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2) 박정희 “1982년 말까지 미군 완전철수” 통보받고 충격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지미 카터는 1977년 1월 취임하자 본격적으로 미군철수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지미 카터는 취임 4개월 후인 1977년 5월 필립 하비브 국무부 차관과 조지 브라운 합참의장을 한국의 청와대로 보내 박정희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철군문제를 협의하도록 했다.

말이 ‘주한미군 철수’ 협의지, 사실상 통보였다.

하비브 일행은 5월 25일과 26일 두차례에 걸쳐 박정희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철수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향후 절차에 대해 논의했다.

브라운 합참의장의 25일 발언은 박 대통령을 충격에 빠뜨렸다. 브라운은 카터 대통령이 1978년 1차로 병력 6,000명을 철수하고 1980년 2차로 9,000명을 철수한 뒤 1981~1982년 3차로 모든 병력을 한반도에서 빼낼 계획을 갖고 있다고 통보했다.

이날 면담에는 미국 측에서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와 베시 주한미군사령관이 함께 했고, 한국 측은 최규하 국무총리와 김정렴 대통령비서실장, 최광수 청와대의전수석비서관이 배석했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측 배석자들은 아연 실색할 수 밖에 없었다.

2시간 30분동안 이어진 첫날 면담은 충격 속에서 진행됐고, 박 대통령은 애써 냉정한 자세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애를 썼다.

다음날인 26일 속개된 둘쨋날. 박 대통령은 여전히 주한미국 전원 철수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미대사의 국무부 보고 전문에서 “박 대통령은 왜 미국이 이 시점에서 군사들을 철수시키려고 하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고 기록했다.

하비브는 이에 카터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는 “우리은 결정이 한반도 상황과 보다 방대한 지역적인 정황, 그리고 군사적 자립을 위한 박 대통령의 노력에 대한 세밀한 조사 뒤에 나온 것”이라며 “이 결정은 또한 미국 내의 상황도 반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미군의 신뢰 유지와 안보 약속의 재확인만으로도 충분히 미군을 철수하면서 전쟁을 억제할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하비브는 또 이날 면담에서 미국 의회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후속 지원방안 등에 대한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당부했다.

한반도의 미군 주둔과 철수 문제의 근원은 1945년 일제 해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합군의 합의에 따라 일본군을 정리하기 위해 1945년 9월 8일 남한 땅을 밟은 미군은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이후 1949년 고문단 500명만 남긴채 철수했다.

1950년 1월. 애치슨 국무장관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을 천명했다. 이른바 ‘애치슨 라인(Acheson Line)’ 으로 불리는 방위선은 소련·중국 등 공산주의 확산에 맞서 미국이 방위를 보장하겠다는 경계선이었다.

그러나 이 라인은 북태평양 알류샨 열도부터 일본, 오키나와와 필리핀을 이어 내려오면서도 대한민국과 대만은 제외했다. 이 선언이 미국이 남한을 포기했다는 오판을 초래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고 주장도 있다.

6·25전쟁을 거치며 한국과 미국은 혈맹의 관계가 됐다.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체결했다. 남한과 미국 양국은 외적의 침략 시 상호 협력할 것이라는 조약을 약정했고 그 결과 미군이 국내에 주둔하게 됐다.

새로운 상황이 발생한 것은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7월 괌에서 ‘닉슨독트린’을 발표했다. 베트남의 패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아시아에서의 군사개입을 자제하겠다는 취지였다. 주한미군도 휴전 이래 1971년까지 유지돼 온 제7사단 2만명이 철수했고, 제2사단을 포함한 제1군단도 철수키로 결정됐다. 다급해진 정부가 부랴부랴 나서 힘들게 2사단 잔류를 이끌어 냈다.

1976년 대통령 선거운동을 벌일 때 지미 카터 후보가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이 컸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왜 아시아 각국의 방어를 책임지면서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야 하는지에 대한 반감이 널리 퍼져 있었고 이 때문에 ‘아마추어 정치인’이라고 불리던 카터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박종하 기자]

 

 

MEETING WITH PRESIDENT PARK

GENERAL BROWN AND UNDER SECRETARY HABIB HELD SECOND MEETING WITH PRESIDENT PARK AFTERNOON OF MAY 26, 1977. THEY WERE ACCOMPANIED BY AMBASSADOR, GENERAL VESSEY, AND O’DONOHUE. PRIM CHOI, PRESIDENT SECRETARY GENERAL KIM AND PROTOCOL SECRETARY CHOE WERE PRESENT ON KOREAN SIDE.

