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찬 회동

문서번호 생성일 분류 출처 태그
07SEOUL136 2007-01-17 07:04 기밀 주한미국대사관
  • 기 밀 SEOUL 000136
  • 국방부망 배포1)
  • 국방부망 배포
  • 행정명령 12958: 비밀해제: 한국 통일 이후2)
  • 태그: PREL3), PGOV4), MNUC5), ETRD6), ECON7), KS8), KN9), CH10)
  • 제 목: 미 대사,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찬 회동
  • 분류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11). 근거 1.4 (b/d)
  • 번역자: PoirotKr (트위터 사용자명) — Micheal H. Rhee 2013/08/13 12:42

요점

1. (기밀) 요점: 1월 16일 버시바우 대사 부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대사의 사저로 초대해 오찬 회동을 주재하였다. 정치 간섭을 피하고 있다고 공헌하는 가운데, 최근 건강이 나아진 83세 김대중은 다양한 사안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제공하였다. 김대중은 한미 FTA에 대해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그는 견해가 상충하는 민감한 영역은 극복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집권당인 열린우리당이 만일 야당이라면 FTA에 반대했을 거라고 지적하는 가운데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큰 이득이라고 그는 말하였다. 김대중은 올 중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연합하거나 합당할 거로 생각하였고, 만일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을 이길 공산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남한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김대중은 올해 비핵화를 달성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하였다. 그 목표를 향해서 중국은 더욱 북한을 압박할 필요가 있으며, 미국은 북한 정권을 인정하고 금융제재를 해제하는 등의 일괄합의 방안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김대중은 말하였다. 김대중은 남북 경제 협력은 북한이 중국에 너무 의존하는 걸 견제하려는 거라고 방어하였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면서, 정상회담의 첫 번째 의제는 이미 1991년 기본합의서에서 합의한 바대로 비핵화가 될 거라고 했다. 대사는 한국 진보 정치권의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김대중과의 회동을 기회로 삼아서 북한, FTA, 그리고 여타 현안에 관한 미국의 정책을 해명하였고, 한미관계가 한국 선거의 쟁점이 되지 않기를 미국은 바란다고 강조하였다. 요점 끝.

정치 불개입

2. (기밀) 김대중은 오찬 석상에서 국내 정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방문하고, 언론에서 김대중의 역할을 과장하기 때문에 정치에서 떨어져 있기가 어렵다. 여러 사람에게 신년 인사를 했을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 결과 김대중은 매우 신중을 기한다며, 외교관과 마찬가지로 정치가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신중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자유무역협정

3. (기밀) 한미 FTA의 전망에 대한 대사의 평가를 김대중이 묻자, 대사는 3월 말 합의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대사는 가장 최근 FTA 협상 일정의 분위기는 좋았으며, 양 측에서 어려운 쟁점에 맞서기 시작했다고 지적하였다. 김대중은 미국과의 FTA는 한국에 중요하기에 협상이 성공하길 희망한다고 말하였다. 대사는 한미 양국 대통령 모두 한미 FTA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였다; 중요한 건 양국 대통령의 의지가 협상에서 행동으로 발현되고 부처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 거다. 김대중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한국 내 FTA에 대해 반대하는 일부 시위자들이 있는 가운데 양국 정부와 야당은 한미 FTA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4. (기밀) 대사는 한미 FTA가 국회로 가서 승인을 받게 되면 이러한 폭넓은 지지가 반영될 거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정도가 되기 전에 자동차나 의약품, 그리고 농업 부문에 어려운 쟁점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시위가 있기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국인 대다수는 한미 FTA를 지지한다고 나타났고, 우리는 이 협정이 통과되기를 희망한다. 김대중은 동의하면서, 글로벌 시대에 번영하기 위해선 한미 FTA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지금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물론 농업과 같은 어려운 쟁점을 해결하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역시 필요하다. 그는 한국인 대부분은 농업과 반덤핑 분야에 가장 관심이 있는 걸로 보인다고 말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반덤핑 문제는 최근에 가장 어려운 문제로 판명 났다. 이 분야에 뭔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의회의 의견이 워낙 강성이라 매우 어려운 쟁점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분야에 양국의 견해차에 대해 한국이 강조하면 ‘최선에 도달하려다 선에 도달하지 못하는’ 위험이 있다.

