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적인 킹메이커 천정배의 대통합-백일몽인가, 정치적 선견지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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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615 2007-03-05 02:21 기밀(3급) 주한 미국 대사관
  • 기 밀 SEOUL 000615
  • 국방부망 배포1)
  • 국방부망 배포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02/27/2017
  • 태그: PGOV2), PREL3), KS4)
  • 제 목: 낙천적인 킹메이커 천정배의 대통합—백일몽인가, 정치적 선견지명인가?
  •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 근거 1.4 (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06/03 11:56

요점

1. (기밀) 요점: 2월 27일 버시바우 대사와 함께한 오찬 회동에서,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진보 성향의 유권자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개혁 정당에 대한 지지를 갱신 할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노력에 앞장서기 위해 1월 열린우리당을 떠났다고 말했다. “대통합” 창출을 통해서 노무현 정부를 만들어준 유권자들을 되찾아 오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2003년 그의 경험에 기초해서 비한나라당 지지 세력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분명한 비전과 정강을 보유한 새로운 개혁 정당을 창당하겠다고 천정배는 말했다.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천정배는 희망적이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2월 23일 천정배와 버시바우 대사는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협정에 더해 베이징 6자 회담에서 타결된 2.13 “초기조치” 합의 전망도 논의하였다. 언제나 낙천주의자인 천정배는 북한에 요구되는 조치를 북한이 완수할 가능성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가까스로 대통령 선거에 등록한 천정배는 정운찬 서울대학교 교수 등과 같은 외부 인사를 대통령 후보들을 포섭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요약 끝.

그가 창당에 공헌한 정당을 떠나

2.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천 의원에게 그가 탈당하는 이유에 더해 그의 탈당과 열린 우리당 해체가 12월 대선을 앞두고 진보 세력을 소생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천정배는 열린우리당은 안으로부터의 쇄신을 할 수 없었던 까닭에 새로운 개혁 정당 창당에 앞장서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완패한 이후에 우리당이 위기에 직면했다고 덧붙였다. 9개월이 지났지만, 집권당의 혁신을 위한 어떠한 진전이 없었다. 그러므로 극적인 열린우리당 탈출 없이는 12월 대선에서 승리할 기회가 전혀 없다. 덧붙여서 당이 “사망”하기 전까지는 당에 헌신하는 몇몇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에 잔류할 것이기에, 안으로부터의 열린우리당 개혁은 불가능하다.

3. (기밀) 천정배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3명의 설립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우리당을 떠나지 않아야 함을 인정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으며 새로운 정치적 진로를 개척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는 2003년 당시 새천년민주당이 2004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2003년에 신당을 창당하였다. 창당 목적은 당시 새천년민주당을(현 민주당) 해체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모든 집권당 의원들이 새로운 열린우리당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인 본능은 정확했다: 열린 우리당의 창당으로 집권당은 2004년 선거에서 299개 의석 중 152개 의석을 승리할 수 있었다. 2007년과 2008년의 정치적 절박함은 2003년과 2004년 상황과 동일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정당의 창당 없이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대통합: 청와대로 가는 열쇠?

4. (기밀) 그러므로 천정배의 목표는 2002년 개혁성향의 인물들이 노무현의 당선을 일궈냈듯이 2007년에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고 “대통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2003년에 그가 열린우리당을 설립했을 당시, 누구도 정당의 비전이나 정치 정강에 관해 물어 보지 않았다. 지금은 너도나도 물어본다며 3년 만에 이러한 변화는 놀라운 일이라고 천정배는 말했다. 천정배는 “대통합”을 일궈 내기가 쉽지 않으며, 그가 만들 새로운 정당은 성공하기 위해선 분명한 비전과 정책을 반드시 지녀야 함을 인정하였다. 지금은 단지 몇 명의 의원만 열린 우리당을 나왔는데(31명 탈당, 108명 유지) 더 많은 탈당이 있기까지는 정운찬 서울대학교 총장 등과 같은 새로운 대선 후보를 영입하거나, 효과적인 창당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목표는 새로운 정책 기반 정당의 창당이 요구됨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5. (기밀)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과 김근태도 역시 신당을 만들길 원하고 있다고 천정배는 설명하였다. 만일 그들이 당을 떠나 새로운 목표를 향해 일하면 추동력을 만들 것이다. 만일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행복하겠지만, 진보 세력이 당면한 위기를 처리하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것이 개인적인 야망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정배는 중도, 개혁 지향의 정당 발전을 통해 진보 세력이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6.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언제 신당이 출연할 것이며, 얼마나 빨리 그 밖에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해야 하는지 물었다. 천정배는 6월까지는 새 정당이 창당 발기위원회를 수립되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2월 14일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현 열린우리당 의장인 정세균이 한 달 안으로 연합 정당 구성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공언하였다. 그러므로 3월 14일 즈음에 더 많은 열린우리당 탈당자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천정배는 말했다.

