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6) 글라이스틴, 국제기구 무기로 박 대통령 ‘벼랑 끝 협박’

[특별취재팀] 지속되는 미국의 인권 개선 압력에 김대중을 석방할 것처럼 보였던 박정희 대통령은 좀처럼 미국의 희망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답답해진 미국 국무부는 윌리엄 글라이스틴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과 면담해 직접 압박을 가하도록 했다.

1978년 10월 25일. 윌리엄 글라이스틴은 청와대를 찾아 박정희의 특별면담한 뒤, 다음날 면담 내용을 상세하게 국무부에 보고했다. 당시 한-미 관계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등 다른 중대한 이슈들도 있었지만, 그는 이날 오직 인권문제에만 집중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나는 긴급조치 해제와 정치범 문제에 초점을 맞췄고, 박정희는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방어했다”며 “그는 몇 개월 내에 긴급조치를 해제하거나 김대중을 석방할 뜻이 없음을 확실히 했지만, 12월 취임식 이전에 다른 수감자들은 되도록 많이 석방할 가능성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박정희는 1978년 12월 제19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인권 개선의지를 보이지 않던 박대통령을 향해 글라이스틴은 “우리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간섭하거나 통치 방법에 대해 지시할 뜻은 없지만, 인권 문제가 진전하는지 퇴보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강하게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정치적 현실”이라고 압박했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긴급조치가 계속 유지되고 있고, 긴급조치 아래 구금과 재판, 구속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 문제에 진전이 보인다면, 한국은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비약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는 한국이 경제와 그 외의 모습에서 발전을 이루었듯 정치적 자유화를 향한 점진적인 진보 역시 있을 수 있다는, 카터 대통령에게 보낸 박 대통령의 편지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인권을 향상시키려는 카터 대통령의 목표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한국의 발전 수준과 북한으로부터의 심각한 위협을 고려해야 되는데, 미국의 기준을 한국에 적용하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응수했다. 또한 헌법에 따른 책임 때문에 역시 강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일부 학생들과 종교인들이 10월 17일 서울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경찰이 개입해서 시위를 미연에 방지했다는 것이었다.

글라이스틴에게 박대통령은 ‘긴급조치를 무한정 유지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그걸 해제한다면 그 상황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반대 세력에 맞서 사회 질서를 충분히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특히 박대통령은 김대중 석방의 문제를 털어놓았다. 그것은 그가 나와서 활동하면서 다시 불 붙을 유신철폐 투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은 그들이 ‘국가 영웅(분명 김대중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이고, 자신들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을 거라고 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계속 구금 상태에 있는 수밖에 없다. 미국은 야당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을 구원자로 생각하고, 카터 행정부로부터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방법을 구하려고 하고 있다.”

글라이스틴과 박정희 면담은 ‘인권’을 놓고 서로 한치도 밀리지 않으려는 팽팽한 전쟁이었다.

글라이스틴은 결국 “미국 쪽에서 불만을 나타내기 위해 국제금융기구에서의 투표에서 기권을 행사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압력을 줄 것”이라고 박 대통령에게 경고했다. (이 때부터 박정희는 1978년 대통령 취임과 맞물려 김대중을 석방하는 문제에 골몰하게 된다.)

글라이스틴은 본인의 강경한 각오와 함께 본국이 좀 더 시간을 주기를 당부하며 끝을 맺고 있다.
“나는 박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과 특히 중앙정보부 부장에게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한다. 이것으로 박 대통령의 성향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태도 변화가 기대되는 이상, (본국 정부가) 일단은 국제금융기구에서의 기권표 행사 같은 상징적인 압박을 삼가도록 강력히 권고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박 대통령 설득을 위해 최선의 전략으로 행동을 할 것이다.”
[특별취재팀=최정미, 최석진, 이정우 기자]

■ 인권문제에 관한 박정희 대통령과의 회담 (1977년 10월 26일)