5. (기밀) 대사는 한국정부가 국정지지율이 낮아서 FTA를 타결할 수 있을지, 그리고 청와대와 집권당 열린우리당의 긴장 상태가 한미 FTA에 파급효과를 있을지 궁금해한다고 지적하였다. 김대중은 한국과 미국이 합의에 이르게 되면 당연히 집권당, 그리고 야당 모두가 지지할 것이라고 응답하였다. 만일 집권당이 지금 야당이라면, 그 사람들이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한미 FTA를 지지하지 않지만, 군소 정당이다. 김대중은 본인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지만, FTA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견해가 알려졌으며, 원칙적으로 지지한다는 표명을 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진보 정당의 미래

6.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최근 몇 개월 한국 진보 정치권과 관련된 매우 혼란스런 상황에 대한 평가를 김대중에게 요청하였다. 균열을 보이는 집권당 열린우리당에서 등장할 2개 혹은 3개 정당 가능성이 있다고 대사는 지적하면서, 진보 정당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물었다. 김대중은 올해 상반기에 신당이 등장할 공산이 크지만, 결국 고건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합칠 것으로 그는 생각하였다. (주석: 오찬 이후 얼마 안 가서, 지역 언론은 고건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하였다. 주석 끝.) 정치를 예견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결국에는 연합을 형성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김대중은 말하였다. 연합이 가능하지만, 합당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그는 덧붙였다. 열린우리당은 결과가 안 좋아 해체하였다. 그러나 두 개의 세력이 다시 하나로 합치게 되는 것도 이제 가능하다. 김대중은 50년대 중반 한국 정치의 시작은 대부분 두 개의 거대 정당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자유당 세력과 민주당 세력. 이들 정당이 사실상 각각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민주당이 되었다. 그 결과 한국민은 두 개의 정당에 익숙하며, 그런 상황이 재현될 공산이 크다.

7. (기밀) 대사는 만일 진보 진영이 함께 하게 되면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물었다. 김대중은 현재 한나라당이 앞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1년이 남아 있다고 응답하였다. 대선 전망은 올해 중순 전까지는 분명해지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정치 제도가 또다시 두 개의 거대 정당의 양상으로 간다면 새 진보정당이 이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

8. (기밀) 대사는 내년 본인의 임무 중의 하나는 한미 관계가 한국 대선 쟁점이 되지 않도록 담보하는 거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수 있다. 예로 한미 FTA만 하더라도 동의하든 안 하든 논란을 사는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북한 문제는 한미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한미 양국 정부는 대북 접근 방식 면에서 매우 긴밀하다. 비록 12월 6자 회담의 결과를 보면 상대적으로 실망스럽지만, 양국은 인내가 필요하며, 북한이 자체 비핵화 약정을 실천하도록 북한의 관심을 이끌자는 데 합의하였다.

9. (기밀) 김대중은 올해 북한 핵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길 희망한다고 말하였다. 머지않아 해결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핵 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를 두려워했다. 그러므로 그는 미국은 협상에서 더욱 과단성 있게 나서고, 일괄타결책이 나오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길 희망하였다. 대사는 협상을 주도하고 있는 힐 동아태 차관보가 2005년 9.19 공동 성명에 바탕을 둔 종합적인 해결을 모색하라는 부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힐 차관보는 북한이 비핵화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음을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으려면 북한이 초기 조처를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등 성공적인 시작을 모색하고 있다. 12월 우리가 제안한 내용을 반추해 볼 때, 우리는 북한이 바로 그렇게 하길 희망하고 있다.

10. (기밀) 김대중은 지난번 6자 회담에서 지금 북한이 검토하고 있는 더 진일보 거래를 미국이 제시한 걸로 들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김대중은 미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일괄 타결을 마련하길 희망한다고 재차 언급하였다. 김정일과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김대중은 북한이 1인 통치 국가이고, 그 결과 사람들이 보통 생각보다 빠른 결정에 도달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김정일은 심지어 즉석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수도 있다. 그는 “배짱이 있다.”라고 알려졌기도 하며, 그 배포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일괄 거래를 원할 것이다. 그 방식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김대중은 재차 언급하였다.

