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 후보 이명박-보수적 정치사상, 진보적인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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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331 2007-02-02 08:31 미분류 주한 미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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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목: 한국 대통령 후보 이명박: 보수적 정치사상, 진보적인 가슴?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2/11/08 05:21

요점

1. (민감하지만 미분류) 요점: 1월 30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 서울시장이며 야당인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이 44.6%의 지지율로 정상을 달리고 있다. 신혼부부에게 저렴한 주택 공급,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 집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업 등을 약속하면서, 이명박은 단지 보수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지지뿐만이 아닌 전통적인 진보 정당 텃밭에서도 지지를 모으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그의 인생 이야기와 “하면 된다”는 태도에 끌리게 되었고, 서울 시장 시절 그의 업적과 현대 시절 성공에 대해 감탄한다. 이명박이 곤궁한 성장기를 지나 현대 최고경영자로, 대선 선두주자로 기적적인 신분 상승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그의 놀라운 인생 역정은 상당 부분 그의 현 지지율의 원천이다. 요약 끝.

희망의 지도자

2. (민감하지만 미분류) 이명박의 연설은 자연스럽고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일로 다른 후보들에 비해 더 소탈하고 인간적이라고 대사관 정무 직원들은 말한다. 이명박은 군중과 잘 호흡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대선 선두주자라 그가 어디를 가든지 록스타 대접을 받는다. 이명박은 여러 일화를 통해 교훈을 전달하고 서울시장과 현대 최고경영자 시절에 이뤘던 것을 강조하며 그의 미래 정책 계획을 제시한다. 일각에서는 이명박의 연설이 그 속도나 주제가 설교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현재 이명박은 자신을 “희망의 지도자”로 묘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이명박이 2월에 공식 대선 출정식을 열기까지 사실상 선거본부 역할을 하는 싱크탱크인 안국포럼의 명함은 이명박의 선거 구호를 대변한다. “안국”이란 한국어로 “평화로운 국가”를 뜻한다. 명함에 나오는 열린 문은 “미래로 가는 열린 문”을 상징한다.

타성에 젖은 선거운동: 위험스런 규모?

3. (민감하지만 미분류) 이명박은 무려 100명의 공식 비공식 직원에 더해 그를 지원하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인상적인 인적 네트워크와 더불어 탄탄한 재정과 함께 선거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조직 내부에 논쟁과 내분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전문가들은 안국포럼 내부의 다툼을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 요직의 향배를 놓고 이회창 캠프 내부에서 벌어진 다툼과 비교한 바 있다. 2007년 1월 중순까지 안국포럼 명함에 기재된 숫자는 이명박 캠프에 참여한 사람들의 순서를 나타낸다. 그러나 그 숫자가 이명박에 가까운 사람의 순서로 서열을 나타낸다는 소문이 있다.

한나라당 단결?

4. (민감하지만 미분류) 대사관 정무 직원이 목격한 1월 23일 이명박의 부산 연설에서 이명박은 한나라당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2007년 대선을 위해 단일 후보를 뒷받침하기 위해 똘똘 뭉치는 것이라고 이명박은 말하였다. 이를 위해서 이명박은 다른 두 명의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를 칭찬하면서 자신은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애를 낳아 본 여자만이 보육을 얘기할 수 있다”는 최근 이명박의 발언은 박근혜를 지목한 것이 아니며, 전후 문맥을 무시한 내용이라고 이명박은 주장하였다. 이명박은 해당 발언이 언론의 주목받는 이유는 “싸움이 신문을 팔아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명박은 향후 연설 내용에 좀 더 신중을 기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만일 이명박이 됐건 박근혜가 됐건 한나라당을 떠나 신당을 결성한다면 1997년 당시 이인제와 이회창이 한나라당 표를 갈라놓으면서 김대중이 당선되었던 것과 같이 집권당 후보에 기회가 열린다고 전문가 대부분은 견해를 같이하였다.