  1. 요약: 인권에 관해 박 대통령과 폭넓은 논의를 하면서, 나는 한국과 미국이 더 좋은 관계로 돌아가자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도움이 될 거라고 강조했다. 나는 긴급조치 해제와 정치범 문제에 초점을 맞췄고, 박정희는 익숙한 방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방어했다. 그는 몇 개월 내에 긴급조치를 해제하거나 김대중을 석방할 뜻이 없음을 확실히 했지만, 12월 취임식 이전에 다른 수감자들을 되도록 많이 석방할 가능성을 보였다. 나는 한국 외교부와 중앙정보부와 함께 긴급조치와 정치범에 관한 문제를 밀어붙이려고 한다. 적어도 우리가 이 국면을 풀어나갈 때까지 국제금융기구에서의 기권 행사와 그 외 한국 정부에 대한 상징적인 압박에서 손을 뗄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요약 끝.

  2. 박 대통령과의 10월 25일 회의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인권 문제에 매진했다. 나는 우리가 한국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재개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앞으로 어려움은 있겠지만, 정규채널들에서 ‘코리아 게이트’ 같은 식으로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들의 장점들이 다뤄질 수도 있다고 했다. 앞으로의 문제들 중에서 인권이 아마도 가장 까다로우면서, 또한 한미 관계에 가장 가능성 있는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문제에서 의미 차이와 불완전한 이해가 논의와 실행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 국민들 사이에 의견차이가 있더라도, 우리는 인권에 대해 강하게 인식하며 카터 행정부는 그에 대해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간섭하거나 통치 방법에 대해 지시할 뜻은 없지만, 인권 문제가 진전하는지 퇴보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태도에 강하게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정치적 현실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긴급조치가 계속 유지되고 있고, 긴급조치 아래 구금과 재판, 구속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 문제에 진전이 보인다면, 한국은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비약적으로 좋은 평판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는 한국이 경제와 그 외의 모습에서 발전을 이루었 듯 정치적 자유화를 향한 점진적인 진보 역시 있을 수 있다는, 카터 대통령에게 보낸 박 대통령의 편지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했다.

  3. 박 대통령은 길게 답변했다. 그는 내가 이 문제를 다른 기준과 평가로 얽혀 복잡해진 것으로 보려는 것에 대해 감사해했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여러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면서 특파원들과 의회 의원들, 그 밖의 미국인 방문자들에게 뜻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했고, 그의 관점에서는 미국인들이 비난하는 한국 사회의 많은 면을 인권 탄압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인권을 향상시키려는 카터 대통령의 목표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원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문제는 한국의 발전 수준과 북한으로부터의 심각한 위협을 고려해야 되는데, 미국의 기준을 한국에 적용하려고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긴급조치와 구속 수감의 종결을 보고 싶은 우리의 바람에 대한 언급에, 박 대통령은 둘 다 국민 투표에 의해 승인된 헌법 하에 합법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 국민들이 아닌 정부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정치인들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내 제안에 따랐다면, 많은 이들, 특히 언론들로부터 환영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특정 정치적인 집단으로 인해 과한 조치를 취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한 헌법에 따른 책임 때문에 역시 강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일부 학생들과 종교인들이 10월 17일 서울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려고 했는데, 다행히 경찰이 개입해서 시위를 미연에 방지했다고 했다.

  4. 박 대통령은 긴급조치를 무한정 유지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그걸 해제한다면 그 상황을 이용하려는 정치적 반대 세력에 맞서 사회 질서를 충분히 유지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그는 긴급조치 하에 사람들을 구금하고 재판하고 투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들이 반성하거나 또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고 한다면 석방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은 그들이 ‘국가 영웅(분명 김대중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이고, 자신들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을 거라고 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계속 구금 상태에 있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야당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하곤 한다고 언쟁을 벌였다. 이들은 미국을 구원자로 생각하고, 카터 행정부로부터 한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방법을 구하려고 하고 있다고 했다. 외국의 중재를 가져오려는 이런 시도가 그들의 행동에 주된 원동력이 됐다. 10월 17일에는 운동가들이 외신 특파원들에게 정보를 주고 사진을 찍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5. 끝으로 박 대통령은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수감자들이 카터 대통령과 후쿠다 총리의 방한과 관련되어 석방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이 협조하기를 완강하게 거부할 때, 그가 어떻게 석방에 동의할 수 있을지는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6. 나는 정리하면서 박 대통령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고, 그가 언급한 사실들을 인정한다고 했다. 미국 정부는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현실적으로 긴급조치 하에 구속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는 한국 정부가 결정해야 한다고 인식했다고 했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들과 카터 행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고, 이 문제에 진전이 없다면, 실질적인 효과만큼이나 한국의 이미지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쪽에서 불만을 나타내기 위해 국제금융기구에서의 투표에서 기권을 행사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압력을 줄 거라고 박 대통령에게 경고했다. 개선이 없다면, 박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압박이 늘어날 것을 예상해야 한다고 했다.