중국의 역할

11. (기밀) 김대중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걸 반대하지만, 문제는 북한 정권이 망한다고 해도 모든 지원을 중단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대사는 그런 이유에서 중국의 도움을 받아 거래를 성사시키도록 모든 단계에서 중국과 함께 하고,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은 중국이 분명하게 피하길 원하는 당사자라는 게 딜레마라고 설명하였다. 그렇긴 하지만, 중국은 비핵화와 북한 정권의 안정 사이에 조망 간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의 지금까지 반응의 강도에 의해 놀랐을 거로 생각한다고 대사는 말하였다. 북한 정부는 북한 붕괴의 공포 때문에 중국이건 남한이건 대북 압박에 결정적인 압박을 가하지는 못할 거라고 계산했을 수도 있다.

12. (기밀) 김대중은 동의하면서 남한 정부와 국민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에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말하였다. 남한 사람들은 북핵이 남한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에 우선 사항으로 본다. 그러나 그는 북한 핵 실험의 결과로 북한은 자체 영향력의 최대치에 도달하였다고 믿었다. 이제는 타협할 시기이다. 만일 북한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층 역공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역공은 중국으로부터 이다. 중국은 지금 일본이 핵보유국이 될 것이고 대만이 그다음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 북한 정권 붕괴가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김정일은 중국이 평양의 새 지도자를 지지할 수 있을지 계산해봐야 한다. 그 결과 김대중은 북한이 그리 오래 중국에 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북한의 지연?

13. (기밀)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 북한을 다루는 기본적인 목표에 본질적으로 같은 견해임에도 김정일이 행동에 앞서 차기 미국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일각의 추정을 지적하였다. 김대중은 본인이 판단하는 김정일에 기초하면 북한 지도자는 두 가지 핵심 목표가 있다: 첫째, 북한정권에 대한 인정; 그리고 둘째, 경제 제재 종료. 만일 부시 행정부가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도록 김정일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김정일은 협상할 거다.

14.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금융 문제와 관련된 북한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 점에서 북한은 자체 불법 행위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만일 북한이 국제 금융 시스템에 참여하길 원한다면 미국의 우려는 해결될 수 있다. 김정일이 바라는 북한 정권에 대한 인정은 훨씬 복잡하다. 미합중국이 기꺼이 김정일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고,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말했듯이 심지어 김정일과 평화 조약에 서명한다고 해도, 미국정부는 김정일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로 우리는 북한이 중국이나 여타 국가들이 그 밖의 세계 국가에 개방했던 그 길을 답습할 필요가 있다고 믿고 있다. 북한은 민주주의를 지향할 필요가 있고 생존하길 원한다면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한 존엄을 향상할 필요가 있다.

부시 “김정일 위원장과 한국전 종료 서명할 용의 있어”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베트남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한국전 종료를 선언하는 문서에 공동 서명을 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29일 뒤늦게 알려졌다. 자세한 내용은 부시 “김정일 위원장과 한국전 종료 서명할 용의 있어” 민중의소리 기사를 읽어보라.

15. (기밀) 김대중은 다른 방식으로 북한을 다뤄보길 제안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는 북한을 제외한 다른 5자 당사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어떻게 해제하는 방법에 합의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리고 나면 당사국들이 그 방안을 북한에 제안할 수 있다. 만일 북한이 거절하면 5자 당사국은 다 함께 모여 그 결과를 물을 수 있다. 버시바우 대사는 그 방식이 9.19 공동 성명에서 실제 시도한 내용이라고 대답하였다. 우리는 기본적인 목표에 다 같이 합의했고, 이제 합의 내용을 달성하기 위한 시간표와 방식을 현재 논의하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고 우리가 판단한 즉시 우리는 우리의 (경제 원조, 관계 정상화, 평화체계 등) 개괄적인 약속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변모시킬 방법을 보여줄 상당하는 조처와 로드맵을 개발할 의지가 있다.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 요건을 상세히 제시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1718호도 역시 보유하고 있다. 만일 북한이 그렇게 안 하면, 유엔 대북제재결의안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16. (기밀) 김대중은 한국민은 남북관계 개선과 협력, 그리고 궁국적으로 통일을 열망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일부 문제에 대해선 남한 사람들은 상당히 인내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쟁으로 가는 길은 어떤 경우에도 수용할 수 없다. 한국민은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의 종말로 이어질 수 있는 핵보유국 북한을 인정할 수 없다. 만일 중국이 강력한 대북 조처에 나선다면, 남한도 뒤따를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5자 당사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뭉쳐 있다고 했다. 5자 당사국은 지금이 비핵화의 적기이며, 기다린다고 김정일이 이들 볼 것이 없다는 점을 김정일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

17.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최근 2007년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일각에선 정상회담이 비핵화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선거의 해 집권당을 돕는 방법으로 정상회담 제안을 비판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김대중의 견해를 물었다. 김대중은 정상회담에 대해 지지를 표명하면서, 만일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1991년 남북한이 이미 비핵화에 합의했기 때문에 가장 우선시할 정상회담 의제는 비핵화가 될 것이라고 김대중은 말하였다. 만일 정상회담이 있게 되면, 그 점이 일 순위 과제가 돼야만 한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그렇게 권고하였다.

