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문서] 노무현 죽음-이명박 수사 보복? MB- 버시바우 대사 회동 ‘참여정부’에 대한 발언 보니…

강지현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번 수사를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대해 보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규정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보복’을 언급한 것은 이번 수사의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과거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2006년 3월 8일자 주한미국대사관의 국무부 보고 기밀문건에 따르면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서울시장 시절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와 만나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감정을 부채질하고, 소득 재분배에만 신경 쓰고 있다”며 참여 정부를 비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민족주의에 기대어 미국, 일본과의 친교에 소홀하다”고 주장했다. 오래 전부터 참여정부에 대해 편향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MB는 2002년 대선 당시 노 대통령이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망 사건 이후 반미 감정을 어떻게 자극했는지 상기시키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 협상도 현 정권이 이를 통한 반미 감정을 활용해 협상과 선거에 이득을 취하려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아주 전투적인(very militant) 농민들이 이 협상에 민감하다고 말했다.

MB는 또 “노 대통령이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는 목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노무현 정부와 집권 여당이 남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대선에서 유리하도록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에 평양에 가서 남북한 ‘느슨한 연방제’ 제안을 제청하고, 아마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제주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할 공산이 크다. 또 다른 가능성은 노 대통령이 남북 연합으로 가는 길을 놓기 위한 개헌안을 꺼낼 가능성도 있다. 이명박은 다음 대선 이후가 되기 전까지는 모든 헌법 개정에 반대할 것을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MB는 북한 문제로 화제를 돌려 김정일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그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는 소신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의 정권 교체가 임박했다는 징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6자 회담 전망과 관련,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 정부는 북핵 문제와 북미 관계의 변혁을 위한 외교적 해결책을 단적으로 갈망하고 있지만, 북한이 그러한 결정을 내릴지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대사는 “북한의 최근 행동과 불법 행위는 긍정적 징후가 아니었다”며 “미국은 반드시 협상을 통한 해결에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겠지만, 필요한 단계들을 밟아나가는 일은 북한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한미 FTA 협상에 대해 MB는 “미국은 한미 FTA 협상을 오래 끌고 가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만 하는 까닭은 노무현 정부가 FTA를 구실로 삼아 기존의 반미주의를 부추기고, FTA 협정에 대한 불만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2년 두 여학생의 사망이 없었다면 지난 대선의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한편 최근 검찰 수사는 이 전 대통령 소환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검찰 수사는 서울중앙지검이 진행하고 있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불법 수수와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다스,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등 크게 세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국정원 특활비와 다스의 경우 핵심 측근들이 이 전 대통령 관련 의혹에 대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고, 군 사이버사 댓글 사건 역시 이전 수사에서 축소·은폐됐던 사실들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자금 유용 혐의를 수사하다 수억원이 이 전 대통령 측근들에게 향한 단서를 확보했다. 지난 12일 압수수색 이후 4일 만에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78)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52)을 구속했다.

