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여전히 차기 대통령 희망

작성일 : 2006년 11월 22일
CONFIDENTIAL SEOUL 004036
SIP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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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12958: DECL: 12/10/2014
TAGS: PGOV PREL KS
SUBJECT: CHUNG DONG-YOUNG: STILL HOPING TO BE KOREA’S NEXT
PRESIDENT
Classified By: Amb. Alexander Vershbow. Reasons 1.4 (b,d).
SUMMARY 

요약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전 통일부 장관이자 우리당 의장인 정동영은 6자 회담 재개와 한미 FTA 진전 상태, 우리당의 미래, 그리고 미국에서 최근의 선거에 대해 논의했다. 정은 우리당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여론조사에 한나라당이 엄청난 차이로 리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했다. 정은 또 6자 회담의 성공과 동맹이 강력하게 유지되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 (C) In a meeting with the Ambassador, former Unification Minister and Uri Party Chairman Chung Dong-young discussed the resumption of the Six Party Talks, state of the KORUS FTA, future of the Uri party, and the recent elections in the U.S. Chung was confident that the Uri Party could still play a significant role in the ROK 2007 presidential election, despite the enormous lead in the polls for GNP candidates. Chung also stressed the importance of cooperation with the U.S. to ensure that the Six Party Talks were successful and the alliance remained strong. END SUMMARY.

 

PROGRESS ON FTA

FTA 진전
11월 20일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하는 정동영은 FTA에 대한 그의 지지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쌀과, 공교육, 그리고 공중보건 분야에서 한국의 우려에 대해 말했다. 대사는 최근 이뤄진 FTA의 진전에 낙관적으로 얘기하며, 미국측은 자동차 부문의 개방과 혁신적인 의약품 회사들에 대한 공정한 처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의약품과 관련해 대사는 한국 업계가 연구와 개발에 돈을 잘 쓰지 않으며 특허가 만료된 일반약품의 생산에만 의존한다고 말했다. 만약 한국이 바이오테크 산업에서 중심이 되고자 한다면, 이 분야에서 더 큰 이익을 허용할 필요가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연구 개발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더 큰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 (C) In a November 20 meeting with the Ambassador, presidential hopeful Chung Dong-young expressed his support for the FTA but noted Korea’s concerns in the areas of rice, public education, and public health. The Ambassador spoke optimistically about recent progress made on the KORUS FTA, informing Chung that the U.S. side hoped to see opening in the auto sector and fair treatment for U.S. innovative pharmaceutical companies. On pharmaceuticals, the Ambassador noted that the Korean industry spent little money on research and development (R&D) and relied more on production of generic brand drugs. If Korea wanted to become a biotech center, it would need to allow for greater profitability in the industry and therefore greater opportunity to recover R&D investments.

 

URI IN THE MIDST OF A STORM

폭풍 속의 우리당
정은 그의 당이 인기 최저를 기록하는 가운데 폭풍의 한 가운데 있다고 말했다. 모든 강력한 민주주의는 여당과 야당이 있어야 하며 그러므로, 정치 분석가들이 우리당을 열외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당은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게 될 것임을 자신하고 있었다. 우리당과 청와대의 분열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신호이다.

¶3. (C) Chung said that his party was in the midst of a storm as its popularity had hit rock-bottom. All strong democracies must have both a ruling and opposition party and therefore, despite being written off by many pundits, he remained confident the Uri Party would field a competitive candidate. The divide between the Uri Party and the Blue House was a sign of a “healthy democracy.”

 

2003년 말 우리당 결성됐을 때, 3가지 목표가 있었다: 정부 부패 청산, 통치에 있어 민주주의 원칙 전면 이행, 지역정치 청산 등이 그 것이다. 정은 우리당이 2가 목표에는 성공했으나 세 번째는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당이 직면한 현재의 요구사항들은 직업 안전성을 제고하고 소유할 수 있는 주택 공급을 늘리고, 교육 시스템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4. (C) When the Uri Party was formed in late 2003, it had three goals: to rid the government of corruption, to fully implement democratic principles of governance, and to rid politics of regionalism. Chung said that Uri Party had succeeded on the first two goals but not the third. The current demands facing the ruling Uri Party were to increase job security, increase the supply of affordable housing, and improve the education system.

 

2007 PRESIDENTIAL ELECTIONS

2007년 대통령 선거
정은 2007년 선거에서 민주당과 합당의 중요성을 크게 취급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기반인 농촌 중심의 호남보다는 도시지역을 강조하며, 우리당은 당이 정책 혁신을 통해 국민들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방안을 설명하는데 좀 더 초점을 둘 것이며, 인기가 없는 노행정부와 거리를 두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 1997년과 2002년처럼 대통령 후보 가운데 선두주자가 선거 과정 늦게야 출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당 후보는 2007년 6월 한나라당 후보가 발표된 뒤에야 지명될 것이다. 그는 고건 전 총리가 자신의 당을 만들거나 우리당 후보가 되는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5. (C) Chung downplayed the importance of a merger with the Democratic Party (DP) in the 2007 elections. With an emphasis on the cities rather than the rural southwest where the DP is based, Uri would focus more on explaining how the party would make a better the future for the people through policy innovation and less on trying to distance themselves from the unpopular Roh administration. Chung predicted that a presidential frontrunner would not appear until late in the election process as was the case in 1997 and 2002. The Uri candidate would probably not be named until after the GNP candidate was announced in June 2007. He added that former PM Goh Kun would not be successful in either establishing his own party or in becoming the Uri Party candidate.

