 7월 19일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와 함께한 회동에서, 그들의 작업과 북한에서의 생활, 북한 지도부, 그리고 탈북자의 인간적 도전 등을 설명하였다. 캠벨 차관보는 향후 회동에서 미국정부의 가능한 지원과 관련 제안이나 프로그램 구상을 제시해보라고 탈북 지도자들에게 요청하였다. 대사관 민간단체 대화 상대역들은: 성공적인통일을만들어가는사람들(이하 성통만사) 김영일 대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김성철 북한개혁방송 대표;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이애란 박사; 그리고 “수용소의 노래” 집필한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 등이다.9)

외국인을 바라보는 북한 사람들의 정서

2. (기밀) 김성민과 김성철은 대북 방송으로 가장 유명한 라디오 운영자 중에 속하는 데, 어떻게 북한 주민들이 라디오와 휴대전화를 주요한 도구로 삼아 외부 세계를 접하고 있는지 논의하였다. 이들 조직은 많은 북한 주민은 소지한 라디오를 비밀리에 개조해서 자유북한방송과 북한개혁방송과 같은 방송국의 단파 방송을 청취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최근 자유아시아방송가 벌인 설문조사는 탈북자 중의 30퍼센트 정도가 해당 방송을 청취했거나 북한에 살면서 대북 방송 소식을 들은 경험이 있다고 나타났다. 김성철에 의하면, 이는 북한 주민 30퍼센트가 외국방송을 청취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설문조사는 청취자 숫자가 꽤 높은 수준인 걸로 나타났다.

3. (기밀) 이러한 추세가 있기 하지만, 북한 주민이 대개 외부 상황의 변화에 대해 무지하며, 북한 정부의 선전과 다른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대체로 견해를 같이하였다; 북한 주민 대부분은 사회 경제적인 문제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고 믿는다. 이는 최근 탈북자를 봐도 사실이다; 그들은 미국인이나 일본인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몇몇 탈북자 민간단체는 주장하길,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정부에 대해서도 저평가하는데, 그 이유는 북한 정부가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영일은 자신이 북한을 등진 해인 1993년에 많은 북한 주민이 정권이 붕괴해서 미군이 북한에 입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들은 현 북한 정권보다는 미국의 북한 점령이 더 낳을 거라고 분명하게 믿고 있다. 1990년대 초 이후로 반미 감정이 줄었다고 자신의 경험과 현재 작업을 통해 나타났다.

탈북 이후의 삶

4. (기밀) 통계를 보면 탈북자의 대다수가 여성으로 나타났다. 많은 남성이 북한을 떠나려는 시도했지만, 북한 및 중국 국경경비대에 의해 체포되는 경우가 여성보다 남성이 아주 높다. 여성은 중국 사람들에 의해 돌려보내질 공산이 작다. 여성은 중국 남성과 결혼한다든지 다른 대안이 있다. 비록 대부분은 품위가 하락하긴 하지만 외부 사회안으로 더 쉽게 접목할 수가 있다. 다른 요인은 북한에서 활동하는 브로커들이 북한인 한 사람을 빼내는데 대략 미화 3천 달러를 요구한다; 브로커들이 여성 탈북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약속을 지키고, 해당 사례금을 지불할 공산이 남자보다 크기 때문이다.

5. (기밀) 최근 연구에 의하면 대략 탈북자 60퍼센트는 우울증 및 다른 정신 건강 장애를 앓고 있다. 우리 탈북자 민간단체 대화 상대역에 의하면 알코올중독도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북한을 벗어나 중국으로 가는 어려운 여정, 그리고 오랜 걸리는 남한 동화 기간이 그러한 정신적 장애의 2가지 최대 원인이라고 박성철은 말하였다.

6. (기밀) 탈북자 민간단체는 자기 정체성과 동화가 남한에서 사는 탈북자에게 문제가 되는 가장 큰 도전이라고 역시 덧붙였다. 탈북자 대부분은 남한 정착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을 북한 주민으로 보는데, 피해 갈 수 없는 북한 억양과 영양 부족, 그리고 제한적인 직업기술 등을 통틀어 남한 사회에 통합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심리적인 문제들은 탈북자가 남한에 오래 머무르게 될수록 나아진다. 평균적으로 4년이나 5년이면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와 문화 속에서 꽤 편하게 느끼게 된다.

북한 지도부

7. (기밀) 우리 탈북자 민간단체 대화 상대역들은 남한의 탈북자가 김정일 정권의 붕괴 이후에 북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김정일 사망 이후에 북한이 군과 민간인으로 구성된 집단 지도부에 의해 통치될 거라고 믿고 있지만, 그런 통치가 안정적일 지는 의심하였다. 김형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북한의 집단 지도부는 평균 70세의 나이 든 엘리트로 구성되어 있다고 발언하였다. 그들은 이념적으론 친중국이며 어떤 민주주의나 시장 자본주의로 북한을 개방하는 일에는 매우 반대한다. 집단 지도부는 어떠한 변화를 바라지 않으며, 집단 지도부는 내부 권력 다툼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특히 교육 부문에서 탈북자를 잘 지원할 것이고, 그래서 그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국자의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거라고 한 탈북자 민간단체 대표는 제안하였다.