18. (기밀) 다른 핵심 사안은 개성공업지구와 같은 사업을 통한 북한의 경제 발전이라고 김대중은 계속 말을 이었다. 경제 협력은 쌍방 당사국에 좋은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김대중은 미국 일각에서 이런 경제 협력을 비판하는 건 알지만, 북한이 현재 중국으로부터 생필품의 80~90퍼센트를 받고 있다고 말하였다. 중국의 대북 경제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북한의 커져만 가는 경제 의존도와 더불어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남한은 이런 영향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 남한은 미합중국과 협력해야만 한다.

19. (기밀)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의 지나친 중국 의존도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견해를 같이 하였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남북 경제관계에 대해 반대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일부 남북사업에 대해 특정한 의문점이 있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 근로자의 급료 수령 방법이나 (노동자) 권리에 대한 부분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어떤 경우에도 북한 투자 분위기가 매우 달갑지 않게 유지될 것이다.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비핵 문제가 빠르게 해결될수록 경제 협력과 개발이 조속히 진행될 수 있다.

20. (기밀) 김대중은 버시바우 대사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지만, 현재 남북 상황은 너무 오랫동안 끌어왔고, 올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그는 그러므로 미국은 북한에 일괄 타결을 제안해야 하고, 북한이 그 일괄 타결안에 “찬성”이던 “반대”이던 견해를 내놓도록 하자고 재차 언급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타결안은 우리가 모색하고 있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버시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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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SEOUL136.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136 
 
SIPDIS 
 
SIPDIS 
 
E.O. 12958: DECL: AFTER KOREAN REUNIFICATION 
TAGS: PREL PGOV MNUC ETRD ECON KS KN CH
SUBJECT: AMBASSADOR'S LUNCH WITH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1.  (C) Summary:  On January 16, Ambassador and Mrs. Vershbow 
hosted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and his wife Lee Hee-Ho 
to lunch at the Ambassador's Residence.  While professing to 
avoid interfering in politics, the 83-year old Kim -- who 
said his health had improved recently -- offered his views on 
a range of issues.  Kim expressed strong support for a 
Korea-U.S. Free Trade Agreement (FTA), which he said was in 
the best interest of Korea as well as the U.S., while 
acknowledging that sensitive areas of disagreement had to be 
overcome and noting that the ruling Uri Party, if it were in 
opposition, would have opposed an FTA.  Kim thought it likely 
that the Democratic and Uri parties would form an alliance or 
a merger by mid-year, and if they did so, they had some 
chance of beating the Grand National Party (GNP).  Stating 
that South Korea remained adamantly opposed to a 
nuclear-armed North Korea, Kim stressed the urgency of 
achieving denuclearization this year.  To that end, he said 
China needed to put more pressure on the North, and the U.S. 
needed to offer a comprehensive package deal to Kim Jong-il 
which would recognize his regime and lift financial 
sanctions.  Kim defended North-South economic cooperation as 
a check on North Korea's over-dependence on China, and 
expressed support for a North-South Summit in 2007 in which 
the first agenda item would be denuclearization, as already 
agreed in the 1991 agreement with the North.  The Ambassador 
took the opportunity of the meeting with Kim, who remains 
extremely influential on the progressive side of Korean 
politics, to clarify U.S. policies on North Korea, an FTA, 
and other issues, and to emphasize our hope that the ROK-U.S. 
relationship would not become a Korean election issue.  End 
Summary. 
 
---------------------------- 
Non-Interference in Politics 
---------------------------- 
 
¶2.  (C) Kim Dae-jung opened the substantive discussion at 
lunch by noting that he did not interfere at all in domestic 
politics.  While it was difficult to stay out, many people 
visited him and the media overstated his role. This was the 
case even when he was just offering New Year's greeting to 
others.  As a result, Kim said he was quite cautious, adding 
that politicians, like diplomats, had to be careful how they 
conducted themselves. 
 