5. (민감하지만 미분류) 국회에서 이명박의 대표적인 참모 중 한 명인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이미 출범한 빡빡한 선거 일정을 12월까지 육체적으로 소화함에 더해 연설에서 실수하지 않는 등 이명박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은 그 자신이라고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하였다. 전문가들은 “불도저”가 수많은 난관에 봉착할 거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요즘 같은 인터넷과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 시대에선 이명박의 가능한 과거 악행으로부터 그의 즉흥적인 연설 스타일까지 현재 이명박이 누리고 있는 지지율이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일푼에서 거부가 되기까지

6. (민감하지만 미분류) 이명박은 1941년 일본 오사카에 어느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1945년 한국이 광복된 이후 포항으로 왔다. 이명박은 초등학교 때부터 잡다한 일로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다; 성냥개비에 황을 입히고 판매하는 일과 번데기와 같은 길거리 음식 판매. 이명박의 어머니는 이명박이 우등생을 유지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한 야간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명박은 자신이 학급에서 일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똑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학급 누구도 공부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군것질거리를 파는 걸 창피해 하지 말며 정직하게 벌어 쓰는 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 이명박에게 말하곤 했다. 이명박의 꿈은 항상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이었으며 얼마를 받건 일자리가 있으면 행복해질 거로 생각했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그의 경제 공약의 핵심에는 모든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 모든 임금 수준을 망라한 일자리 창출이 자리하고 있다.

7. (민감하지만 미분류) 고등학교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 상경한 이후 노동자로 일하면서 청계천 근처 헌책방에서 구매한 헌책으로 공부하였고 경영학 학사 자격과 함께 명문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64년 총학생회장으로 일하던 가운데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동한 협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많은 학생은 한일협정을 부당한 협정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감방에서 6개월을 복역한 이후에 석방되었다.

행운이 깃든 서신 교환

8. (민감하지만 미분류) 이명박의 감옥살이로 말미암아 이명박은 졸업 후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명박은 박정희 당시 대통령 (이명박의 소속당 한나라당 맞수 박근혜의 아버지) 진심 어린 편지를 썼다. “만일 국가가 개인의 삶의 앞길을 저해한다면, 정부는 영원히 그 개인에게 빚을 지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당사자의 입을 통한 설명으로는 청와대 직원이 이명박의 격정적인 편지로 인해 직접 개입해서 이명박을 사면하기로 했다. 그는 그 사면 덕택에 “행실을 주의”하겠다는 조건으로 현대건설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9. (민감하지만 미분류) 이명박은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구직 면접에서 “건축이 무엇이냐?”란 한가지 질문하자 이명박은 “창조입니다”고 대답했다고 이명박이 그의 연설 가운데 거론한다. 그 구직 면접 이후에 정주영이 그 구절을 수많은 연설에서 사용했다고 이명박은 말하였다. 그 답변 구절이 현대 그룹 입사를 이끌어준 열쇠라는 말이 있지만, 구전 지식을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명박의 고용과 관련에 정주영에게 찾아갔고 박정희와 정주영 간에 간단한 대화를 교환하던 자리에서 박정희가 조심하란 의미로 “녀석을 유의해서 지켜보라”고 한 말이 “녀석을 보살펴 줘라”란 의미로 해석되어 와전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일 사실이라면 그 대화로 말미암아 이명박이 현대에서 빠르게 출세하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요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기적적인 성공

10. (민감하지만 미분류) MB가(널리 유통되는 호칭) “현대맨”이 되자마자 이명박의 관리자 역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5년 만에 이사가 되었고(전무) 35살이던 12년 만에 현대건설회사 사장이 되었다. 그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많은 봉급쟁이의 동경의 대상인 성공 신화의 모델이 되었다. 그의 인생 이야기는 너무 흥미진진해서 1991년 KBS는 이명박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 “야망의 세월”을 제작하였다. MBC는 그 후속 드라마인 “영웅시대”란 드라마를 제작하였다. 이명박이 말한 바로는 1991년 드라마는 그의 일생과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과의 관계를 95% 정확히 그렸다고 한다. 이명박은 현재 3개의 자서전을 출판했는데, 두 권은 자신의 인생을 다뤘고(“신화는 없다” 그리고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한 권은 서울시장 시절을 다뤘다(“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

김영주의원 “이명박 후보, 현대건설 부도 장본인”김영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정무위)은 25일 금융감독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라크 장기 미수 채권이 현대건설 부도의 주범”이라며 “이라크 장기 미수 채권은 이명박 사장 취임 이후인 79년부터 91년까지다. 장기미수채권은 모두 이 후보가 사장 재직시절 나온 것으로, 부도의 핵심 원인은 이명박 후보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중략) 김 의원은 “리스크가 커서 공사대금 받는 데 어려울 것이란 얘기 있었는데 이를 상쇄할 장치를 마련치 못한 것은 얼마나 주먹구구식 경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라크 장기채권 중 2005년에 1조 6천억원중 80%인 1조 3천억을 탕감키로 하고 6천억원만을 회수하기로 했다. 2006년부터 이자를 13년간 분할해서 받고, 환율하락으로 회수금액은 더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김영주의원 “이명박 후보, 현대건설 부도 장본인” 한겨레