탈북자에 대한 미국의 지원

8. (기밀) 미국이 탈북자를 도우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캠벨 차관보가 묻자, 탈북자 민간단체는 3가지 영역을 확인해 주었다: 미국으로 이주하려는 탈북자의 검증 절차를 간소화; 국무부의 예산 책정을 확대; 그리고 한국에 정착하는 탈북자를 위한 교육의 기회 확대.

  • 최근 중국을 방문한 김성민은 상당한 수의 탈북자들이 미국 이주에 관심을 표명하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그 중 많은 수가 미국정부의 6개월 검증 과정으로 낙담하고 있는데, 한국정부의 2개월 과정보다 더 길다. 만일 검증 절차가 간소화되면, 더 많은 북한 사람이 미국에 재정착하길 원할 거라고 김성민은 말하였다.
  • 김영일은 미국정부가 중국에 있는 탈북자를 위한 국무부 예산을 확대해서 남한에서 활동하는 민간단체들을 포함해 줄 것을 제안하였다. 물론 그들이 중국에 있는 탈북자 문제에 대한 일을 도모할 상황에 해당한다. 현재 국무부 난민 예산의 5퍼센트가 남한을 대상으로 배정되어 있고, 20~30퍼센트가 중국에 배정되어 있다고 김영일은 주장하였다.
  • 몇몇 탈북자 민간단체 대표는 탈북자 학생을 위한 교육 기회가 큰 역할을 하게 될 거라고 지적하였다. 그들은 미국 유학을 위한 장학생 제도를 예상해 보고 싶을 것이다. 특히 영어 프로그램.

9. (기밀) 캠벨 차관보는 향후 논의를 요청하면서 탈북자 민간단체와의 회동을 마감하였다. 또한, 향후 미국정부의 탈북자 지원과 관련해 더 잘 숙지하도록 그들 각자의 단체가 알게 된 특정한 프로그램 구상, 전략, 그리고 교훈 등을 공유하라고 단체 대표들에게 당부하였다.

10. (미분류) 캠벨 차관보는 이 전문을 승인하였다.
스티븐스

저작권자ⓒ 위키리크스 한국(공유 허용)-무단복제, 전재 금지

원본 및 내려받기

09SEOUL1170.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1170 
 
SIPDIS 
 
E.O. 12958: DECL: 07/24/2019 
TAG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PREF [Refugees], PHUM [Human Rights], PINR [Intelligence], KN [Korea (North)], KS [Korea (South)] 
SUBJECT: A/S CAMPBELL'S MEETING WITH NORTH KOREAN REFUGEE 
LEADERS 
 
Classified By: Ambassador Stephens.  Reasons 1.4(b/d) 
 
¶1.  (C) In a July 19 meeting with EAP Assistant Secretary 
Kurt M. Campbell, representatives of NGOs working with North 
Korean refugees -- themselves all North Korean refugees -- 
described their work, their lives in DPRK, the North Korean 
leadership, and humanitarian challenges of North Korean 
refugees.  A/S Campbell asked the refugee leaders to bring 
program ideas and proposals for possible USG assistance in 
future meetings.  Our NGO interlocutors were: Kim Young-il, 
Executive Director of the People for Successful Corean 
Reunification (PSCORE); Kim Seong-min, Free North Korea 
Radio; Kim Heung-kwang, North Korea Intellectuals Solidarity; 
Kim Seung-cheol, North Korea Reform Radio; Dr. Lee Ae-ran, 
Associate Research Fellow at Ewha Institute Unification 
Studies; and Kang Cheol-hwan, author of Aquariums in 
Pyongyang and staff writer at the Chosunilbo Daily. 
 
------------------------------------------ 
North Korean Sentiments Toward Foreigners 
------------------------------------------ 
 
¶2.  (C) Kim Seoung-min and Kim Seung-cheol, among the most 
prominent operators of radio broadcasts into North Korea, 
discussed how radios and cell phones continued to be a 
primary tool for North Koreans to gain access to the outside 
world.  Their organizations have found that many North 
Koreans secretly alter their radios so that they can listen 
to short-wave broadcasts from stations like Free North Korea 
Radio and North Korea Reform Radio.  A recent survey 
conducted by Radio Free Asia showed that some 30 percent of 
defectors interviewed upon arrival had either listened to or 
heard of their broadcasts while living in North Korea.  While 
this did not mean that 30 percent of North Koreans were 
listening to foreign broadcasts, the survey did show that the 
numbers were quite high, according to Kim Seung-cheol. 
 
