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피의 궁정동 안가’로 미 대사 부른 전두환 “미국, 베트남처럼 배신할 수 있다” 주장

[특별취재팀] 1980년 5월. 캠퍼스에는 목련꽃이 만개하기 시작했지만, 한국의 상황은 마치 삼국지의 ‘적벽대전’처럼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양 진영이 모든 군사력을 결집시키는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학생들은 조직력을 강화하면서 일사분란하게 권력을 쥔 최규하-신현확-전두환 진영에 거침없는 도전을 거듭했다.

신군부의 계엄사는 1일 전국지휘관회의를 개최하고 “민주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엄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미8군사령부에 ‘필요한 경우 병력을 이동시킬 수 밖에 없다’고 알렸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7일 국무장관에게 “한국군이 급박한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다음의 병력이동을 미군사령관에게 알려왔다… 요청이 있을 경우 유엔군사령관은 병력이동에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 타전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열흘 전 쯤에 신군부의 병력이동을 사실상 승인한 셈이었다.

▶미 국무부 ‘3김 이외 다른 인물이 대통령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소요가 확대되는 동안 미국의 백악관, 국무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향에 컨센서스가 형성됐다.

<첫째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연기문제에 대해서는 글라이스틴 대사, 위컴 사령관의 연기 요청을 지지한다. 둘째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3김’ 이외의 다른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한국에는 최규하 정부에게 정치개혁 일정을 앞당기라는 미국의 압력을 지원할 조직적인 세력이 없다.>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을 만나기 직전 리처드 홀브룩 차관보가 몇가지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요구해왔다. 홀브룩은 미국의 정치적 목표의 방향과 현재의 상황, 민주주의로의 이행과정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5월 7일 다음과 같이 전문을 보냈다.

(1) 미국의 기본적인 정치적 목표는 한국의 정치적 안정 유지에 필요한 정치적 규제 완화의 실현을 돕는 일이다. 완화의 정도와 실현 방법은 한국인들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2) 전두환과 관련된 우리의 목표는 그가 속도를 늦추도록 해 국민들과 군부가 용인할 수 있는 정도 이상이 되도록 해서는 안된다.

(3) 전두환의 최근 행동에 대해 이전보다 한층 우려하고 있다.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시위가 걱정스럽다.

글라이스틴은 “현재 민주주의 가능성이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다음날 그런 태도를 완전히 바꿔야 했다.

5월 8일 보낸 전문에서 그는 “핵생 시위로 인한 긴장 고조의 여러 징후가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은 다른 역학적 요인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초대형 태풍이 서서히 밀려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드디어 만난 전두환과 글라이스틴, 진땀 나는 ‘팽팽한 신경전’

5월 9일. 전두환 장군은 글라이스틴 대사를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했던 궁정동 안가로 불렀다.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보안상 이유였는지 전두환이 미국대사를 만나는 장소로 왜 이 장소를 택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의 안정 유지를 위해서는 민주화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믿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대통령이 정치발전을 위한 개혁 계획을 발표해 안도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정치발전은 이제 끝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만든 ‘다른 사태 발전’에 우려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헌법 개정과 정치 자유화를 위한 개혁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공개적으로 (한국-미국이) 상호 비방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양국의 민족주의적 대응은 상호이익에 심각한 손상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안보협의회 연기 결정은 국무부, 국방부는 물론 최고위층(대통령)의 결정입니다.” (글라이스틴)

전두환은 “미국은 월남과의 동맹관계도 저버린 바 있다”며 미국의 정책을 불신하는 언급을 했다.

그는 “최근의 소요가 소수의 과격파 학생, 교수 및 야심적인 정치인들의 탓”이라며 “하지만 정세가 위급한 상황은 아니며, 군사력은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라이스틴은 “몇몇 사람들이 소란을 피운다고 대다수 학생들과 국민들을 적으로 만들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사는 질서 유지를 위해 군대를 동원해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의 혼란에 대해 경고했다. 또 정치인들을 체포함으로 인해 야기될 위험을 강조했고 전두환은 동감을 표시했다.

5월 13일. 존 위컴 사령관도 주영복 국방장관, 유병현 합참의장, 전두환 사령관을 만나 미국의 같은 우려를 전달했다. 물론 신군부는 이같은 미국의 우려에 대해 ‘과도한 간섭’이라며 불쾌한 입장을 감추지 않았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박정우 기자]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408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204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281946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320837_e.html

▷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 / William Gleys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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