  7. 의견: 우리는 인권 문제의 돌파구 앞에 와있지 않다. 중앙정보부 사람들을 포함 많은 한국 정부의 사람들이 박정희에게 긴급조치를 폐지하도록 조언한 일이 있지만, 그는 몇 달 안에 긴급조치를 해제하거나 김대중을 석방할 의사가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하지만 감옥에 있는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은 12월 취임식 이전에 석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양국의 관계를 좋게 회복시키는 데 다른 무엇보다 인권에 관한 개선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대화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확인시켜줬다. 그가 바라는 미국과 일본과의 성공적인 정상회담이 또한 우리의 호의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딜레마는 명백하다. 그는 야당이 순응하면 기꺼이 그들을 더 관대하게 대할 의향이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저지 전략에 낙심한 야당은 대통령에게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9. 나는 박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과 특히 중앙정보부 부장에게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한다. 이것으로 박 대통령의 성향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미하게나마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추가 대화가 이뤄지고, 박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온 만큼, 나는 국제금융기구에서의 기권표 행사 같은 상징적인 압박을 삼가도록 강력히 권고하는 바이다. 한편 이곳에서 우리는 박 대통령이 우리의 설득에 본질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면 그에 따라 최선의 전략으로 행동을 할 것이다. – 글라이스틴(주한 미 대사)

■SUBJ: DISCUSSION WITH PRESIDENT PARK REGARDING HUMAN RIGHTS

                                                                                                           (1977. 10. 26)

  1. BEGIN SUMMARY: DURING EXTENSIVE DISCUSSION WITH PRESIDENT PARK ON HUMAN RIGHTS, I STRESSED THAT PROGRESS IN THIS AREA WOULD BE MORE HELPFUL THAN ANYTHING ELSE IN SIGNIFYING THE RETURN TO BETTER RELATIONS BETWEEN THE US AND ROK. I FOCUSED ON ELIMINATION OF EMERGENCY MEASURES AND POLITICAL IMPRISONMENTS. PARK DEFENDED HIS POSITION IN FAMILIAR TERMS. HIS REMARKS MAKE IT QUITE CLEAR THAT HE DOES NOT INTEND TO LIFT THE EMERGENCY MEASURES OR TO RELEASE KIM DAE-JUNG WITHIN THE NEXT FEW MONTHS, BUT HE MAY RELEASE AS MANY OTHER PRISONERS AS POSSIBLE BEFORE HIS DECEMBER INAUGURATION. I INTEND TO PURSUE THE SUBJECT OF THE EMERGENCY MEASURES AND POLITICAL IMPRISONMENTS WITH THE FONMIN AND DIRECTOR OF KCIA. AT LEAST UNTIL WE GET THROUGH THIS PHASE, STRONGLY RECOMMEND WE DESIST FROM ABSTENTIONS IN THE IFIS AND OTHER SYMBOLIC PUBLIC PRESSURES ON THE ROKG. END SUMMARY.

