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3) 카터 압박에 “박정희, 명동사건자 석방 긍정 신호”

“현재 입수되는 정보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명동 수감자들을 석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1977년 6월 15일자, 주한미국대사관 본국 보고 전문)

1977년 5월 25~26일 필립 하비브 국무부 차관, 조지 브라운 합참의장 일행이 박정희 대통령 면담하는 자리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제기하던 중 비공식적으로 언급했던 것이 인권문제였다.

하비브 차관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의 인권문제를 연계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의 방침을 확인한 뒤 한국의 안보 문제와 관련해서는 독단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은 물론 철군과 관련해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하비브는 그러나 미국 의회에서 주한미군 철수와 후속 지원방안 등에 대한 승인을 받기 위한 분위기 형성에 필요하다며 박 대통령에게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우회적으로 당부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공론화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박 대통령과의 접견 내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 명동사건을 공개적으로 문제삼지 않되 체포된 재야 지도자들의 석방을 외교채널을 통해 압박한 셈이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명동사건이 인권문제가 아니다”며 “명동사건의 용의자들은 헌법과 현행법을 위반했으므로 적법한 절차에 의해 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의 압박으로 이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 경우 이들이 다시 법을 어길 수 있고 추가 체포 사태가 가능하다며 난색을 보였다.

다만 ‘명동사건 용의자들에 대한 관대한 처분이 카터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일정기간이 지나 상황이 잠잠해지면 모종의 조치를 취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터 대통령에게 한국의 인권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비브 차관을 통해 전했다.

하비브 차관 일행이 돌아간 지 20일 후 리처드 스나이더 대사는 청와대의 분위기를 파악해 본국에 보고했던 것이다.

스나이더는 “13일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결정된 것들을 나에게 확인시켜줬는데, 그는 박정희가 곧 실행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 시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대사는 김재규가 “상황에 따라 명동 수감자들 전체 또는 크게 뉘우치는 일부만이 석방될 것”이라며 “석방이 외부 압력(미국)이 아닌 정부의 행동에 달려있다는 것을 수감자들이 인식할 때, 석방 조건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스나이더는 “인권 문제에 대한 박정희의 양보에 여전히 신중한 면이 있는 가운데, 8월 15일 일부 명동 수감자들의 석방에 대한 전망이 긍정적이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미국의 기대와 달리, 일부 인사에 대해서만 조치가 있었을 뿐 김대중 등 핵심 인사 석방문제는 해를 넘기게 된다.

김대중의 경우 12월 18일 김 전 대통령은 전주교도소에서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이듬해 연말에야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명동사건이란?]

명동사건은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개최된 3.1절 기념미사를 빌미로 정부가 재야의 지도급 인사들을 정부전복선동 혐의로 대량 구속한 사건. 3.1민주구국사건으로 불린다.

사건 직후 검찰은 ‘일부 재야인사들이 반정부 분자를 규합해 민주회복국민회의, 갈릴리교회 등 종교단체와 사회단체를 만들어 각종 기도회, 수련회, 집회 등 종교행사를 빙자하여 수시로 회합, 모의하면서 긴급조치 철폐와 정권퇴진 요구 등 불법적 구호를 내세워 정부 전복을 선동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의 직접적 발단이 된 것은 이날 기도회의 마지막 순서인 ‘3.1민주구국선언’ 낭독 때문이었다.

3.1민주구국선언은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최대과업이다 라는 내용이었다. 앞서 1월 23일의 원주기도회사건 및 원주선언, 2월 16일 전주기도회에서의 김지하 관계발언과 유인물 등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인사는 정치인 윤보선 김대중 정일형 언론인 함석헌, 윤반웅, 문익환 목사, 함세웅 신현봉 김승훈 신부, 이문영 서남동 교수 등 모두 18명에 달했다.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 변호인단 총사퇴 등 파란을 일으킨 끝에 문익환 김대중 윤보선 함석헌에게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이 선고되는 등 관련자 전원에게 실형이 선고되었다.

이 사건은 피고들이 사회의 지도급 인사라는 점에서 내외에 미친 파장이 컸으며 재판과정에서 정치적·법률적 체제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등 유신체제에 대한 집중적 거부와 항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재야와 정치인, 신교와 구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연대가 강화되었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이정우 기자]


명동사건 가족대책위원회가 재판 방청을 거부당하자 입을 십자 모양으로 봉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HUMAN RIGHTS [America Embassy, 1977년 6월 15일]

  1. ON BASIS OF INFORMATION NOW AVAILABLE TO US, PRESIDENT PARK IS STILL MOVING TOWARD RELEASE OF MYONGDONG DEFENDANTS ALONG LINES SCENARIO OUTLINED REFTEL. ALL REPORTS INDICATE THAT PARK REACTED VERY FAVORABLY TO HUMAN RIGHTS APPROACH TAKEN DURING HABIB/BROWN VISIT, AND IS EVEN MORE INCLINED TO MAKING HELPFUL GESTURE TO PRESIDENT CARTER ON HUMAN RIGHTS ISSUE.