김백준 전 기획관은 국정원에서 2008년과 2010년 각각 2억원씩 총 4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구속 전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태도를 바꿔 구속 후엔 조금씩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그가 ‘MB 집사’로 불린 만큼 이 돈을 받아 사용한 과정에 이 전 대통령의 지시와 관여가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진모 전 비서관은 국정원에서 5000만원을 받아 ‘총리실 민간인 사찰 입막음용’으로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건넨 혐의를 받는다. 이에 대해서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과 더불어 이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이 전 대통령의 가족도 특활비 수수로 수사선상에 올랐다.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83)은 2011년 원 전 원장으로부터 억대의 불법 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26일 검찰 조사가 예정돼 있다. 이 전 의원은 24일 검찰 조사를 이틀 앞두고 자택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됐지만 현재 의식이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고, 검찰 출석 계획엔 변동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인 김윤옥 여사(71)도 이 전 대통령의 비서 역할을 하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최근 검찰 조사에서 2011년 국정원에서 10만달러를 받아 김 여사 측에 전달했다고 진술해 검찰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스 수사도 투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이 전 대통령이 영향력을 행사해 BBK 투자금 140억원을 다스가 돌려받게 했다는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 20일 이 전 대통령의 심복이자 다스 감사인 신학수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60)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검찰은 김성우 전 다스 사장으로부터 “다스 설립에 이 전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취지의 자술서도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이 하는 국군 사이버사 댓글공작 수사는 군 자체 조사에서 수사를 축소·은폐한 의혹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검찰은 2014년 조사 때 군 수사본부 부본부장으로서 “사이버사 예하 530심리전단이 2012년 대선에 개입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묵살한 혐의를 받는 권모 전 중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향후 수사에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축소·은폐에 관여한 단서가 나온다면 사이버사 댓글공작의 ‘윗선’을 밝히는 수사도 다시 활기를 띨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역사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전두환을 용서한 DJ처럼, MB가 ‘승자의 아량’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박연차 비자금 수사를 중단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직 대통령으로서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런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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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SEOUL740 2006-03-08 07:58 기밀(3급) 주한 미국 대사관

1. (기밀) 요약: 3월 7일 버시바우 대사는 야당 한나라당의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서울시장 이명박과 회동을 하였다. 이명박은 3월 13일 미국 방문을 고대하고 있으며, 방미 중에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미 의회 의원들과의 회동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명박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도록 담보하는 것이 그의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당내 주요 라이벌인 한나라당 지도자 박근혜를 겨냥한 비판은 아껴가며, 대부분의 비판은 노 대통령을 향한 혐오감에 할애하였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두 여학생의 사고 이후 생겨난 반미 감정을 어떻게 부채질해 왔는지 상기하면서, 이명박은 미 대사에게 한미 FTA 협상이 비슷한 대미 반감을 촉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이 시장은 노 대통령이 대선에 영향을 끼치려는 목적으로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이용할 거라고 우려하였다. 외교 정책에 관하여 노 대통령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두 파트너인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방치했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대내적으로 노무현의 경제 정책이 지나치게 소득 분배에만 집중해온 터라 전반적인 경제성장을 저해했다고 말했다. 요약 끝.

◊ 이 시장의 미국 방문

2. (미분류) 공관 차석과 정치 공사 참사관과 동행한 미 대사는 이명박 시장과 그의 직원들과 함께 미 대사관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시장의 사무실에서 오찬 회동을 하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이 시장에게 수년에 걸쳐 대사관의 안전과 행정적인 도움에 대해 감사를 표했으며, 용산 소재 새 대사관 공관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서울시 지방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길 희망하였다. 이명박은 미 대사관이 부지를 잘 선택한 까닭에 서울 시청도 미군이 용산에서 빠져나간 뒤에 그곳으로 이전해도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3. (미분류) 이명박은 예고된 그의 워싱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방문 기간에 몇몇 회동을 주선해준 미 대사관의 협력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는 자신의 방미 활동이 한국 언론에 의해 상세히 다뤄지리라 예상된다며 제대로 돌아다닐 자유도 없을 거라고 농을 쳤다. 그의 방문은 미 의회 의원, 고위 행정부 당국자, 한인 단체 등과의 회동을 비롯해 몇몇 싱크 탱크와의 논의도 있을 거라고 밝혔다.

◊ 한미관계, FTA, 반미주의

4. (기밀) 이명박이 남북 관계에 대한 진단을 요청하자 버시바우 대사는 한미동맹은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라고 대답하였다. 한미 양국은 안보 측면에서 그간 좋은 성과를 이뤄왔다. 최근의 성과로는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 부대의 재편과 서울 중심부에 있는 용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한 협정을 들 수 있다. 또한, 양국은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루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6월에 시작할 예정인 한미 FTA 협상이 성공적일 경우 양국에 매우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끝으로 언론이 끔찍이 과장하기 좋아하는 몇 가지 전략적인 차이에도 대북 정책에 대한 한국과 미국 정부의 전반적인 목표는 변함없이 일치한다고 지적하였다.

