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 전두환 제거 미련 못버린 미국 국무부… 글라이스틴 “까마귀-백로” 현실인정론으로 설득 (28)

[특별취재팀] 청와대-신군부-주한미국대사관-백악관간 미묘한 줄다리기는 1980년 초반 내내 지속됐다. 특히 이 때는 미국도 신군부의 속내를 몰라 오판을 거듭했다.

미국 국무부는 2월 초 주한미국대사관에 전문을 보냈다.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과 몇몇 재벌들이 지지하는 현재의 정치제도 하에서 자신이나 신현확 총리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 여부를 점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조종된’ 정치적 결과가 한·미관계에 미칠 명확하고 부정적인 영향은 강조할 필요도 없이 지대하다고 할 수 있음.”

글라이스틴 대사는 중간보고를 통해 “최 대통령이 미국을 속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신현확은 어느 시점에서 정치판에 뛰어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며칠 후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 총리를 대사관저 오찬에 초청해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미국은 전두환 신군부에 대해 불만이 크다. 미국은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전두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사는 대화 말미에 신총리를 겨냥해 단도직입적으로 ‘제3자’의 대두 가능성을 제기했다. 눈치를 챈 신 총리는 곧바로 잘라 말했다.

“저는 야당을 이롭게 하고 보수세력을 분할시킬 수 있는 계획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총리는 “그러나 나나 최대통령이 우려하듯 몇 개월 안에 닥칠 ‘혼란 해소’를 위해 정치적 해결책을 개발하고 그것을 이끌 역할은 맡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신총리가 전두환을 ‘전면’에 내세우기 위해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정치인들과 군인들이 해결책 마련에 실패할 경우 자신을 절충에 의한 후보로 간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1980년대 초반 미국 국무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은 전문, 전화를 통해 전두환 신군부 대책에 골몰했다.


▶글라이스틴 정책건의서 “위험한 사태 없을 듯” 오판

3월 중순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의 정치 상황을 분석한 장문의 보고서와 더불어 별도의 정책건의서를 보냈다.

“1980년의 정치적 안정과 민주발전의 전망은 나쁘지 않다. 군부 쿠데타나 학생과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 등 위험한 사태 발생의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전두환은 이미 3성 장군을 향한 싸움에서 승리했고, 전군에 대해 정보 보안망을 확장했으며 일개 보안장교라기보다는 국가 지도자처럼 각계각층 사람들과의 접촉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직접, 아니면 민간인을 전면에 내세워 권력을 잡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는듯 한 인상이다.”

대사는 “전두환이 중앙정보부까지 공식적으로 자신의 휘하에 두려하거나 차기 선거제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경우 사회적 소요사태를 촉발하고 군부와의 긴장관계를 다시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앞부분은 틀리고, 뒷부분은 정확히 맞춘 셈이다.

글라이스틴은 며칠 후 같은 맥락의 정책제안도 보냈다.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최대통령 정부의 ‘순조로운 민주화’ 일정을 지지하고 있으므로 한국사회의 이질적 집단들에게 정도를 벗어나는 행동의 위험과 내부 결속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어른스런 잔소리꾼의 역할을 (미국이)지속해야 할 것이다.>

그는 “냉정 회복과 전두환의 실제 인정을 반영해 미국의 정책도 비상시 대처방안에서 장기적 안목에 기초한 것으로 바뀔 것”을 건의했다.

미국이 한국 측, 특히 군부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면 비난과 비평 뿐 아니라 가끔은 그들을 칭송할 필요도 있음을 지적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가장 미묘한 문제는 전두환의 12 · 12 사태를 용인하지 않으면서 그와의 협조를 모색하는 일이었다.

‘절묘한 줄다리기 정책’을 찾자는 말이었다.

▶‘이승만 정권 붕괴, 베트남 답습하면 안된다’ 강조
미국의 태도 변화에 관한 건의는 특별히 홀브룩 차관보를 겨냥한 것이었다.

홀브룩은 한국 현지(주한미국대사관과 미군 수뇌진, CIA)의 태도 변화가 전두환이 권력 확대를 인정하고 ‘그를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드려질까 봐 우려하고 있었다.

사실 12·12 사태 밤부터 글라이스틴은 전두환의 행동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국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하는 태도는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전두환 신군부가 미국의 태도 변화를 ‘미국이 자신을 지지하는 증거’라고 아전인수식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경우든 현실적으로 전두환 측과 부딪치는 것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친밀한 관계로 발전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대사는 정책건의 보고서 후반을 ‘미국이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사태들’에 대해 할애했다.

“혼란스런 사회불안이 양국의 안보관계를 재고할 정도로 악화되는 상황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군부가 정치조작이나 쿠데타 등 국민들의 공감대를 벗어나는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모든 당사자들에게 그런 사태 발전은 한·미 양국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임을 계속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거나, 전두환이 국가지도자로 등장하는 일이 있더라도 한·미 양국의 기본 안보관계나 대(對)북한정책을 바꾸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한국 국민을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동아시아 전체에 걸친 미국의 이익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몇몇 사람들은 전두환과 그의 추종세력 제거를 위해 군부 내의 반전두환 세력을 동원하려는 생각에 아직 집착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전두환 축출에 대한 글라이스틴의 반대 의견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현실적인 문제로 우리는 이전의 시도에서 완전 실패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의 한국과 그 후의 베트남이 그 예다. 노출될 위험이 많고, 거사과정에서 인명 살상 사태가 발생하면 우리로서는 달갑지 않은 민족주의적 반향을 불러올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제거하려는 까마귀를 대체할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백로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국무부의 전두환 제거작업은 수면으로 가라앉았지만, 5.18 광주민주화항쟁 이후인 1980년 7월께 또 다시 ‘까마귀 제거 프로젝트’가 국무부 회의 테이블 위로 올라오게 된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박정우 기자]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408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204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281946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320837_e.html

▷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 / William Gleyst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