정계 입문

11. (민감하지만 미분류) 1992년 이명박은 정치로 전향해서 당시 집권당인 민주자유당 비례대표 의원직을 확보하였다. 그는 1996년 서울 종로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하였는데, 당시 노무현과 이종찬 후보를 제치고 승리하였다. 이명박은 그의 연설 가운데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가인 자신이 1996년에 노무현 대통령을 이겼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서울시장: 계획성 있는 남자

12. (민감하지만 미분류) 2002~2006년 서울 시장일 당시 이명박은 3.5마일 뻗어 있는 청계천을 드러내는 청계천 복원 사업을 완료하였다. 콘크리트 아래에 잠자던 청계천은 50년이 지난 2005년 10월에 재개장된 이래로 수천 만의 방문객이 청계천을 따라 산책하였다. 청계천 사업으로 이명박은 전국적인 정치 무대로 부상하였고 이명박을 단숨에 대선 기대주로 만들어 주었다. 이명박은 자신이 청계천 복원사업을 설득할 당시 사람들은 불가능한 사업으로 생각했다고 자주 언급하곤 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빌 공’ 자 공(空)약은 안 한다고 선언했고 회의적인 시선에도 사업을 현실화했다고 자랑한다. 청계천 복원 사업의 성공을 한층 극대화하려는 기대에 부푼 이명박은 서울, 부산, 인천, 그리고 종국에 평양까지 연결하는 운하 사업을 그의 대표적인 대선 공약 중의 하나로 제안한다. 20마일 구간을 제외하고 물길로 부산과 서울을 연결한다는 착상을 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은 운하 사업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며 환경 단체의 거대한 반발을 낳을 것으로 판단한다.

13. (민감하지만 미분류) 이명박은 청계천 복원 사업과 버스 제도 개편이 그가 가장 찬사를 받는 사업이기는 하지만, 그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사업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에 이명박은 노숙자들이 일자리를 찾도록 도운 일과 서울 인근 저개발 지역을 복원한 일이 서울 시장으로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말한다.

논평

14. (민감하지만 미분류) 이명박은 과거 최고경영자와 서울 시장을 거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어왔는데, 봄이 오기 전까지 외교 정책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그의 캠페인은 경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이명박 참모들은 대사관 정무 직원에게 말하였다. 만일 대통령 선거라 오늘 열린다면 이명박이 승리할 것 같다. 그러나 대선까지 10개월이 넘게 남은 이상 대선 다툼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이명박 캠프는 지금 같은 자신감과 함께 이회창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며 여론 조사 선두를 지킬 거라고 말한다. (주석: 동아일보 1월 30일 설문조사에서, 2위인 박근혜 후보를 상대로 이명박은 26.4% 앞서 있고 가장 유력한 집권당 후보인 정동영에는 43.1% 앞서고 있다. 주석 끝.)그러나 12월에 이명박이 어떻게 되든 이명박은 뚜렷한 선두 주자로서 독특하고 매혹적인 인생 이야기와 개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어떤 지도자가 될 것인지 모든 사람의 입길에 오르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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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N/A 
TAGS: KS [Korea (South)], PGOV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PINR [Intelligence], PREL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SUBJECT: ROK PRESIDENTIAL CANDIDATE LEE MYUNG-BAK: 
CONSERVATIVE POLITICS, PROGRESSIVE HEART? 
 
 
¶1.  (SBU) Summary:  Former Seoul Mayor and opposition Grand 
National Party (GNP) Presidential Candidate Lee Myung-bak is 
topping the charts with 44.6 percent approval ratings, 
according to a January 30 Donga Ilbo Newspaper poll. 
Promising affordable homes for newly married couples, jobs 
for all and programs for the homeless, he has garnered 
support not just from the conservative GNP supporters but 
also the traditional progressive party base.  The younger 
generation is attracted by his life story and "can do" 
attitude and admires his accomplishments as Seoul Mayor and 
his successes at Hyundai.  His miraculous rise from a 
destitute upbringing to Hyundai CEO to leading presidential 
candidate inspires many, and his amazing life story is the 
source of much of his current support.  End Summary 
 
Leader of Hope 
-------------- 
 
¶2.  (SBU) Lee Myung-bak has a natural and captivating speech 
style that is more folksy and personal than that of the other 
candidates, poloff has observed.  Lee plays crowds well and 
as the charismatic presidential front-runner, receives rock 
star treatment wherever he goes.  Lee delivers lessons 
through anecdotes and lays out his future policy plans by 
highlighting what he did as Seoul Mayor or Hyundai CEO.  Some 
have said that his speeches are sermon-like in their pace and 
theme.  Currently, he is working to depict himself as a 
"leader of hope."  The business cards of Anguk Forum, a think 
tank which currently serves as Lee's de facto campaign 
headquarters until he launches his official campaign in 
February, represent Lee's campaign slogan.  "Anguk" in Korean 
is defined as "peaceful nation."  The open door on the 
business cards symbolizes an "open door to the future." 
 