IN MEETING PRESIDENT PARK INDICATED THAT WE ALREADY HAD DETAILED EXCHANGE ON MAJOR POINTS IN MAY 25 MEETING.. AS RESULT OF OUR DISCUSSIONS, PRESIDENT PARK INDICATED THAT OUTLINE OF OUR MUTUAL POSITIONS WAS CLEAR AND THAT THERE WAS BASIC UNDERSTANDING ON PRINCIPLES. HE INDICATED THAT FOLLOW-UP ON SPECIFIC ISSUES SHOULD BE BETWEEN OFFICIALS OF OUR TWO GOVERNMENTS AND SUGGESTED POSSIBILITY OF ESTABLISHING WORKING COMMITTEES ON POLITICAL AND MILITARY ISSUES. HABIB NOTED THAT WE AGREED ON NEED TO ESTABLISH MECHANISM FOR FURTHER DETAILED DISCUSSIONS WITH LOCUS IN SEOUL. AT SAME TIME HE INDICATED THAT AT THIS POINT, THE FIRST TRDER IS TO REPORT TO PRESIDENT CARTER ON RESULTS OF OUR CONSULTATIONS HERE AS WELL AS CONVEYING PRESIDENT PARK’S VIEWS. AFTER REPORTING TO PRESIDENT WE WILL THEN BE IN A POSITION TO COMMUNICATE FURTHER WITH A VIEW TO ESTABLISHING APPROPRIATE MECHANISMS TO BEGIN DETAILED WORK IN PREPARATION FOR THE SCM. IN THE MEANTIME, AMBASSADOR SNEIDER AND GENERAL VESSEY WOULD REMAIN IN CONTACT WITH THEIR COUNTERPARTS TO FURTHER REFINE THE ISSUES WE HAVE DISCUSSED.

PRESIDENT PARK INDICATED THAT HE WAS APPOINTING THE FOREIGN MINISTER AND THE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TO CONDUCT THE NEGOTIATIONS CONNECTED WITH THE GROUND FORCE WITHDRAWAL. HE HAD NO OBJECTION EITHER TO A JOINT COMMITTEE OR TO ESTABLISHMENT OF SEPARATE POLITICAL AND MILITARY COMMITTEES TO STUDY THE ISSUES. HOWEVER AN APPROPRIATE CONSULTATIVE MECHANISM SHOULD BE ESTABLISHED.

PRESIDENT PARK THEN RAISED AGAIN THE QUESTION OF THE U.S. RATIONALE FOR A GROUND FORCE WITHDRAWAL AT THIS TIME HE SAID THAT HE STILL COULD NOT UNDERSTAND WHY THE U.S. WOULD PULL OUT ITS FORCES AT THIS JUNCTURE.

IN LENGTHY PRESENTATION, HABIB EXPLAINED BACKGROUND TO THE PRESIDENT’S DECISION. HE POINTED OUT THAT OUR DECISION CAME AFTER CLOSE EXAMINATION OF THE SITUATION ON THE KOREAN PENINSULA, THE LARGER REGIONAL CONTEXT, AND PRESIDENT PARK’S OWN EFFORTS TO ESTABLISH MILITARY SELF RELIANCE. THE DECISION ALSO REFLECTED AN ASSESSMENT OF THE AMERICAN DOMESTIC SITUATION. AS A RESULT OF THAT EXAMINATION IT IS POSSIBLE TO MOVE FORWARD ON THE GROUND FORCE WITHDRAWAL WHILE MAINTAINING SUFFICIENT DETERRENCE THROUGH THE CREDIBLE REMAINING ROK AND AMERICAN FORCES AND IN THE CONTEXT OF A VERY SERIOUS REAFFIRMATION OF OUR SECURITY COMMITMENT.

HABIB POINTED OUT THAT OUR DECISION WAS ALSO A REFLECTION OF THE GROWING STRENGTH OF THE ROKG. DECISION REFLECTS OUR ASSESSMENT OF THE DYNAMIC ECONOMIC GROWTH OF KOREA, THE SPIRIT AND MORALE OF THE KOREAN PEOPLE AND OUR CONFIDENCE IN THE CAPABILITY OF THE KOREAN FORCES SUPPORTED BY A MODIFIED CONTINUING AMERICAN MILITARY PRESENCE. HABIB POINTED OUT THAT WE BELREVE THAT THE SECURITY CONCEPT WHICH WE ENVISION OVER THE NEXT FEW YEARS WOULD ENGENDER GREATER SUPPORT FOR OUR BASIC SECURITY RELATIONSHIP WITH THE ROKG BOTH WITH THE AMERICAN PUBLIC AND IN OUR CONGRESS. FURTHER, WE BELIEVE THE CREDIBILITY OF THE NEW ADMINISTRATIONS REITERATION OF OUR SECURITY COMMITMENT WILL BE UNDERSTOOD AND ACCEPTED IN KOREA AND ELSEWHERE. WE WILL MAKE OUR DETERMINATION CLEAR TO NORTH KOREA AND ITS ALLIES TO REDUCE ANY CHANCE OF MISCALCULATION AS TO THE STRENGTH OF OUR SECURITY RELATIONSHIP.