-------------------- 
Free Trade Agreement 
-------------------- 
 
¶3.  (C) Asked by Kim for his assessment of the prospects of 
an FTA, the Ambassador said he still remains cautiously 
optimistic that we could finish an agreement by the end of 
March.  The Ambassador noted that the atmosphere in the 
latest FTA round this week was good and we were beginning to 
confront the difficult issues on both sides.  Kim said he 
believed an FTA with the U.S. was important for Korea and 
therefore he hoped it succeeded.  The Ambassador observed 
that both of our presidents have expressed support for an 
FTA; what was important was for their political will to be 
translated into action by the negotiators and affected 
ministries.  Kim said that while there had been some protests 
in Korea against an FTA, as there had been elsewhere, both 
government and opposition were united in support of a 
U.S.-ROK FTA. 
 
¶4.  (C) The Ambassador said that this broad support would 
count when the FTA went to the National Assembly for 
approval.  Before we got to that point, however, we had to 
 
find solutions to difficult issues such as autos, 
pharmaceuticals, and agriculture.  Despite the protests, 
recent polls showed that the majority of Koreans supported 
the FTA and we hoped to push an agreement through.  Kim 
agreed, noting that many people were now aware that in order 
to prosper in an age of globalization, the FTA was very 
important.  It was, of course, also necessary to address 
difficult issues like agriculture and good results were 
needed.  He observed that most Koreans appeared most 
interested in the areas of agriculture and anti-dumping. The 
Ambassador pointed out that anti-dumping issues had proved 
most difficult in recent weeks.  While something might be 
done in this area, it remained a very difficult issue given 
strong Congressional views, and the ROK's emphasis on our 
differences in this area risked "making the best the enemy of 
the good." 
 
¶5.  (C) The Ambassador noted that many people wondered if the 
ROK Government would be able to conclude an FTA given the 
Government's low approval ratings, and were concerned that 
tensions between the Blue House and the ruling Uri Party 
might have a spill-over effect on the FTA.  Kim responded 
that when the U.S. and ROK reached agreement, both the 
opposition and of course the ruling party would support it. 
If the ruling party were now in opposition, they would not do 
so.  The Democratic Labor Party did not support the FTA but 
it was not large.  Kim added that while he did not interfere 
in politics, he had made known his view that an FTA was 
needed and he had expressed his support in principle. 
 
------------------------------------- 
The Future of the Progressive Parties 
------------------------------------- 
 
¶6.  (C) The Ambassador asked Kim for his assessment of the 
very confused situation in recent months on the progressive 
side of ROK politics.  Noting that there were potentially two 
or three parties that might emerge from the fractious ruling 
Uri Party, he asked what its future might be.  Kim responded 
that in the first half of this year new political parties 
would likely emerge, but in the end he thought they would 
coalesce around former Prime Minister Goh Kun.  (Note:  Not 
long after lunch, local media reported Goh Kun's decision to 
drop out of the race for the Presidency.  End Note.)  While 
politics were difficult to predict, Kim said he thought the 
Democratic and Uri parties would in the end form an alliance 
and support a strong presidential candidate.  An alliance was 
possible and there was an even bigger possibility of a 
merger, he added.  Kim noted that originally both the current 
Democratic and Uri parties had been part of one party.  The 
Uri Party had broken off with bad consequences.  It was 
possible, however, that now the two would converge into one 
again.  Kim recalled that beginning in the mid-fifties Korean 
politics had been mostly based on two big parties: the 
liberals and the democrats.  These parties had in effect 
become, respectively, the GNP and the Uri/Democratic parties. 
 As a result, the Korean people were used to two major 
parties and this situation was likely to re-emerge. 
 
¶7.  (C) The Ambassador asked whether the progressives could 
win the next national election if they managed to come 
together.  Kim responded that while currently the GNP 
appeared to be ahead, there was still one year to go. 
Prospects would remain unclear until mid-year. If the 
political system developed into two major parties once again, 
a new progressive party had some possibility of winning. 
 