  2. MY OCTOBER 25 DISCUSSION WITH PRESIDENT PARK WAS ALMOST ENTIRELY DEVOTED TO HUMAN RIGHTS. I NOTED THAT WE WERE IN THE PROCESS OF RESUMING NORMAL RELATIONS WITH KOREA. EVEN THOUGH THERE WOULD BE DIFFICULTIES IN THE FUTURE, I EXPECTED THEY COULD BE DEALT WITH ON THEIR MERITS, IN REGULAR CHANNELS, AND WITHOUT THE EMOTIONAL SUPERCHARGE OF ISSUES SUCH AS “KOREAGATE”. OF THESE FUTURE ISSUES, HUMAN RIGHTS WAS PROBABLY THE MOST TRICKY, BUT ALSO CAPABLE OF BRINGING THE GREATEST POSSIBLE IMPROVEMENT INTO THE ATMOSPHERE OF OUR RELATIONSHIP. I ACKNOWLEDGED THAT DISCUSSIONS AND ACTIONS IN THIS AREA WERE COMPLICATED BY DIFFERING DEFINITIONS AND INCOMPLETE UNDERSTANDING. YET EVEN THOUGH THERE WERE DISAGREEMENTS AMONG AMERICANS, WE FELT STRONGLY ABOUT HUMAN RIGHTS, AND THE CARTER ADMINISTRATION WAS DEDICATED TO TRY TO ACHIEVE PROGRESS. WE DID NOT INTEND TO INTERFERE IN THE KOREAN POLITICAL PROCESS OR TO DICTATE HOW KOREA SHOULD GOVERN ITSELF. BUT IT WAS A POLITICAL FACT OF LIFE THAT AMERICAN ATTITUDES TOWARD KOREA WERE HEAVILY COLORED BY JUDGEMENTS AS TO WHETHER THERE WAS PROGRESS OR REGRESSION IN HUMAN RIGHTS. AMERICANS GENERALLY FOCUSED ON THE CONTINUED EXISTENCE OF THE EMERGENCY MEASURES AND THE CONTINUED DETENTION, TRIAL AND IMPRISONMENT OF PEOPLE UNDER THE EMERGENCY MEASURES. IF THERE COULD BE PROGRESS IN THESE AREAS, I WAS CONVINCED THAT THERE WOULD BE A DISPROPORTIONATE ADVANTAGE TO KOREA IN TERMS OF ITS GENERAL STANDING AMONG AMERICANS. MOREOVER, THIS DEVELOPMENT WOULD SEEM CONSISTENT WITH THE PRESIDENT’S LETTER TO PRESIDENT CARTER IN WHICH HE SUGGESTED THERE COULD BE GRADUAL PROGRESS TOWARD POLITICAL LIBERALIZATION AS THE ROK DEVELOPED ECONOMIC AND OTHER FORMS OF STRENGTH.

  3. PRESIDENT PARK REPLIED AT LENGTH. HE SAID THAT HE APPRECIATED MY WILLINGNESS TO VIEW THE ISSUE AS A COMPLICATED ONE INVOLVING DIFFERENT STANDARDS AND DIFFERENT ASSESSMENTS. HE HAD TRIED TO MAKE THIS POINT TO MANY CORRESPONDENTS, CONGRESSMEN AND OTHER AMERICAN VISITORS OVER THE PAST TWO YEARS WITH VARYING DEGREES OF SUCCESS. IN HIS OWN VIEW, MANY ASPECTS OF KOREAN SOCIETY CRITICIZED BY AMERICANS SHOULD NOT BE CONSIDERED VIOLATIONS OF HUMAN RIGHTS. HE SAID HE HAD NO PROBLEM WITH PRESIDENT CARTER’S OBJECTIVE OF ADVANCING THE CAUSE OF HUMAN RIGHTS THROUGHOUT THE WORLD; HE AGREED FULLY WITH THE PRINCIPLE. THE PROBLEM WAS WITH THE YARDSTICK AND THE US TENDENCY TO APPLY US CRITERIA TO KOREA WHEREAS KOREANS HAD TO TAKE INTO ACCOUNT THE STAGE OF THEIR DEVELOPMENT AND THE MASSIVE CONTINUING THREAT FROM THE NORTH. AS FOR MY REFERENCES TO OUR DESIRE TO SEE THE END OF THE EMERGENCY MEASURES AND IMPRISONMENTS, THE PRESIDENT EMPHASIZED THAT BOTH WERE LEGAL UNDER A CONSTITUTION APPROVED BY TWO REFERENDA. THE ONLY PEOPLE SERIOUSLY INCONVENIENCED WERE THOSE POLITICIANS ACTIVELY OPPOSED TO THE GOVERNMENT, NOT THE GENERAL PUBLIC. IF HE WERE TO COMPLY WITH MY SUGGESTIONS, HE KNEW HIS ACTIONS WOULD BE WELCOMED BY MANY, ESPECIALLY THE PRESS. NEVERTHELESS, HE WAS CONVINCED THAT SUCH A MOVE ON HIS PART WOULD BE ABUSED BY CERTAIN POLITICAL ELEMENTS HERE AND, BECAUSE OF HIS RESPONSIBILITIES UNDER THE CONSTITUTION, HE WOULD ONCE AGAIN BE FORCED TO RESORT TO STRONG MEASURES. FOR EXAMPLE, ON OCTOBER 17 SOME STUDENTS AND RELIGIOUS ELEMENTS HAD TRIED TO ORGANIZE A MASSIVE DEMONSTRATION IN DOWNTOWN SEOUL. FORTUNATELY THE POLICE HAD INTERVENED AND NIPPED THE DEMONSTRATION IN THE BUD.