Campaign Inertia: Danger in Size? 
--------------------------------- 
 
¶3.  (SBU) Lee has a well-financed campaign with over 100 
formal and informal staff, and an impressive network of 
lawmakers supporting his candidacy at the National Assembly. 
However, there are rumors of controversies and infighting 
within the organization.  Pundits have compared the struggles 
within the Forum to the troubles Lee Hoe-chang's camp 
suffered in the 2002 presidential election when there was 
infighting over prospective Blue House positions before the 
election. Up until mid-January 2007, numbers were written on 
the business cards that tracked the order in which people had 
joined Lee Myung-bak's campaign.  However, rumor was that the 
numbers represented in rank order who was closest to Lee. 
 
GNP United? 
----------- 
 
¶4.  (SBU) In a speech Lee delivered in Busan on January 23 
that poloff observed, Lee said that the greatest challenge 
facing the GNP was uniting behind one candidate for the 2007 
presidential election.  To this end, he complimented the 
other two leading GNP presidential hopefuls and proclaimed 
that he would not participate in any negative campaigns.  His 
recent comment that women who have no children have no 
authority to speak on educational reform was not directed at 
Park Geun-hye and was taken out of context, he insisted.  He 
added that the comment was highlighted by the media since "a 
fight sells papers."  He vowed he would be more careful in 
future speeches.  Most pundits agree that if either Lee or 
Park leave the GNP to form a new party, it would open the 
door for a ruling party candidate, much as in 1997 when Rhee 
In-je and Lee Hoe-chang split the GNP vote and this led to 
Kim Dae-jung's election. 
 
¶5.  (SBU) One of Lee Myung-bak's leading advisors at the 
National Assembly, GNP lawmaker Chung Doo-un, told poloff 
that Lee's greatest hurdle to overcome was himself - to 
physically keep up the hectic campaigning pace he has already 
begun until December and also to avoid making a mistake in a 
speech.  Pundits say the "bulldozer" faces many challenges, 
from possible past misdeeds to, in the age of the internet 
and UCC (user created content), his off-the-cuff speaking 
style, either of which could lead to deflation of the support 
he now enjoys. 
 
Rags to Riches 
-------------- 
 
 
¶6.  (SBU) Lee Myung-bak was born into an abjectly poor 
farming household in 1941 in Osaka, Japan and came to Pohang 
in 1945 after Korea was liberated.  Lee had to earn a living 
working odd jobs since his elementary school years; adding 
sulfur covers to matches and selling them, and selling street 
snacks such as fried silkworms.  His mother allowed him to 
attend high school at night as long as he was able to receive 
a scholarship by remaining the top student.  Lee jokes that 
he was able to maintain the number one rank in his class not 
because of his smarts but because no one in his class had the 
time to study.  His mother told him not to be embarrassed to 
sell snacks and be proud because he was earning an honest 
living.  He said his dream was always to have a stable job 
and he thought that with a job, no matter the pay, comes 
happiness.  Hence, at the heart of his economic platform is 
job creation for all ages and at all wage levels. 
 
¶7.  (SBU) After coming to Seoul to earn money after high 
school, while working as a laborer, he studied with used 
books he bought at used bookstores near Cheonggye Stream, and 
graduated from prestigious Korea University with a BA in 
business management.  While serving as the student council 
president in 1964, he was arrested for leading a protest 
against the ROK-Japan normalization of diplomatic relations, 
which many students then considered an unfair agreement.  He 
was released after serving six months in jail. 
 
The Lucky Exchange 
------------------ 
 
¶8.  (SBU) Due to his imprisonment, Lee could not get a job 
upon graduation.  Therefore he wrote a heartfelt letter to 
then President Park Chung-hee (father of Lee's GNP opponent 
Park Geun-hye) saying, "If a government hinders an 
individual's way of life, then the government would be 
forever indebted to that individual."  According to first 
hand accounts, the Blue House staff directly intervened due 
to Lee's impassioned letter and decided to pardon him. 
Thanks to this pardon, he was able to enter Hyundai 
Construction Company, on the condition that he would 
"behave." 
 