----------- 
North Korea 
----------- 
 
 
¶8.  (C) The Ambassador noted that one of his tasks in the 
coming year would be to ensure that our bilateral 
relationship did not become an ROK election issue.  This 
might be easier said than done, however.  The FTA itself, for 
example, whether agreed to or not, could become a 
controversial issue.  And the issue of North Korea could not 
be separated from our bilateral relationship.  Right now, 
however, our two governments were close in our approach to 
North Korea.  Although we were relatively disappointed in the 
results of the last round of Six-Party Talks in December, we 
both agreed on the need to be patient and to keep North Korea 
focused on fulfilling its commitment to denuclearization. 
 
¶9.  (C) Kim Dae-jung said he hoped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would be completely resolved this year.  If it were not 
resolved before long, he feared another nuclear test or 
missile launch.  He therefore hoped the U.S. would more 
decisively move ahead on negotiations and actively come up 
with a comprehensive solution.  The Ambassador responded that 
A/S Hill, who was leading our negotiations, had President 
Bush's full support for a comprehensive solution based on the 
September 2005 Joint Statement.  He was seeking to get off to 
a fast start, trying to convince North Korea to carry out 
early measures to convince us that it was serious about 
denuclearization.  We hoped that North Korea, when it 
reflected on what we had proposed in December, would do just 
that. 
 
¶10.  (C) Agreeing, Kim said he had heard that during the last 
round of Six-Party Talks, the U.S. had presented a more 
advanced deal which the North Koreans were now reviewing. 
Kim reiterated, however, that he hoped the U.S. would more 
actively initiate a comprehensive package solution. 
Recalling his experience with Kim Jong-il, Kim noted that 
North Korea remained a country ruled by one person and as a 
result it could reach decisions faster than one might think. 
Kim Jong-il could even make important decisions on the spot. 
He was also known for "having guts" and would want a package 
deal to demonstrate that.  This was the best way to solve the 
problem, Kim reite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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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inese R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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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 Kim noted that in resolving the North Korean nuclear 
issue, the role of China was also important.  China opposed 
North Korea having nuclear weapons, but the question was 
whether China was really determined and willing to stop all 
assistance even if it meant the North Korean regime were 
jeopardized.  The Ambassador agreed, observing that this was 
why we had spent so much time and effort at every level with 
the Chinese to get their help in reaching a deal.  The very 
dilemma that Kim Dae-jung had described, however, was one 
that the Chinese apparently wanted to avoid.  Nevertheless, 
the Chinese may soon need to make a choice between 
denuclearization and regime stability in the North.  The 
Ambassador said he thought that North Korea had been 
surprised by the strength of China's reaction thus far. 
Pyongyang might have calculated that because of Beijing's 
fear of its collapse, neither China nor South Korea would be 
willing to put decisive pressure on North Korea. 
 
¶12.  (C) Agreeing, Kim said that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d people were adamantly opposed to North Korea having 
nuclear weapons.  They saw this as a priority because it 
represented a threat to South Korea.  He believed, however, 
that as a result of the North Korean nuclear test, North 
Korea had reached the ceiling of its influence.  Now was the 
 
time to compromise.  If the North did not do so, it would 
face more "counter-attacks."  The first counter-attack would 
come from China, which would never accept a nuclear North 
Korea because even now there was talk in Japan of going 
nuclear and Taiwan might be next.  Even if regime collapse 
were not the issue, Kim Jong-il had to calculate that China 
could support another leader in Pyongyang.  As a result, Kim 
said, he did not think North Korea could resist China much 
lo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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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orth Korean De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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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 The Ambassador noted some speculation that Kim 
Jong-il might decide to wait until the next U.S. 
administration before acting, even though both Democrats and 
Republicans essentially agreed with our basic goals in 
dealing with North Korea.  Kim Dae-jung said that, based on 
his understanding of Kim Jong-il, the North Korean leader had 
two fundamental goals: first, recognition of his regime; and 
second, an end to economic sanctions.  If he thought 
President Bush's Administration could help him achieve these 
goals, he would negotiate. 
 
¶14.  (C) The Ambassador observed that we had a process under 
way to address North Korea's concerns about financial issues. 
 In this regard, however, North Korea needed to address our 
concerns about its illicit activities.  These could 
nonetheless be resolved if North Korea wanted to join the 
international financial system.  Kim Jong-il's desire for 
recognition of his regime was more complicated.  While the 
United States was willing to accept Kim Jong-il as a 
negotiating partner, and even sign a peace treaty with him, 
as President Bush had told President Roh, the USG wasn't 
going to guarantee the Kim Jong-il regime's survival.  On the 
contrary, we believed that North Korea needed to adopt the 
path of China and other countries that had opened up to the 
rest of the world and conducted economic and political 
reforms.  North Korea needed to move toward democracy and to 
improve respect for its citizens' human rights if it wanted 
to survive. 
 