 

RELATIONS WITH NORTH KOREA

북한과 관계
북한에 대해 대사는 최우선 순위는 모든 북한의 핵능력을 해체하고 그리고 나서 인권과 같은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스 국무부 장관은 서울에서 최근 노대통령과 만나 같은 정책 우선순위를 강조했으며 북한에 의한 핵확산은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해체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긴급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6. (C) On North Korea, the Ambassador said that the first priority was to dismantle all North Korea’s nuclear capability and then address other issues such as human rights. Secretary Rice emphasized the same priorities in her recent meeting with President Roh in Seoul and added that nuclear proliferation by the DPRK was viewed with the same urgency as need to dismantle North Korea’s nuclear program.

 

정은 2005년 9월 19일 이뤄진 공동성명을 현재 핵위기를 극복하고, 미국 한국 동맹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이행하기 위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당은 미국 정부와 이런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으며 언론에서는 접근법 상의 차이만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7. (C) Chung emphasized the need to work closely with the U.S. to implement the September 19, 2005 Joint Statement as a means to overcome the current nuclear crisis and to firm up the U.S.-ROK alliance. His party shared these common objectives with the USG, and yet differences in approach were often emphasized in the media.

 

대사는 언론이 양측의 몇몇 정책 차이가 과장하고 있다는데 동의했다. 한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혼란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미국측이 어느 정도 실망이 있다. 한국은 핵실험 때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할 동안 노대통령이 구사한 강력한 수사로부터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시와 노의 하노이 회담, 그리고 라이스 국무와 송민순 외교부 장관 지명사 사이의 회담은 매우 생산적이었고 혼란을 확실히 정리하는데 도움이 됐다. 대사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유엔의 결의안을 한국이 지지하기로 한 것에 대해 미국 정부가 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8. (C) The Ambassador agreed that the press had exaggerated some policy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apitols. Still, there were some disappointments in Washington as Seoul appeared to send mixed signals following the DPRK nuclear test, when the ROKG appeared to back away from the stronger rhetoric President Roh had used during his summit meeting in Washington. The meetings in Hanoi between Presidents Bush and Roh and Secretary Rice and Foreign Minister-designate Song Min-soon were very productive and helped to clear up any lingering confusion. The Ambassador also noted that the ROK’s announcement in support of the U.N. resolution on North Korean human rights was welcomed by the USG.

 

PERSPECTIVES ON KJI

김정일에 대한 관점
2005년 김정일과 가진 그의 회담에 기초해, 정은 북한 정권은 외부의 군사 간섭보다는 정권 실패에 더 큰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은 금강산 관광 프로젝트와 개성공단 주변에 구축된 “요새”들을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진정한 어떤 교류도 수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 뒤 한국이 비료와 식량 지원 중단에 대해 위기감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 정부가 현재 북한을 지원하는 수준은 비료와 식량 원조에서 과거의 단지 1/8 수준이다.

¶9. (C) Based on his meetings with Kim Jong-il in 2005, Chung suggested that the DPRK regime was more concerned with regime failure than outside military intervention. Chung pointed out the “fortresses” built around the Mt. Geumgang tourism project and the Kaesong Industrial Complex (KIC) showed Kim Jong-il’s desire to not accommodate any true exchange through these projects. He expected the DPRK to feel the pinch of the ROK cutting off fertilizer and food aid following North Korea’s nuclear and missile tests. Current levels of support from the ROK to North Korea were only one-eighth of past years in both fertilizer and food aid.

 

정은 김정일이 수년 동안 부시 행정부의 “공격”을 버텨내고 2009년에 좀 호의적인 정권이 들어서기를 희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현재 가능한 2개의 선택을 갖고 있다: 하나는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협상하는 것이다. 김이 1994년 그의 인민들에게 다가가 외부 지원이 제한될 때는 인내를 갖고 견뎌달라고 요청한 것을 고려할 때, 김이 또 다시 그의 인민들에게 참을 것을 요청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정은 말했다. 또 방코 델타 아시아 자산 동결이 북한의 재정 목표를 계속해 방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은 기다리기 보다는 협상하는 쪽을 선택할 것이라고 정은 말했다.

¶10. (C) Chung said that Kim Jong-il was willing to withstand the “attacks” of the Bush administration for a few years and maybe hoping for a more favorable administration in 2009. The DPRK had two options available at present: one was to wait and the other was to negotiate. Given that Kim approached his people in 1994 and asked them to weather a period where only limited outside support was available, Chung said he did not think that Kim would be able to ask his people to do this again. Also, as the freeze on assets at Banco Delta Asia (BDA) continues to impede the DPRK’s financial goals, Chung hoped that Kim would choose to negotiate rather than wait.