PRESIDENT PARK INDICATED HE DID NOT WISH TO ENGAGE IN ARGUMENT OVER OUR RATIONALE. HOWEVER, HE DID WISH TO POINT OUT THAT IN DISCUSSING ROK MILITARY SELU-RELIANCE HE WANTED TO BE SURE THAT WE UNDERSTOOD THAT HIS OBJECTIVE WAS TO BE ABLE TO REPEL ANY ATTACK FROM NORTH KOREA WHICH WAS UNSUPPORTED BY THE PRC AND THE USSR. HABIB SAID THAT WE HAD FULLY UNDERSTOOD THAT POINT AND OUR OWN POLICIES WERE BASED ON THAT PREMISE.

IN SUMMING UP ROK POSITION, PRESIDENT PARK STRESSED THAT HIS ACCEPTANCE OF OUR OVER-ALL WITHDRAWAL SCHEDULE WAS PREDICATED ON IMPLEMENTATION OF THE REQUIRED COMPENSATORY MEASURES NEEDED TO ASSURE ROK’S SECURITY. IN RESPONSE TO HABIB QUERY, PRESIDENT PARK CONFIRMED THAT ROKG POSITION IS THAT COMPENSATORY MEASURES SHOULD BE IMPLEMENTED IN PARALLEL WITH THE WITHDRAWAL OF THE FIRST TWO GROUND FORCE INCREMENTS AND THAT THESE COMPENSATORY MEASURES SHOULD BE COMPLETED BEFORE WITHDRAWAL OF THE FINAL INCREMENT. HE ALSO STRESSED IMPORTANCE OF U.S. EXECUTIVE BRANCH WORKING TO SECURE CONGRESSIONAL UNDERSTANDING AND SUPPORT FOR NEEDED COMPENSATORY MEASURES.

HABIB PROMISED TO REPORT FULLY TO PRESIDENT CARTER THE CONTENTS OF THE CONVERSATIONS AND INDICATED APPRECIATION FOR CONSTRUCTIVE FRANK ATMOSPHERE IN WHICH DISCUSSIONS WERE CONDUCTED. HE NOTED THAT OUR INITIAL APPROACH TO TROOP WITHDRAWAL ISSUE HAD BEEN THE WAY IN WHICH CLOSE ALLIES SHOULD ADDRESS THESE PROBLEMS.

IN CLOSING HABIB INDICATED THAT WE WOULD BE SEEING PRIME MINISTER FUKUDA WHILE IN TOKYO. PRESIDENT PARK ASKED THAT WE CONVEY PRIVATE MESSAGE TO FUKUDA. PRESIDENT PARK SAID THAT FUKUDA SHOULD UNDERSTAND THAT ROKG HAS NO INTENTION OF REQUESTING THE GOJ TO PROVIDE ASSISTANCE FOR KOREAN SECURITY. HE RECOGNIZES THAT THE GOJ IS IN NO POSITION TO DO SO. AT THE SAME TIME, SINCE GOJ HAS REITERATED THAT SECURITY OF KOREA IS IMPORTANT TO THE SECURITY OF JAPAN PRESIDENT PARK HOPES IT WILL SHOW SINCERITY BY AVOIDING ANY RASH APPROACH TO NORTH KOREA WHICH WOULD ONLY FURTHER EXACERBATE THE FEELINGS OF THE KOREAN PEOPLE. HABIB INDICATED THAT HE WOULD CONVEY THAT MESSAGE.

COMMENT: SECOND MEETING WITH PARK HAS CONFIRMED HIS ACCEPTANCE OF ESSENTIALS OF OUR WITHDRAWAL SCHEDULE. HE HAS ALSO MADE CLEAR THAT ROKG INTENDS TO PRESS HARD ON QUESTION OF COMPENSATORY MEASURES. PARK AGAIN MADE CLEAR FOR THE RECORD HIS RESERVATIONS ABOUT OUR BASIC DECISION WHILE IN RESTRAINED, STATESMANLIKE MANNER ACCEPTING IT. BLUSE HOUSE STAFF TELLS US THAT THEY BELIEVE MEETINGS WITH PRESIDENT PARK WERE VERY GOOD.

SEPTELS REPORT SEPARATE MEETINGS WITH FOREIGN MINISTER PARK AND DEFENSE MINISTER SUH. IN THOSE MEETINGS SPECIFIC ISSUES ATTENDANT TO GROUND FORCE WITHDRAWAL WERE DISCUSSED IN GREATER DETAIL. SNEIDER

박대통령과의 면담 보고

1977년 5월 26일 오후 브라운 합참의장과 하비브 차관이 박 대통령과 두 번째 회담을 가졌다. 미국 측은 주한 미 대사와 베시 주한 미군 사령관, 오도나휴가 함께 자리했고, 한국 측은 최규하 국무총리와 김정렴 대통령비서실장, 최광수 청와대의전수석비서관이 함께 했다.