¶15.  (C) Kim Dae-jung said he would like to propose that the 
U.S. try another method of dealing with North Korea.  He 
suggested that, excluding North Korea, the five other parties 
could reach agreement on how to ensure the lifting of 
economic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and security 
guarantees for North Korea.  They could then propose this 
package to North Korea.  If North Korea rejected it, the five 
parties could then join together to impose consequences.  The 
Ambassador replied that was what in effect we were trying to 
do in the September 19 Joint Statement.  We all agreed on the 
fundamental goals and were now discussing the timetable and 
methods to achieve them.  Once we saw that North Korea was 
serious about denuclearization, we were willing to develop 
parallel measures and roadmaps showing how we would translate 
our general commitments (on economic assistance, 
normalization, peace regime) into specifics.  We also now had 
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1718 that spelled out North 
Korea's legal requirement to denuclearize.  If it did so, UN 
sanctions would eventually be lifted.  If it did not, 
sanctions would get tougher. 
 
¶16.  (C) Kim Dae-jung stated that the Korean people aspired 
to good inter-Korean relations and cooperation and ultimately 
reunification.  On some issues, South Koreans could be quite 
tolerant.  In no case, however, could they accept a path that 
would lead to war.  And in no case could they accept a 
nuclear North Korea, which could lead to the end of the 
 
Korean Peninsula.  Kim added that if China took strong steps 
against North Korea, he believed South Korea would follow. 
The Ambassador observed that the five parties were more 
unified than ever before.  They needed to convince Kim 
Jong-il that now was the time for denuclearization and that 
his interests would not be served by wa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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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South Summ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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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C) The Ambassador noted that there was lately 
considerable talk about the possibility of a North-South 
summit in 2007.  While some saw a summit as something that 
could assist denuclearization, others had criticized a 
proposed summit as just a way of helping the ruling party in 
an election year.  The Ambassador asked Kim for his view. 
Expressing support for a summit, Kim said that if a summit 
were held, the very first item on the agenda would be 
denuclearization because in 1991 the North and South had 
already agreed on denuclearization.  So if there were a 
summit, this should be the first priority.  He had so advised 
President Roh. 
 
¶18.  (C) Another key issue, Kim continued, was economic 
progress in North Korea, including through projects like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Economic cooperation, he noted, 
was good for both sides.  Kim said he knew that some in the 
U.S. had criticized this economic cooperation, but North 
Korea currently received some 80 to 90 percent of its 
necessities from China.  China had more and more economic 
influence over North Korea.  With the North's increasing 
economic dependence, Chinese political influence would grow. 
South Korea needed to keep this influence in check.  He 
added, however, that in all cases South Korea should consult 
with the United States. 
 
¶19.  (C) The Ambassador agreed that North Korean 
over-dependence on China was not healthy.  We were not 
opposed in principle to inter-Korean economic relations.  We 
had specific questions, however, about some of the 
North-South projects, such as how workers at Kaesong were 
paid and about their rights.  The Ambassador added that until 
we solved the nuclear problem, the climate for investment in 
North Korea would in any case remain very unfavorable.  These 
issues were interlinked.  The sooner the nuclear issue was 
resolved, the soone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could make progress. 
 
¶20.  (C) Kim said he understood what the Ambassador was 
saying but commented that the current situation had gone on 
for too long and needed to be solved this year.  He 
reiterated therefore that the U.S. should propose a package 
deal to North Korea and let North Korea say "yes" or "no" to 
the package.  The Ambassador observed that a deal with North 
Korea was what we were seeking, based on the September 2005 
Joint Statement. 
VERSHBOW
1)
번역 주: SIPDIS, Siprnet Distribution
2)
AFTER KOREAN REUNIFICATION
3)
[External Political Relations]
4)
[Internal Governmental Affairs]
5)
[Military Nuclear Applications]
6)
[Foreign Trade]
7)
[Economic Conditions]
8)
[Korea (South)]
9)
[Korea (North)]
10)
[China (Mainland)]
11)
Amb. Alexander Vershb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