5. (기밀) 이명박 시장은 2007년 대선이 예정되어 있어 고조된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한미 FTA 협상에 대해 상당히 우려한다고 대답했다. 이명박은 미국은 한미 FTA 협상을 오래 끌고 가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만 하는 까닭은 노무현 정부가 FTA를 구실로 삼아 기존의 반미주의를 부추기고, FTA 협정에 대한 불만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명박은 과격하기로 유명한 농민들에게 FTA 협상은 특히 민감한 사안이라고 지적하면서, 2002년 두 여학생의 사망이 없었다면 지난 대선의 결과가 달라졌을 거라고 주의를 환기했다.

6. (기밀) 이명박은 청와대 일각에서는 이념적으로 미국에 반대한다고 혐의를 제기했다. 그로서는 한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협할 만한 무모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비록 학생 시절에는 급진적인 때도 있었으나 비즈니스 경험과 공직 경험을 통해 그는 시장 원리의 중요성을 터득해 왔다.

◊ 북한

7. (기밀) 또한, 이명박은 노무현 정부와 집권 여당이 남한 정부의 대북 정책을 대선에서 유리하도록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에 평양에 가서 남북한 ‘느슨한 연방제’ 제안을 제청하고, 아마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제주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할 공산이 크다. 또 다른 가능성은 노 대통령이 남북 연합으로 가는 길을 놓기 위한 개헌안을 꺼낼 가능성도 있다. 이명박은 다음 대선 이후가 되기 전까지는 모든 헌법 개정에 반대할 것을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요청했다고 말했다.

8. (기밀) 이명박은 북한 문제로 화제를 돌려 김정일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그 어떤 변화도 없다는 그의 소신을 피력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북한의 정권 교체가 임박했다는 징후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북한 정권은 외부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며, 그간 한국과 중국이 미국 원조 공백을 채우기 위해 개입할 채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9. (기밀) 6자 회담 전망에 대한 질문을 받은 버시바우 대사는 미국 정부는 북핵 문제와 북미 관계의 변혁을 위한 외교적 해결책을 단적으로 갈망하고 있지만, 북한이 그러한 결정을 내릴지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북한의 최근 행동과 불법 행위는 긍정적 징후가 아니었다. 미국은 반드시 협상을 통한 해결에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겠지만, 필요한 단계들을 밟아나가는 일은 북한에 달려 있다고 버시바우 대사는 말했다.

◊ 한일 관계

10. (기밀) 대사관 공관 차석이 한일 관계에 대한 이명박의 견해를 묻자 한국 외교 정책의 중요도 면에서 일본은 미국에 버금간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 사이 관계가 껄끄러운 와중에도 광범위한 문화 교류를 비롯해 양질의 대민 접촉을 만끽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노무현과 고이즈미는 국내의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자국에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듯이 보인다고 이명박은 평가했다. 한국 정부의 리더쉽 부재에 관해 한나라당은 독자적으로 (한일 간의) 정치 관계를 개선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명박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현재 일본에 있으며, 그도 4월에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 국내 현안

11. (기밀) 이명박은 정부의 경제정책, 특히 부의 재분배 시도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지나친 부의 축적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을 모색하면서 한국 정부는 그간 너무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쳐 왔다. 그는 극빈 상태를 극복했던 그의 개인사를 언급하면서, 돈 버는 행위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공언하였다.

12. (기밀) 최근 그의 발언을 두고 빚어진 한나라당 지도자 박근혜와의 입씨름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은 더 진지한 태도로 일에 임해야만 한다고 평하면서, 박근혜는 사소한 농담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이명박은 말하였다. 그는 박근혜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까닭에 유머 감각이 별로 없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렇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이 서로 싸우기보단 여당과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하는 데 집중해야 하므로 박근혜의 비판에도 대응을 삼갔다고 그는 말했다.