7.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적합한 대통령 후보를 발굴하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며 한나라당 후보가 선출되는 6월 22일보다 여당 대선 후보가 늦게 출연한다면 불리한 것이 아닌지 물었다. 천정배는 생경한 외부 인사가 알려지고 대선 출마를 하는 데 2달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시간 안에 좋은 이미지가 만들어질 수 있고, 후보자를 유권자에게 “선보일” 수 있다. 만일 오랜 기간 선거운동을 하게 되면, 단점이 명백히 드러나기 시작할 수 있다.

8. (기밀) 천정배는 2002년 대통령 경선 중에 100명이 넘는 의원 중 유일하게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열린우리당을 만들 당시, 사람들 대부분이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다수당 확보가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지만, 그는 성공했었다. 그는 총선 결과가 운이 좋아서 그랬을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로 인해 그는 자신감을 갖고 낙관할 수 있게 되었다.

개혁정당 의제?

9.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만일 새 정당이 보수적인 정책 공약을 보유할 것인지 혹은 예로 전 경기도 지사 손학규가 경쟁에 뛰어들도록 유인할 것인지 물었다. 2월 6일에 함께 탈당한 열린우리당 23명 그룹은 손학규를 영입해서, 한층 더 보수적인 공약으로 지지를 확보하기 희망하지만, 천정배는 전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과 유사한 한층 진보적인 정책 접근을 희망하였다. 김대중의 정책과 달라질 점은 현 경제적 어려움에 더해 확대되고 있는 빈부 격차를 완화하는 데 더 많이 집중할 것이다. 천정배는 손학규가 모든 정치 경력을 한나라당에서 지냈기 때문에 그가 한나라당을 떠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천정배는 말했다.

민주당의 미래?

10. (기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더해 호남 지역과 강한 유대 관계가 있는 민주당의 미래에 관해 묻자, 천정배는 김대중 충성파들은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도움이 될 자체적인 대선 후보를 아마 내보낼 거라고 말했다. 만일 민주당이 5월 3일 전당 대회에서 민주당 후보를 선발하기로 한다면 일부 의원들은 민주당을 떠나 개혁 모임에 합류할 공산이 크다. 민주당 지지자들과 개혁 모임 지지자들은 겹치며, 거의 모든 진보주의자는 한나라당 후보와 경쟁하기 위해선 단일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필요함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자체 대통령 후보를 낼 공산은 크지 않다.

당의 원칙?

11. (기밀) 천정배는 어떤 원칙을 한국 정당이나 대선 후보자가 따라야 하는지 버시바우 대사에게 물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한국인은 개혁을 원하고, 효율적인 지도부를 원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많은 이들이 노무현의 정책 목표에는 동의하긴 하지만,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성적표에 사람들이 실망하였다. 그러므로 차기 지도자나 여하한 새 정당은 강력한 개혁 공약을 확충하고, 국정 운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에서는 국정 운영의 중요성 때문에 주지사들이 전국적인 무대에서도 잘한다. 아마도 이명박 전 시장이 서울을 잘 운영한 점이 그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도록 기여하였다. 천정배는 국정 운영이 중요한 까닭에 많은 사람이 정운찬이 총리는 잘할 수 있지만, 대통령으로써는 그렇지 못할 거로 생각한다는 데 동의하였다.

개헌

12. (기밀) 노 대통령은 3월 국회에 대통령의 임기를 5년 단임에서 4년 중임제로 변경할 개헌안을 제출한다고 공언하였다. 천정배는 개헌안의 통과가 야당 한나라당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은 아마도 개헌안 통과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일정한 전략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정배는 개혁안이 통과할 기회를 50%로 생각하였다. (주석: 전문가들은 국회에서 필요한 3분의 2 지지 확보 가능성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 주석 끝.)