  2. KCIA DIRECTOR KIM JAE-KYU CONFIRMED ABOVE CONCLUSIONS TO ME JUNE 13. KIM, HOWEVER, WOULD NOT BE PINNED DOWN ON TIMING OF PARK MOVE STATING THAT IT COULD COME EITHER SOONER OR MAYBE LATER THAN EXPECTED. HE ADDITIONALLY SAID THAT WHETHER ALL OR MAYBE JUST SOME OF MYONGDONG DEFENDANTS MIGHT BE RELEASED INITIALLY DEPENDED UPON THEIR STATE OF SOME, HE SAID, WERE CLEARLY MORE “REPENTANT” THAN OTHERS. KIM DEFINED “REPENTANCE” IN VERY VAGUE AND AMBIGUOUS TERMS, INDICATING THAT TO SOME EXTENT IT CONSTITUTED DEGREE OF DISCOURAGEMENT WITH EXTERNAL (READ U.S.) SUPPORT TO SECURE THEIR RELEASE. HE SAID THAT WHEN DEFENDANTS RECOGNIZE THAT RELEASE DEPENDED UPON ROKG ACTIONS AND NOT EXTERNAL PRESSURES, THEN CONDITIONS FOR RELEASE WOULD BE FAVORABLE.

  3. AT SAME TIME, WE HAVE VARIOUS REPORTS THAT ROKG IS DISCOURAGING DISSIDENTS FROM ANTICIPATING POSITIVE RESULTS FROM EXTERNAL PRESSURES ON HUMAN RIGHTS ISSUE. IN FACT, DISSIDENTS HAVE BEEN RELATIVELY QUIET IN RECENT WEEKS EXCEPT FOR HUNGER STRIKE BY MOON IK-HWAN. KCIA DIRECTOR COMMENTED THAT INTERNAL SITUATION WAS VERY STABLE RECENTLY.

  4. COMMENT: WHILE IT IS STILL PRUDENT TO REMAIN CAUTIOUS ON CONCESSIONS BY PARK ON HUMAN RIGHTS, PROSPECTS FOR RELEASE OF SOME OF THE MYONGDONG DEFENDANTS BY AUGUST 15 SEEM REASONABLY GOOD PROVIDING UNEXPECTED DEVELOPMENTS DO NOT UPSET SCENARIO. ACTION EARLIER IS ALSO POSSIBLE. SNEIDER

▶ 한국의 인권 [주한미국대사관, 1977년 6월 15일]

  1. 현재 입수되는 정보에 의하면, 박 대통령은 여전히 관련 문서에 나온 시나리오에 따라 명동 수감자들을 석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하비브와 브라운의 방한 중에 있었던 인권 관련 접촉에서 박정희가 아주 호의적으로 반응했다고 모든 보고들이 전하고 있다.

  2. 6월 13일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결정된 것들을 나에게 확인시켜줬는데, 그는 박정희가 곧 실행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면서 시기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상황에 따라 명동 수감자들 전체 또는 크게 뉘우치는 일부만이 석방될 거라고 했다. 김재규는 ‘뉘우친다’는 것을 아주 애매모호한 용어로 정의하면서, 어느 정도 그들의 석방을 위한 외부 지지가 꺾일 거라고 했다. 그는 석방이 외부 압력이 아닌 정부의 행동에 달려있다는 것을 수감자들이 인식할 때, 석방 조건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3. 동시에 우리는 한국 정부가 인권 문제에 관한 외부 압력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반체제 인사들이 기대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다양한 보고들을 받았다. 사실 반체제 인사들은 최근 몇 주 동안 문익환의 단식투쟁 외에 비교적 조용히 있어왔다. 중앙정보부 부장은 최근 국내 정황이 아주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4. 의견: 인권 문제에 대한 박정희의 양보에 여전히 신중한 면이 있는 가운데, 8월 15일 일부 명동 수감자들의 석방에 대한 전망이 좋아 보이면서 시나리오를 뒤엎지 않는 의외의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더 빠른 실행의 가능성도 보인다. – 스나이더(주한 미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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