13. (기밀) 최근 커지고 있는 이해찬 총리의 ‘부적절한 골프’ 논란에 대해선 한국인은 더는 골프를 부자와 유명인들의 놀이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이명박은 말했다. 대신 이 총리가 그의 게임 상대를 잘못 고른 게 실수였던 이유는 그중 일부 게임 상대가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총리가 3월 1일 개천절 날을 잡아 골프를 쳤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그날은 심각한 철도 파업이 겹치면서 국민적 분노가 악화하였다. 이명박 시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 주 아프리카 순방에서 돌아온 뒤 이 총리의 사임 여부를 결정할 거라고 진단하였다.

◊ 논 평

14. (기밀) 이명박은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 선두를 보이고 있어 세간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고 있다. 과거 주요 여론조사에서 박근혜(18%)와 고건 전 총리(24%)를 따돌리고 지지율 29%를 보이고 있다. 우리 열린우리당 접선책에 따르면 이 시장과의 맞대결 가능성에 대해 입맛을 다시고 있는 까닭은 이명박이 거의 20년간의 현대 건설 사장 시절 이명박과 현대건설이 저지른 “온갖 비리”가 기록된 자료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열린우리당 접선책은 이명박이 나중에 무죄 선고를 받긴 했으나 1998년 선거법 위반으로 국회 의원직을 사임해야만 했다고 지적하였다. 열린우리당은 많은 한국인이 박근혜의 부친 박정희를 숭배하는 여전히 숭배하고 있어 지지층이 두터운 박근혜보다는 이명박이 훨씬 상대하기가 좋을 것이다.

15. (기밀) 대선 캠페인이 급물살을 타면서 변화를 갈구하는 한국민이 이명박에게 감정이입이 된 것이 분명하다. 이명박 지지자들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계파 정치에 집착하는 보통의 정치가와는 다른 지금의 경기 침체에서 한국을 건져낼 에너지 넘치는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 그들은 이명박과 같은 검증된 비즈니스 리더가 경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파이 나누기 분배 논란을 종식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이명박 지지자들은 그가 시장 시절 착수하고 마무리한 수많은 의욕적인 사업들을 보면 이명박이 결과물을 제시할 보여줬다고 주장한다. 그중 핵심 사업 중에는 복개되고 오염되었던 하천을 견본 운하로 만들어낸 청계천 복원 사업과 서울 중심부에 친환경적인 공원을 만든 사업이 있다.
버시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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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SEOUL740.rtf
C O N F I D E N T I A L SEOUL 000740 
 
SIPDIS 
 
SIPDIS 
 
E.O. 12958: DECL: 03/08/2016 
TAGS: PGOV PINR PREL ABLD KS KN
SUBJECT: AMBASSADOR'S MEETING WITH SEOUL MAYOR LEE MYUNG-BAK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1.  (C) SUMMARY: On March 7 the Ambassador met with Seoul 
Mayor Lee Myung-bak, a leading contender to become the 
opposition Grand National Party's (GNP)' nominee in next 
year's presidential election.  Lee said that he was looking 
forward to his visit to the United States the week of March 
13, in which he hoped to meet with senior Administration 
officials and Congressional representatives.  Regarding the 
presidential election, Lee said his first priority was to 
ensure that the GNP would win the Blue House in 2007.  He 
leveled a few criticisms at GNP leader Park Geun-hye, his 
main party rival, but saved the bulk of his scorn for 
President Roh.  Recalling how in the 2002 election Roh had 
fueled anti-American sentiments in the aftermath of the 
accidental death of two schoolgirls struck by a USFK armored 
vehicle, Lee warned the Ambassador the FTA negotiations might 
rekindle similar antipathy toward the United States.  The 
Mayor was also concerned that President Roh would use a 
possible North-South summit to influence the presidential 
election.  On foreign policy, Lee accused President Roh of 
neglecting the ROK's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and 
Japan, the nation's two most critical partners. 
Domestically, Lee said that Roh's economic policies had been 
too focused on income redistribution, hurting overall 
economic performance.  END SUMMARY. 
. 
NEC, MAYOR'S VISIT TO U.S. 
-------------------------- 
 