¶9.  (SBU) In speeches, Lee recalls that Chung Joo-young, then 
Chairman of Hyundai Group, asked him one question in his job 
interview, "What is construction?" to which Lee responded 
with, "Construction is creation."  After the interview Lee 
said that Chung used this phrase in many speeches.  While the 
phrase may have been his ticket into the Hyundai Group, lore 
has it that former President Park Chung-hee approached Chung 
about hiring Lee and during the brief exchange between Park 
and Chung, there was miscommunication where Park's warning of 
"look out for him" was interpreted to mean "take care of 
him."  This conversation is another factor, if true, that 
could have contributed to Lee's quick rise at Hyundai. 
 
Miraculous Success 
------------------ 
 
¶10.  (SBU) Once MB (as he is known to most) became a 
"Hyundai-man," his capabilities as a manager began to show. 
He became a member of the board (managing director) in five 
years and president of Hyundai Construction Company in 12 
years at the age of 35.  He became the model for the dream of 
success that many salary men aspired to in the 1980s and 
1990s.  His life story was so compelling that in 1991 KBS 
produced a drama about Lee's life, "Times of Ambition" and 
MBC followed up with a drama in 2004, "Times of Heroes." 
According to Lee, the 1991 drama was 95 percent accurate in 
its depiction of his life and his relation to Hyundai 
Chairman Chung Joo-young.  Lee currently has three 
biographies out, two on his life ("There is No Myth" and "I 
See Hope, When Others Talk Despair") and one about his time 
as Seoul Mayor ("Cheonggye Stream Flows Towards the Future"). 
 
 
On to Politics 
-------------- 
 
¶11.  (SBU) In 1992 he shifted to politics and won a 
proportional representation seat in the National Assembly for 
the then-ruling Democratic Liberal Party.  He successfully 
won re-election in 1996 from the Jongro district in Seoul, 
 
defeating candidate Roh Moo-hyun and Lee Jong-chan.  Lee 
highlights in speeches the fact he beat President Roh in 1996 
as a relatively unknown politician. 
 
Seoul Mayor:  A Man with a Plan 
------------------------------- 
 
¶12.  (SBU) As the Mayor of Seoul from 2002-2006, Lee 
completed the Cheonggye stream restoration project that 
uncovered  uncovered a 3.5-mile stretch of the stream.  Since 
the stream was reopened in October 2005 after fifty years 
under concrete, millions of visitors have walked along the 
stream.  This project thrust him onto the national political 
stage and made him an instant presidential favorite.  Lee has 
frequently stated that when he pitched the Cheonggye stream 
restoration project people thought it was impossible; 
however, he declared he does not make empty promises and he 
boasts of the realization of this project despite doubters. 
Hoping to further capitalize on the success of Cheonggye 
stream restoration project, he has proposed as one of his 
main campaign pledges a canal project connecting Seoul, 
Busan, Incheon, and eventually Pyongyang.  Even though there 
are waterways that conceivably could connect Busan to Seoul 
except one 20-mile stretch, many see the canal project as 
technically impossible and likely to generate huge opposition 
from environmental groups. 
 
¶13.  (SBU) Lee says the Cheonggye stream restoration project 
and re-organizing the bus system were the projects he 
receives the most acclaim for but are not what he is most 
proud.  Instead, Lee says that helping homeless people find 
jobs and restoring the underdeveloped areas of Seoul were his 
biggest achievements as Seoul Mayor. 
 
Comment 
------- 
 
¶14.  (SBU) Having won mass appeal through his CEO past and 
achievements as Seoul Mayor, Lee will focus on the economy in 
his campaigning until the Spring when he will start to 
address more specific foreign policy issues, Lee's advisors 
told poloff.  If the presidential election were held today, 
Lee would likely win.  However, with over 10 months left 
until the election, the race is far from over.  Lee's camp, 
as confident as they are, commented that they will not make 
the mistake Lee Hoe-chang made and be secure with a lead in 
the polls. (Note: In Donga's January 30 poll, Lee had a 26.4 
percent lead over the second-place candidate Park Geun-hye 
and 43.1 percent lead over the nearest ruling party 
candidate, Chung Dong-young.  End Note).  However Lee does in 
December, he brings a unique and captivating life story and 
personal style and as the clear front-runner, has everyone 
talking about what kind of person he is and what kind of 
leader he might become.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Korea (South)]
3)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4)
[Intelligence]
5)
[External Political Rel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