  4. PRESIDENT PARK SAID THAT HE DID NOT WISH TO MAINTAIN THE EMERGENCY MEASURES INDEFINITELY, BUT HE WAS CONVINCED THAT IF HE WERE TO ABOLISH THEM NOW HE COULD NOT MAINTAIN ADEQUATE ORDER IN THE SOCIETY IN THE FACE OF A POLITICAL OPPOSITION WHICH WAS DETERMINED TO EXPLOIT THE SITUATION. SIMILARLY, HE DID NOT LIKE DETAINING, TRYING, AND IMPRISONING PEOPLE UNDER THE EMERGENCY MEASURES AND HAD TRIED HARD TO RELEASE SUCH PEOPLE IF THEY REPENTED OR INDICATED THEY WOULD NOT REPEAT THE OFFENSE. UNFORTUNATELY SOME THOUGHT THEY WERE “NATIONAL HEROES” (OBVIOUSLY A REFERENCE TO KIM DAE-JUNG) AND WOULD NOT REPENT THEIR ACTIONS. IN THESE CASES, THERE WAS NO WAY BUT TO KEEP THEM UNDER DETENTION. THE PRESIDENT ARGUED THAT WE OFTEN FAILED TO UNDERSTAND THE PSYCHOLOGY OF KOREAN OPPOSITION ELEMENTS. THESE PEOPLE THOUGHT OF THE US AS THEIR SAVIOR AND SOUGHT WAYS TO ORGANIZE PRESSURE FROM THE CARTER ADMINISTRATION ON THE ROKG. THIS ATTEMPT TO BRING ABOUT FOREIGN INTERVENTION IN KOREA WAS OFTEN THE PRINCIPAL MOTIVATION FOR THEIR ACTIONS. DURING THE OCTOBER 17 AFFAIR THE ACTIVISTS WENT OUT OF THEIR WAY TO INFORM FOREIGN CORRESPONDENTS AND TO ENCOURAGE THEM TO TAKE PHOTOGRAPHS.

  5. IN CONCLUSION THE PRESIDENT COMMENTED THAT HE WAS NOT BEING EMOTIONAL IN HIS APPROACH. HE FELT THAT IT WOULD BE APPROPRIATE IF PEOPLE CURRENTLY BEING HELD COULD BE RELEASED IN CONNECTION WITH VISITS TO KOREA BY PRESIDENT CARTER AND PRIMIN FUKUDA. IF THESE INDIVIDUALS FLATLY REFUSED TO COOPERATE, HOWEVER, HE DID NOT SEE HOW HE COULD RESPONSIBLY AGREE TO FREE THEM.