13.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그가 들어 본 것 중 가장 낙관적인 평가라고 말했다. 개헌은 일리가 있지만, 한나라당은 노무현의 유산으로 돋보이게 할 어떤 계획들도 차단하길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대사는 지적했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동일하게 맞추게 되면 아마도 선거 비용을 줄이고 이득도 늘어날 것이다. 천정배는 선거를 동일하게 맞추게 되면 현재 제도에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심각한 레임덕 현상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가 너무 강조되고,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한미관계의 현황

14.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한미 관계가 매우 좋은 모양새이며, 대선으로 한미 관계가 영향을 받거나, 쟁점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17일에 한국으로 전시작전권을 이양하는 한국의 김장수 국방장관과 게이츠 국방 장관 사이 2월 23일 합의로 양국이 이제 한미동맹의 변혁을 앞당길 수 있게 되었다. 6자 회담에서도 그간 진전이 있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이견 없이”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한미 FTA와 관련해 아직 많은 부분 해결되지 않은 복잡한 이슈가 있지만, 양측은 합의에 근접한 상태이다. 양국 모두에 “승리”가 될 협정을 성공적으로 타결할 수 있다는 실감이 든다. 자동차, 농업, 무역 구제 조치를 처리할 필요가 있지만, 양국이 좋은 합의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한국 국회와 미 의회가 한미 FTA 비준을 할 것으로 희망해 본다. 덧붙여서 한국이 회원국으로 비자 면제 프로그램에 가입할 가능성이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실제 양국 관계는 2년 전보다 더 좋은 모양새라고 버시바우 대사는 논평하였다.

전시 작전통제권

15. (기밀) 천정배는 한미 관계가 공고하며, 장래가 밝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하였다. 특히 미국이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날짜와 관련해 보여준 유연성은 칭찬할만하다. 천정배는 다른 날짜도 있는데 국회의원 선거 날짜일 될 수도 있는 2012년 4월 17일로 합의한 이유를 물었다.

16.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계획된 전시작전권 이양 날짜는 2012년 3월로 예정된 마지막 한미 합동군사연습의 완성 시점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 일각에서는 전작권 이양 협정의 “재협상”을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시간이 가면서 전작권 이양 이후에도 한미동맹이 변함없이 강력할 것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전작권 이양은 신중하게 단계적인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며, 5년간의 이양 기간은 필요한 하드웨어(새 시설)뿐만이 아닌 소프트웨어(훈련)의 개발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허락할 것이다.

17. (기밀) 천정배는 1950년 유엔군에 전작권이 넘어간 이후 한국으로 전시 작전권이 환수되지 않았던 까닭에 많은 퇴역 장성들과 일반인들이 왜 전작권 이양을 우려하는지 그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후로 이런 계획하에 한국은 안정되고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이들은 아직도 한국의 안전과 안보를 담보하는 유일한 길은 전시에 미군의 자동적인 개입을 담보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 천정배는 5년 이후에 새로운 전작권 합의가 안보의 저하로 해석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또한, 천정배는 미국과 한국은 새 전작권 협정 하에 미국의 역할과 헌신을 설명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18.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양국 결의의 강점은 양국 사이 연대에 기초했다는 점에 있다고 강조하였다; 지휘 체계가 아닌 서로를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공유가 안보의 열쇠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주한 미군이 한국민의 요청으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으며, 여하한 물리적인 주둔은 단순히 강력한 한미동맹을 반영할 뿐이라고 지적하였다. 새로운 전작권 협정 하에, 미국의 한국 지원은 더 강해지진 않더라도 본래의 강력함을 유지할 거라고 버시바우 대사는 천정배를 안심시켰다.