 

대사는 방코 델타 아시아로 인한 재정 타격이 유엔안보리결의안 1718에 따른 잠재적 영향과 비교할 때 작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 있어서 핵심은 중국이 무슨 역할을 할 것인지, 김정일과 그의 정권을 보호하는데 있어 중국이 얼마나 지쳐있는지가 될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진짜 압력을 넣을 때까지, 북한의 리더쉽은 기다릴 수 있고, 중국과 한국의 지원에 계속해 의존할 수 있다고 느낄 것이다.

¶11. (C) The Ambassador noted that the financial impact of BDA was small in comparison to the potential impact of UNSCR 1718 sanctions. The key to many of these efforts was what role China was willing to play and how tired China was of protecting Kim Jong-il and his regime. Until China put real pressure on the DPRK, the North Korean leadership may feel that they can wait and continue to rely on China and the ROK for assistance.

 

LESSONS LEARNED FROM GERMANY

독일에서 얻은 교훈
독일 통일의 역사를 공부하며 독일에서 5개월 간 체류한 뒤 정은 독일 상황과 한국 상황에서 3가지 크게 다른 차이점들을 뽑아냈다. 하나는 한국인들은 200만 명이 숨진 전쟁에서 서로를 적대하며 싸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독일은 동서독 사이에 대규모 교류를 경험했고(1989년 600만 명의 이동) 동독은 서독 언론에 높은 수준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세 번째, 과도기 노력을 도울 수 있는 활발한 종교, 시민사회가 동독에는 존재했다. 이런 관찰을 바탕으로 정은 한국이 북한과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한 사이에 인적 물적 교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12. (C) Following a five-month stay in Germany where he studied the history of its unification, Chung identified three main differences between the German situation and that of Korea. One, Koreans had fought against each other in a ar in which over two million people were killed. Two, Germans experienced massive exchanges (6 million people in 1989)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East Germany had a high level of access to West German media. Three, there was an active religious and civil society in East Germany that assisted with the transition effort. From these
observations, Chung suggested that the ROK should work to ease tensions with the DPRK and to increase exchanges, both people and resources, between the two Koreas.

 

PEACE TREATY WITH DPRK?

북한과 평화 조약
정은 백악관의 토니 스노우 대변인 미국은 북한과 광범위한 협상의 일부로써 한반도에 관한 공식적인 평화 조약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발표에 대해 물었다. 대사는 이는 2005년 9월의 공동성명의 핵심 사항 가운데 하나를 언급한 것이라고 답했다. 영구 평화 체제는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강력한 심리적 조치가 될 것이다. 논의돼야 할 많은 이슈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휴전 협정을 대체하고 비무장지대를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국경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평화 조약은 북한이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 정권과 북한의 선군주의 정책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 대사는 의문을 표했다. 즉 주변 국가들이 더 이상 적으로 간주되지 않는 환경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13. (C) Chung inquired about White House spokesman Tony Snow’s announcement that the U.S. would work to establish an official peace treaty on the Peninsula as part of a broader deal with the DPRK. The Ambassador said that this referred to one of the key aspects of the September 2005 Joint Statement. Negotiation of a permanent peace regime would be a strong psychological step toward easing tensions on the Peninsula. Although there were many issues that would have to be negotiated, the basic idea was to replace the armistice agreement and transform the demilitarized zone (DMZ) into an internationally recognized border. While it seemed that a peace treaty was desired by the DPRK, the Ambassador questioned whether the DPRK regime and its military-first policy could adjust to a new environment in which the neighboring countries were no longer considered enemies.

 

COMMENT

정동영의 행운은 1년 사이에 급전직하했다. 우리당에서 노대통령의 뒤를 이를 선두주자로 널리 인식됐던 정은 지금 여론조사에서 겨우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당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여론 주도자들 사이에서 정은 통일부 장관 시절 북한에 대한 나이브한 접근을 했다고 비난을 받고 있다. 당의 지도자로서 짧았던 기간은 재앙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초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 참패를 맞봐야 했다. 대부분의 정치 분석가들은 정이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5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승리와 우리당의 창당을 이끌어낸 주요 인물이었을 때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14. (C) Chung Dong-young’s fortunes have declined precipitously in a year. Widely considered the front-runner in the ruling Uri Party to succeed President Roh, Chung now finds himself barely registering in the polls and largely marginalized in the party. Among opinion-makers, Chung is faulted for being naive toward the North during his tenure as unification minister. For the party rank-and-file, Chung’s short tenure at the helm of the party is viewed as a disaster, leading them to a crushing defeat in the nationwide regional elections earlier this year. Most pundits give Chung little or no role in the upcoming presidential elections, very different from five years ago when Chung was one of the architects of Roh Moo-hyun’s victory and, subsequently, the founding of Uri Party.
VERSH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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