¶2.  (U) Accompanied by DCM and POL M/C, the Ambassador met 
with Mayor Lee and his staff over lunch in the Mayor's 
office, located only a few blocks from the Embassy.  The 
Ambassador thanked the Mayor for security and administrative 
assistance over the years and hoped that the planned move to 
the New Embassy Compound in Yongsan would be well supported 
by the Seoul Municipal Government. Lee noted that the Embassy 
had chosen the site well because his City Hall would also be 
moved to Yongsan after USFK moved out. 
 
¶3.  (U) Lee thanked the Ambassador for the Embassy's help in 
arranging several meetings during his upcoming visit to 
Washington, New York and Los Angeles.  He joked that his 
activities would be so closely covered by the Korean press 
that he would have no real freedom of movement.  He said his 
visit would include meetings with congressional 
representatives, senior administration officials and  Korean 
communities, as well as remarks to several think-tanks. 
. 
U.S.-ROK RELATIONS, FTA, ANTI-AMERICANISM 
----------------------------------------- 
 
¶4.  (C) Responding to Lee's request for an assessment of 
U.S.-ROK relations, the Ambassador said that, overall, the 
alliance was in good shape.  The two partners had made good 
progress on the security front.  Recent achievements included 
agreements to restructure the American troop presence on the 
Peninsula and to move the Yongsan garrison from downtown 
Seoul to Pyongtaek.  The two countries had also come to an 
agreement on the issue of strategic flexibility.  On the 
economic side, the FTA negotiations, which were slated to 
begin in June, if successful would bring great benefits to 
both countries.  Finally, the Ambassador noted that 
Washington's and Seoul's overall objectives toward North 
Korea remained in line, despite some tactical differences 
which the press loved to exaggerate. 
 
¶5.  (C) Lee replied that he was quite concerned about the FTA 
negotiations given the heightened political atmosphere of the 
upcoming presidential election in 2007.  The United States 
should be careful not to allow the negotiations to drag out, 
he said, as the Roh government would use it as a pretext to 
fan existing anti-Americanism and to take advantage of 
discontent with the agreement.  Noting that the negotiations 
would be especially sensitive for the farmers, known to be 
very militant, Lee recalled that the outcome of the last 
presidential election in 2002 would have been different had 
it not been for the death of the two school girls. 
 
¶6.  (C) Lee charged that some in the Blue House were 
ideologically opposed to the United States.  As for himself, 
he believed that South Korea must not do anything rash that 
would threaten its democracy or market economy.  Although he 
had been a radical as a student, he had gained an 
appreciation of the importance of market principles through 
his experience in business and public office. 
 
NORTH KOREA 
----------- 
 
¶7.  (C) Lee said that he was also concerned that the Roh 
government and the ruling party might use the ROKG's North 
Korea policy to their electoral advantage.  It was likely 
that former President Kim Dae-jung would go to Pyongyang in 
June, where he might reiterate his proposal for a loose 
confederation between the two Koreas and would probably 
propose a second North-South summit, which could be held in 
Cheju Island.  Another possibility was that Roh would 
introduce constitutional revisions to pave the way for a 
confederation.  Lee said that he had asked GNP legislators to 
resist all constitutional revisions until after the next 
presidential election. 
 
¶8.  (C) Turning to North Korea, Lee expressed his conviction 
that nothing would change as long as Kim Jong-il remained in 
power.  On the other hand, he said there was no sign of 
impending regime change.  The regime could not survive 
without outside assistance, and the ROK and China had shown 
their readiness to step in to fill the void resulting from 
any reduction in U.S. aid. 
 
¶9.  (C) Asked about prospects for the Six Party Talks, the 
Ambassador responded that, while Washington absolutely 
desired a diplomatic solution to the North Korean nuclear 
problem and a transformation of its relations with Pyongyang, 
many were doubtful that North Korea had made a similar 
decision.  Its recent actions and illicit activities were not 
encouraging signs.  While the United States must continue to 
keep the door open to a negotiated solution, he said, it was 
up to North Korea to take the necessary steps. 
 