2.13 초기조치합의문

19. (기밀) 천정배는 “2.13 초기조치” 합의문에 왜 고농축 우라늄이 언급되지 않았는지 물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고농축 우라늄은 여전히 현안이지만, 베이징 2.13 합의 자체가 초기조치로 한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 파키스탄산 원심분리기를 보유하고 있고 원심분리기로 활용될 수 있는 알루미늄관을 취득했다는 확인된 점과 확인이 되지 않은 예로 북한이 작동 가능한 생산 설비를 보유했는지는 그간 극명하게 구분을 지어 왔다고 버시바우 대사는 말했다. 베이징 2.13 합의 하에, 북한은 초기 60일 기간 이후에 선언 단계에서 자체 핵 능력과 장비를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버시바우 대사는 말했다. 초기 단계에 이후 더해지는 다음 단계는 완전한 핵 선언과 현존하는 시설물의 불능화가 요구되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20.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한겨울이란 중대시기 중에 인도적 원조가 필요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했지만, 측정 가능한 대북 원조 재계 접근방식을 촉구했다. 초기 원조의 방출이 합의 도출과 동시에 이뤄지는 게 아마도 적절하겠지만, 북한의 입증 노력을 조건으로 삼아야만 한다. 모든 당사국은 북한이 취하는 조치의 적합성을 평가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상태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등 점진적으로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베이징 2.13 합의의 강점 중의 하나는 1994년 제네바 협약보다 5개 당사국에 더 많은 재량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아마도 이번 합의가 북한을 다루는 효과적인 “당근”뿐만 아닌 “채찍” 사용 방법에 관한 교훈이 될 것이다. 천정배는 행동 대 행동, 성과 바탕을 둔 접근 방식이 현명하다는 점에 견해를 같이하였다.

북한과 더불어 성공할 전망

21. (기밀) 부시 대통령은 외교적인 수단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하길 원한다고 버시바우 대사는 말했다. 이는 북한에는 북미 관계와 전 세계를 상대로 관계를 변모시키기 위한 절호의 기회이다. 천정배는 북한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예단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이번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북한 정권의 지속을 담보하는 유일한 길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 제네바 협약 이후에 한 전문가는 동 협약이 북한의 외교적인 승리였지만, 미국에는 더 큰 승리인 이유는 핵위기를 모면했고, 제한적이나마 평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2.13 초기조치” 합의문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지만, 한반도 상에 영구적인 평화로 가는 첫 단계이길 희망한다.

논평

22. (기밀) 천정배는 가까스로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등록했지만, 그가 과거 킹 메이커로써 보여준 성공은 그의 특출한 정치적 본능을 입증해 준다. 더 나아가서 천정배는 동료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정치 비전, 조직 능력으로 평판이 나 있으며, 무엇보다도 청렴결백하다. 천정배는 아마도 대선 후보가 아니더라도 차기 대선에서 하나의 변수가 될 것이다.
버시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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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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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02/27/2017 
TAGS: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KS [Korea (South)] 
SUBJECT: OPTIMISTIC KINGMAKER CHUN JUNG-BAE'S GREAT 
SOLIDARITY - PIPE DREAM OR POLITICAL VISION?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1.  (C) Summary: In a February 27 luncheon meeting with the 
Ambassador, former Justice Minister Chun Jung-bae said that 
he left the Uri Party in January in order to spearhead 
efforts to create a new political party to revitalize 
progressive voters and renew support for a reform-minded 
party.  Through creating a "Grand Solidarity," Chun said it 
was possible to recapture the voters who voted Roh Moo-hyun 
into power.  Based on his 2003 experience when he formed the 
Uri Party, Chun said he would attempt to form a new reform 
party with a clear vision and policy platform that could 
unite and mobilize non-GNP support.  While allowing that the 
road ahead was difficult, Chun was confident and hopeful. 
Chun and the Ambassador discussed the February 23 OPCON 
transfer agreement as well as the prospects for the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reached at the Six Party Talks 
in Beijing.  Chun, ever the optimist, said he thought that 
prospects for the DPRK to follow through on its required 
actions were good.  Barely registering in presidential polls, 
Chun said he hopes to create a new party in March that can 
attract outside Presidential candidates such as SNU Professor 
Chung Un-chan.  End Summary. 
 