¶3.  (C) Despite these trends, NGO representatives largely 
agreed that North Koreans remained largely ignorant of 
outside developments, finding it difficult to have thoughts 
different from the state propaganda; most North Koreans 
believed the U.S. to be the cause of socio-economic problems 
in North Korea.  This was also true of recent refugees; they 
did not have positive views toward Americans and Japanese. 
Still, several NGO representatives argued, North Koreans had 
an even lower view of their own authorities, because of the 
state's failure to provide the minimum necessities of life. 
Kim Young-il recounted that in 1993, the year he left North 
Korea, he had heard many North Koreans wishing that the 
regime would collapse so that American troops could enter the 
North.  They clearly believed that a US occupation would be 
better than the current regime.  His experience and current 
work has found that that anti-American sentiment has lessened 
since the early 1990s. 
 
-------------------- 
Life after Defection 
-------------------- 
 
¶4.   (C) Statistics show that the large majority of defectors 
from North Korea are women.  Kim Young-il explained that many 
men also try to leave North Korea, but that the incidence of 
arrest -- by North Korean and Chinese border guards -- is far 
higher for men than women.  Women are less likely to be 
returned by the Chinese.  Women also have other alternatives 
such as marrying Chinese men that, albeit degrading in many 
circumstances, allows them to integrate more easily into 
outside societies.  Another factor is the brokers operating 
in ROK, who charge approximately USD 3000 to bring out one 
North Korean; brokers prefer women defectors because they are 
more likely to keep their promise and pay these fees than 
men. 
 
¶5.  (C) Approximately 60 percent of defectors suffer from 
depression and/or other mental health disorders, according to 
a recent study.  Alcoholism is also a serious problem, 
according to our NGO interlocutors.  Kim Seoung-cheol stated 
that the difficult journey out of North Korea to China and 
the long assimilation period in South Korea were the top two 
causes for these disorders. 
 
¶6.  (C) The NGO leaders also added self-identification and 
assimilation as major challenges problems for the North 
Korean refugees living in South Korea.  Most defectors 
continue to view themselves as North Korean after 
resettlement, which, combined with their unmistakable North 
Korean accent, nutritional deficiencies and limited 
vocational skill-sets, make integration into the South Korean 
 
society very difficult.  Still, these psychological problems 
typically get better the longer the refugee stays in South 
Korea.  On average, after four or five years, a North Korean 
refugee will feel quite comfortable in South Korean society 
and culture. 
 
----------------------- 
North Korean Leadership 
----------------------- 
 
¶7.  (C) Our NGO interlocutors believed that North Korean 
refugees in South Korea could play important roles in North 
Korea after the collapse of the Kim Jong-il regime.  While 
they believed that North Korea would be ruled by a collective 
leadership -- military and civilian -- after the death of Kim 
Jong-il, they doubted that such rule would be stable.  Kim 
Heung-kwang, Representative at North Korea Intellectuals 
Solidarity, remarked that collective leadership in North 
Korea consisted of older elites averaging 70 years of age. 
They were ideologically pro-Chinese and very opposed to any 
opening of North Korea to democracy or market capitalism. 
The collective leadership had no desire to change anything 
and, inevitably, with any collective system, there would be 
internal power struggle.  The United States would do well to 
support refugees, especially in education, so that they could 
go back to North Korea and assume positions of authority, one 
NGO representative proposed. 
 
--------------------------------------- 
US Assistance for North Korean Refugees 
--------------------------------------- 
 
¶8.  (C) Responding to A/S Campbell's question on what the 
U.S. could do to help North Korean refugees, NGO 
representatives identified three areas:  shorten the 
verification process for defectors seeking to enter the 
United States; broaden budget allocations from the State 
Department; and increase educational opportunities for 
refugees resettled in the ROK. 
 
-- In a recent visit to China, Kim Seoung-min found that a 
considerable amount of North Korean defectors expressed an 
interest in re-locating to the U.S.  Many of them, however, 
were discouraged by the USG's 6-month verification process, 
which is much longer than the ROKG's 2-month process.  Kim 
Seoung-min believed that many more North Koreans would want 
to resettle in the US if the process time was reduced. 
 
-- Kim Young-il proposed that the USG consider broadening the 
State Department budget for refugee issues in China to 
include NGOs operating in South Korea, provided they work 
with North Korean refugee issues in the PRC.  Currently, 5 
percent of the Department's refugee budget is allocated for 
South Korea and 20-30 percent is allocated to the PRC, Kim 
claimed. 
 
-- Several NGO representatives noted that education 
opportunities for North Korean refugee students would play an 
important role.  They would like to see scholarships to study 
in the U.S., particularly English-language programs. 
 
¶9.  (C) Assistant Secretary Campbell closed the meeting by 
calling for future discussions, and asking NGO 
representatives to share specific programming ideas, 
strategies and lessons learned from their respective 
organizations to better inform future USG humanitarian 
support to North Korean defectors. 
¶10.  (U) A/S Campbell has cleared this message. 
STEPHENS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3)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4)
[Refugees]
5)
[Human Rights]
6)
[Intelligence]
7)
[Korea (North)]
8)
[Korea (South)]
9)
번역 주: 전부 탈북자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