  6. I SUMMARIZED BY STATING THAT I UNDERSTOOD THE PRESIDENT’S POINT OF VIEW AND APPRECIATED THE FACTORS HE HAD MENTIONED. THE USG WOULD NOT INTERVENE IN KOREAN DOMESTIC POLITICS. WE RECOGNIZED, AS A PRACTICAL REALITY, THAT THE ROKG WOULD HAVE TO DECIDE HOW TO DEAL WITH THE EMERGENCY MEASURES AND PEOPLE HELD UNDER THEM. NEVERTHELESS, IT WAS ALSO A REALITY THAT PEOPLE IN THE US AND THE CARTER ADMINISTRATION FELT STRONGLY ABOUT THESE MATTERS. IF THERE WERE NO PROGRESS, IT WOULD HAVE AN UNHELPFUL EFFECT ON KOREA’S IMAGE AS WELL AS SOME PRACTICAL EFFECT. I CAUTIONED THE PRESIDENT THAT THERE WAS PRESSURE IN SOME QUARTERS IN THE US TO SIGNIFY OUR DISSATISFACTION THROUGH ABSTENTIONS ON VOTES IN THE IFIS AND IN OTHER WAYS. IF THESE PEOPLE DID NO SENSE SOME IMPROVEMENT, THE PRESIDENT SHOULD EXPECT INCREASED PRESSURE ALONG THESE LINES.

  7. COMMENT: OBVIOUSLY WE ARE NOT ON THE EVE OF A BREAKTHROUGH ON THE HUMAN RIGHTS FRONT. ALTHOUGH WE KNOW THAT A NUMBER OF PEOPLE IN THE ROKG, INCLUDING SOME IN THE KCIA, HAVE BEEN COUNSELLING PARK TO ABOLISH THE EMERGENCY MEASURES, HIS OWN REMARKS MAKE IT QUITE CLEAR THAT HE DOES NOT INTEND TO LIFT THEM OR TO RELEASE KIM DAE-JUNG WITHIN THE NEXT FEW MONTHS. BUT WE MAY SEE A MAJOR EFFORT TO GET MOST OF THE OTHERS OUT OF JAIL BEFORE THE INAUGURATION IN DECEMBER.

  8. OUR CONVERSATION LEFT PRESIDENT PARK IN NO DOUBT, THAT SOME PROGRESS ON HUMAN RIGHTS WOULD BE MORE HELPFUL THAN ANYTHING ELSE IN SIGNIFYING THE RETURN TO BETTER RELATIONS BETWEEN OUR TWO COUNTRIES. HIS DESIRE FOR SUCCESSFUL SUMMIT MEETINGS WITH THE US AND JAPAN SHOULD ALSO WORK IN OUR FAVOR. NEVERTHELESS, THE PRESIDENT’S DILEMNA IS OBVIOUS. HE WOULD BE WILLING TO TREAT HIS POLITICAL OPPOSITION MORE LIBERALLY IF HIS POLITICAL OPPOSITION WOULD RESPOND TAMELY. BUT THE POLITICAL OPPOSITION, FRUSTRATED BY THE SUCCESS OF THE GOVERNMENT’S DETERRENT TACTICS, IS DETERMINED TO CONFRONT THE PRESIDENT IN EVERY WAY POSSIBLE.

  9. I INTEND TO FOLLOW UP MY CONVERSATION WITH THE PRESIDENT BY TALKING EVEN MORE BLUNTLY WITH THE FOREIGN MINISTER AND ESPECIALLY THE DIRECTOR OF KCIA. I DON’T EXPECT THESE TO CHANGE THE PRESIDENT’S BASIC DISPOSITION, BUT THEY MAY HAVE A MARGINALLY BENEFICIAL EFFECT. AT LEAST UNTIL THESE ADDITIONAL CONVERSATIONS HAVE TAKEN PLACE AND THE PRESIDENT HAS HAD SOME TIME TO CONSIDER THE MATTER, I STRONGLY URGE THAT WE REFRAIN FROM SYMBOLIC PRESSURES SUCH AS VOTE ABSTENTIONS IN OUR VOTES IN THE IFIS. IN THE MEANTIME, WE HERE WILL BE GIVING ACTIVE THOUGHT TO THE BEST STRATEGY TO FOLLOW IF PRESIDENT PARK PROVES ESSENTIALLY IMPERVIOUS TO OUR PERSUASIONS. GLEYS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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