LEAVING THE PARTY HE HELPED FOUND 
--------------------------------- 
 
¶2.  (C) The Ambassador asked why Rep. Chun decided to leave 
the Uri Party and whether Chun thought his departure and the 
imminent dissolution of the Uri Party would lead to a 
revitalization of progressive forces prior to December's 
Presidential elections.  Chun emphasized that the Uri Party 
could not renew itself from within and therefore he was 
compelled to leave the party to spearhead efforts to create a 
new, reform-minded party.  He added that since the Uri 
Party's complete loss in the May 31, 2006 local elections, 
the party faced a crisis.  Nine months later, no progress had 
been made to revamp the ruling party.  Therefore, without a 
dramatic departure from the Uri Party, there was no chance in 
the December elections.  Additionally, there remain several 
lawmakers who are committed to the Uri Party until its 
"death" and this makes reform of the Uri Party from within 
impossible. 
 
¶3. (C) Chun admitted that as one of the three main founders 
of the Uri Party in 2003, he should not have left the party; 
still he saw no alternative but to take responsibility for 
charting a new political direction.  He formed a new party in 
2003 because the then-ruling Millennium Democratic Party 
(MDP) could not have won the April 2004 National Assembly 
(NA) elections.  The intention was not to break up the ruling 
MDP (now the Democratic Party or DP) at that time, as he 
expected all the ruling party lawmakers to join the new Uri 
Party.  His political instinct was correct: with the 
formation of the Uri Party, the ruling party was able to win 
152 out of 299 seats in the 2004 elections.  The political 
imperatives are the same in 2007 and 2008 as they were in 
2003 and 2004 - without the formation of a new party, there 
would be no chance of winning the presidential or NA 
elections. 
 
GRAND SOLIDARITY: KEY TO THE BLUE HOUSE? 
---------------------------------------- 
 
¶4.  (C) Therefore, Chun's goal was to create a new party and 
a "Grand Solidarity" in 2007, just as reform-minded people 
did in 2002 in achieving the election of Roh Moo-hyun.  When 
he founded the Uri Party in 2003, no one asked about the 
party's vision or its policy platform.  Now everyone asks 
this and this change in just three years was amazing, Chun 
commented.  Chun admitted it would not be easy to create this 
"Grand Solidarity," the new party he will form must have a 
clear vision and policies in order to succeed.  Now, only a 
few have left the Uri Party (31 have left, 108 remain) and 
until more leave, it will be difficult to form an effective 
party or attract new Presidential candidates such as former 
Seoul National University Chancellor Chung Un-chan. 
Therefore, the current goal is to convince people of the need 
for the creation of a new policy-based political party. 
 
¶5.  (C) Former Uri Party Chairmen Chung Dong-young and Kim 
 
Geun-tae both want to form a new party as well, Chun 
explained.  If they leave to work the Party toward this goal, 
it would create momentum, Chun said that while he would be 
happy to be president, dealing with the crisis the 
progressives faced and creating a new party was more 
important than personal ambition.  Chun was confident that 
through the development of a centrist, reform-minded party, 
progressives could regain support. 
 
¶6.  (C) The Ambassador asked when the new party should emerge 
and how soon other lawmakers should leave the Uri Party. 
Chun replied that by June a new party should have established 
a party formation committee.  At the Uri Party convention 
February 14, current Uri Party Chairman Chung Se-kyun pledged 
concrete steps toward the formation of a coalition party 
within one month.  Therefore, Chun said, around March 14 
there should be more defections from the Uri Party. 
 
¶7.  (C) The Ambassador noted that finding the right 
Presidential candidate might be difficult and asked if it 
would be disadvantageous for a candidate to emerge later than 
June 22, when the GNP candidate will be selected.  Chun said 
that it takes two months for a complete outsider to become 
known and campaign for office.  In that time, a good image 
can be made and a candidate can be "introduced" to voters. 
If you campaign for longer, weak points could begin to become 
apparent. 
 
¶8.  (C) Chun said that during the presidential primary in 
2002 he was the only lawmaker among over 100 who supported 
then-candidate Roh.  When he formed the Uri Party, most said 
it would be impossible to capture a majority in the 2004 NA 
elections, but he succeeded.  Therefore, while he admitted 
these results could have been luck, they led him to be 
confident and optimistic. 
 