ROK-JAPAN RELATIONS 
------------------- 
 
¶10.  (C) Asked by DCM about his views on the ROK-Japan 
relationship, Lee said that Japan was second only to the 
United States in foreign policy importance for South Korea. 
It was ironic that despite the strained relationship between 
President Roh and PM Koizumi, the two countries enjoyed 
excellent people-to-people contacts, including extensive 
cultural exchanges.  It seemed that Roh and Koizumi were 
interested only in feeding nationalism at home to gain 
domestic political advantage, Lee assessed.  In the absence 
of ROKG leadership, the GNP had taken it upon itself to try 
to improve political relations.  Lee noted that GNP 
Chairwoman Park Geun-Hywe was currently in Japan and that he 
himself would visit in April. 
 
DOMESTIC ISSUES 
--------------- 
 
¶11.  (C) Lee was highly critical of the government's economic 
policies, especially its attempts to redistribute wealth.  In 
seeking to address the problem of too much concentration of 
wealth, the ROKG had swung the pendulum too far to the other 
side.  Lee referred to his own personal history of having 
overcome extreme poverty, and declared that there was nothing 
wrong with making money. 
 
¶12.  (C) Commenting on his recent spat with GNP leader Park 
Geun-hye over his remark that GNP legislators should take 
their work more seriously, Lee said that Park had taken a 
mere jest far too seriously.  He opined that, because Park 
had lost her parents at a young age, she did not have much of 
a sense of humor.  Nevertheless, he said, since GNP 
politicians should concentrate their energies on attacking 
the ruling party and President Roh rather than each other, he 
had refrained from responding to Park's criticisms. 
 
¶13.  (C) Commenting on the growing controversy over PM Lee 
Hae-chan's recent "inappropriate golf" game, Lee said that 
Koreans no longer regarded golf as an activity of the rich 
and famous.  Rather, the Prime Minister had made a mistake in 
his choice of playing partners, as some of them were under 
investigation for malfeasance.  Public irritation was 
exacerbated by the fact that the PM chose to golf on March 1, 
which not only marks Independence Movement Day but also 
happened to coincide with a serious rail workers' strike. 
The Mayor assessed that President Roh would come back from 
his visit to Africa next week and decide whether PM Lee 
should resign. 
 
COMMENT 
------- 
 
¶14.  (C) Lee Myung-bak has become the focus of considerable 
attention as polls show him in the lead among potential Blue 
House contenders.  The last major poll showed him with 29% 
support, followed by former PM Goh Kun (24%) and Park 
Geun-hye (18%).  Our ruling Uri Party contacts say they are 
salivating at the possibility of facing the mayor, as they 
possess a thick file of documented "irregularities" committed 
by Lee and his company during his nearly two-decade stint as 
head of Hyundai Construction.  Uri contacts also note that 
Lee had to resign his National Assembly seat in 1998 over 
charges of election law violations, although he was 
subsequently acquitted.  Uri would far prefer to face Lee 
than Park Geun-hye, who has deep support among the many 
Koreans who still worship her father, Park Chung-hee. 
 
¶15.  (C) Campaign spin aside, it is clear that Lee has struck 
a chord among Koreans who seek change.  According to Lee's 
supporters, South Koreans are yearning for an energetic 
leader who will lead Korea out of its current economic 
malaise, not a run-of-the-mill politician obsessed with 
factional politics.  They hope that a proven business leader 
like Lee might be able to rejuvenate the economy and make the 
current how-to-divide-the-pie debate moot.  Lee's supporters 
claim that he has shown the ability to deliver, having 
initiated and concluded a number of ambitious projects as 
mayor, key among which is the much-acclaimed restoration of 
Seoul's once paved-over and polluted Cheonggye Stream into a 
showcase canal and ecological park area in the heart of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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