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우리가 5월 25일에 이미 주요한 쟁점들에 대해 세부적으로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그 논의에 대한 결과로 박 대통령은 우리의 상호 지위가 명확해졌고, 원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특정 이슈들에 대한 후속적인 조치가 두 정부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했고, 정치적 군사적 문제에 대한 실무위원회의 설립 가능성을 제안했다. 하비브는 서울에서 추가로 세부적인 논의를 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함에 동의한다고 언급했고, 이와 함께 먼저 카터 대통령에게 이곳에서의 우리의 협의 결과와 박 대통령의 생각을 전달해야 함을 말했다. 카터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적절한 장치를 만드는 것에 대한 추가 대화에 들어가는 한편, 주한 미 대사 스나이더와 베시 주한 미군 사령관은 논의한 문제들의 개선을 위해 한국측과 지속적으로 접촉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미군 철수와 관련된 협상을 하기 위해 외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을 임명했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합동위원회나 별도의 정치 군사 위원회 설립에 반대하지는 않았으나, 적합한 고문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미군 철수 이유에 대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왜 미국이 이 시점에서 군사들을 철수시키려고 하는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비브는 카터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배경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는 우리의 결정이 한반도 상황과 보다 방대한 지역적인 정황, 그리고 군사적 자립을 위한 박 대통령의 노력에 대한 세밀한 조사 뒤에 나온 것이라고 했고, 이 결정은 또한 미국 내의 상황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과 미군의 신뢰 유지와 안보 약속의 재확인으로 충분히 전쟁을 억제하면서 주한 미군 철수로 갈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비브는 우리의 결정이 또한 한국 정부의 성장하고 있는 힘을 반영했다는 것을 언급했다. 한국의 역동적인 경제 성장과 한국인들의 정신과 사기에 대한 우리의 평가, 주한 미군의 지원 하에 있는 한국 군사력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자신감을 반영했다. 그는 몇 년 후를 내다보는 안보에 대한 구상이 한국과의 기본 안보관계를 위한 미국 국민과 의회의 더 많은 지원을 불러온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우리의 안보 약속이 한국과 그 밖의 곳에서도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믿고, 우리의 투지를 북한과 그 동맹국들에 확고히 해서 우리 견고한 보안 관계에 대해 오판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의 근거를 논쟁 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군의 자립 문제에 있어 그의 목표는 중공과 소련의 지원이 없이 북한이 공격했을 때 물리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이해하기를 바랐다. 하비브는 우리가 그 점을 완전히 이해했고 우리의 정책이 그 전제 하에 있음을 말했다.

한국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박 대통령은 미군의 전면 철수 계획은 한국의 확실한 안보를 위한 보완책의 실행에 입각해 받아들인다고 강조했다. 하비의 물음에 대해 박 대통령은 먼저 두 주둔 부대의 철수와 병행해서 보완책이 실행돼야 하고 이 보완책은 마지막 주둔 부대의 철수 전에 완수돼야 한다고 확고하게 답했다. 그는 또한 의회의 이해를 확실히 얻고 보완책을 지원하기 위한 미국 행정부의 직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비브는 카터 대통령에게 대화의 내용을 빠짐없이 보고하기로 약속했고, 건설적이고 솔직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가 이뤄진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는 미군 철수 문제에 대한 우리의 최초 접촉과 관련해서 우방국들이 이런 문제들을 고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하비브는 도쿄에서 후쿠다 총리를 만날 거라고 했고, 박 대통령은 후쿠다에게 개인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박 대통령은 한국이 일본 정부에 한국 안보를 위한 원조를 요청할 의도가 없음을 후쿠다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그렇게 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봤다. 한국의 안보가 일본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일본이 재차 언급하니, 박 대통령은 일본이 한국인들의 감정을 악화시킬 만한 북한과의 경솔한 접촉을 피하면서 진심을 보이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하비브는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논평: 박 대통령과의 두 번째 회담은 미군 철수 계획의 본질을 그가 인정한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그는 또한 한국 정부가 보완책에 대해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는 것을 명시했다. 박 대통령은 절제되고 정치가다운 태도로 우리의 기본 결정을 인정하면서도 그에 대한 의문을 명백히 했다. 청와대 인사들은 우리에게 좋은 회담이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외교부장관과 국방부장관과의 개별 회담들에 대해 별도의 전문으로 보고한다. 이 회담들에서는 주한 미군 철수에 수반되는 문제들이 더욱 세부적으로 논의됐다. – 스나이더(주한 미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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