REFORM PARTY AGENDA? 
-------------------- 
 
¶9.  (C) The Ambassador asked if the new party would have a 
more conservative policy platform or attempt to entice a GNP 
candidate such as former Gyeonggi Province Governor Sohn 
Hak-kyu to compete.  Chun said that while the group of 23 
former Uri lawmakers who left together February 6 hoped to 
recruit Sohn and gain support with a more conservative 
platform, Chun hoped to have a more progressive policy 
approach similar to that of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DJ).  There would be differences from DJ's policies to focus 
more on alleviating current economic difficulties and the 
growing divide between rich and poor.  Chun said that there 
was no chance Sohn would leave the GNP since he had served 
all his political career in the GNP. 
 
DEMOCRATIC PARTY'S FUTURE? 
-------------------------- 
 
¶10.  (C) Asked about the future of the Democratic Party (DP), 
a party with strong ties to the southwest and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Chun said the DJ loyalists might 
field their own candidate for president to help DP lawmakers 
in the 2008 parliamentary elections.  If the DP decided to 
field its own candidate at its April 3 party convention, 
several lawmakers would likely leave the party and join the 
reform group.  The DP supporters and the reform group 
supporters overlapped and since almost all progressives 
realized the necessity of fielding a single candidate to 
compete with the GNP, it was unlikely the DP would have its 
own candidate for president. 
 
PARTY PRINCIPLES? 
----------------- 
 
¶11.  (C) Chun asked the Ambassador what principles candidates 
and parties in Korea should follow.  The Ambassador replied 
that he thought Koreans wanted reform and efficient 
leadership. While many agreed with Roh's policy goals, they 
were disappointed with his performance.  Therefore, the next 
leader and any new party should have a solid reform platform 
and project a capacity to manage.  Because of the importance 
of management in the U.S., governors do well on the national 
stage.  Perhaps former Seoul Mayor Lee Myung-bak's good 
management of Seoul contributed to his lead in all polls. 
Chun agreed that because management was important; many 
thought Chung Un-chan could do well as Prime Minister, but 
not as president. 
 
CONSTITUTIONAL REFORM 
--------------------- 
 
¶12.  (C) President Roh pledged to present a Constitutional 
Reform to the National Assembly in March that would change 
the president's term in office from five years to four and 
allow two terms in office.  Chun said that the passage of the 
reform rested with the opposition GNP.  Roh probably had some 
strategy that could give the reform a chance.  Therefore, he 
thought there was a 50-percent chance the reform would pass. 
(Note: No pundits give the reform any chance of obtaining the 
necessary two-thirds support in the NA.  End Note) 
 
¶13.  (C) The Ambassador said this was the most optimistic 
assessment he had heard.  While he noted the reform made 
sense, it seemed the GNP wanted to block any Roh plans that 
would improve his legacy.  The synchronization of the 
Assembly and presidential elections would probably help 
reduce election costs and increase interest.  Chun agreed 
that synchronizing the elections would help avoid the severe 
lame-duck phenomenon we see in the current system, but it 
might give too much emphasis to the presidential election and 
too much power to the president. 
 
THE STATE OF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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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U.S.-ROK relationship 
was in very good shape and we hoped that it would not be 
affected by -- or become an issue in -- the elections.  With 
the February 23 agreement on the transfer of wartime 
operational control to Korea on April 17, 2012 between ROK 
Defense Minister Kim and Secretary of Defense Gates, we can 
now move forward with the transformation of the Alliance.  On 
the Six Party Talks, there has been progress; the ROKG and 
the USG were working closely together with "no gap."  On the 
FTA, our two sides were close to an agreement despite many as 
yet unresolved, complex issues.  There is a real sense that 
we can succeed with an agreement that was a "win" for both 
countries.  Autos, agriculture and trade remedies needed to 
be dealt with, but if we succeed in producing a good 
agreement, hopefully the National Assembly and the U.S. 
Congress would ratify the KORUS FTA.  In addition, Korean 
entry into the Visa Waiver Program is becoming more likely. 
Indeed, our relations were in better shape than they were two 
years ago, the Ambassador commented. 
 
 
OP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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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 Chun agreed the U.S.-ROK relationship was strong and 
had a bright future.  Particularly, the flexibility the U.S. 
showed on the date of transfer of OPCON was laudable.  Chun 
asked why April 17, 2012 was agreed upon versus another date 
since April 17 could be the day of parliamentary elections in 
Korea. 
 
 
¶16.  (C) The Ambassador said the planned date of transfer of 
wartime operational control (OPCON) was set to allow the 
completion of a final joint military exercise scheduled for 
March 2012.  While some in the GNP continue to request a 
"renegotiation" of the agreement, over time people will 
understand the Alliance will be just as strong after the 
transfer of OPCON.  The transfer of OPCON will take place in 
a careful, step-by-step manner and the five-year transition 
period will allow sufficient time for development of the 
necessary hardware (new facilities) as well as software 
(training). 
 
¶17.  (C) Chun said he understood why many retired generals 
and common people were concerned about the transfer since 
Korea has not had Wartime OPCON since it was handed over to 
the UN in 1950.  Since then, Korea has been stable and secure 
under this arrangement.  Many still think that the sole 
guarantee of Korea's safety and security is the assurance of 
 
automatic involvement by U.S. forces in case of war.  Chun 
said he was confident that in five years we can explain to 
people effectively that the new arrangement does not mean a 
decrease in security.  Also, Chun said the U.S. and Korea 
should work to explain the U.S. role and commitment under the 
new agreement. 
 
¶18.  (C) The Ambassador emphasized that the strength of our 
commitment was based on solidarity between our countries; a 
shared willingness to protect each other was the key to 
security, not the nature of the command structure.  The 
Ambassador noted that U.S. military was in Korea at the 
request of the Korean people and any physical presence was 
simply a reflection of our strong alliance.  Under the new 
agreement, U.S. support for Korea will be just as strong if 
not stronger, the Ambassador assured Chun. 
 
FEBRUARY 13 "INITIAL ACTIONS" AGRE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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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C) Chun asked why Highly Enriched Uranium (HEU) was not 
mentioned in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The Ambassador 
said that HEU was still an active issue, but that by design, 
the agreement in Beijing was limited to initial actions.  The 
Ambassador said that Assistant Secretary Hill had been very 
clear in distinguishing what is known - that North Korea has 
centrifuges from Pakistan and acquired aluminum tubes that 
could be used as centrifuges - from what is unconfirmed - for 
example, whether or not North Korea has an operational 
production facility.  Under the Beijing agreement, North 
Korea would have to explain its capability and equipment 
during the declaration phase to follow the initial 60-day 
period, the Ambassador said.  The next phase would be much 
more difficult since in addition to these initial steps, a 
complete declaration and disablement of existing facilities 
are required. 
 
¶20.  (C) The Ambassador acknowledged the potential need for 
humanitarian aid during the crucial late winter months, but 
urged a measured approach to the resumption of aid.  While an 
initial release of aid may be appropriate once an agreement 
is reached, it should be conditioned on demonstrated North 
Korean efforts.  All parties should proceed gradually, with 
ample time to assess the adequacy of steps taken by the North 
Koreans, so that we maintain our leverage.  One of the 
strengths of the Beijing agreement is that it provides more 
leverage to the five parties than the 1994 Geneva Accord. 
Perhaps this will serve as a lesson on how to effectively use 
"carrots" as well as "sticks" when dealing with North Korea. 
Chun agreed the action-for-action and incentive-based 
approach was wise. 
 
PROSPECTS FOR SUCCESS WITH DP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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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C) The Ambassador said President Bush wanted to 
denuclearize North Korea through diplomatic means.  This was 
an excellent opportunity for North Korea to transform its 
relations with the U.S. and the world. Chun said it was 
impossible to predict how the North Koreans would act, but 
perhaps they thought making a deal was the only way to assure 
the continuation of their regime.  After the 1994 Geneva 
Accord, one pundit said the agreement was a DPRK diplomatic 
victory but an even bigger U.S. victory because the nuclear 
crisis was averted and peace, though limited, was achieved. 
The "Initial Actions" agreement was just a start, but 
hopefully the first step on the road to a permanent peace on 
the Peninsul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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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C) While Chun barely registers as a candidate in 
presidential polls, his past successes as kingmaker attest to 
his exceptional political instincts.  More than this, Chun is 
widely respected among his colleagues.  Known for his 
political vision, organizational skills and, above all, 
incorruptibility, Chun will be a factor in the next 
presidential election, though probably not as a candidate.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3)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4)
[Korea (So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