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역쿠데타는 실패로 끝나고… ‘식민지 총독이냐?’ 전두환-글라이스틴 갈등 증폭, 상호 비난전

[특별취재팀] “전두환 신군부를 쫓아내고, 대한민국 정치 민주화를 돕겠다!” (1980년 1월, 역쿠데타 도모 장성들)

1979년 12-12 사태를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에 대항해 역쿠데타를 일으키려던 장성 30여명이 이듬해인 1980년 1월 주한미군과 미국대사관에 은밀하게 지원요청을 한 데 대해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문제는 그야말로 ‘핵폭탄’을 다루는 문제였다.

전두환 반대파 장성들의 역쿠데타 지원 요청에 리처드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와 존 위컴 한미연합사령관, 로버트 브루스터 CIA지부장은 숙의를 거듭했고,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미국은 쿠데타 발생 억제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경우 수용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이 문장의 쿠데타는 ’전두환 쿠데타‘를 의미. 미국은 1980년 1월까지도 12-12를 쿠데타로 규정짓지 않고, 최규하 대통령을 돕다가 군으로 돌아간 것이라는 전두환의 말을 믿었다) 우리의 억제수단은 우리에 동조하는 민·관 지도자들에게 힘을 보태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국을 조정하기 위해 신중히 검토된 은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가장 큰 위험은 전두환이나 그의 적들이 정국불안을 기회 삼아 정권 탈취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워싱턴에 보고했고, 위싱턴은 서울 현장의 입장을 승인하면서 관련 당사자들과 접촉할 것을 지시했다. 그 중에는 한국의 대외채무 변제 능력과 대북한 방위를 위태롭게 할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을 담도록 했다.

위컴은 미국 측에 지원을 타진했던 인사 및 불만장교들에게 별도로 회신을 보냈다. 그들이 실망한 것은 당연했다.

1979년 12월 12일 체포되는 계엄사령관. 미국은 당시 이를 쿠데타가 아니라 수사임을 강조하는 전두환 신군부측의 말을 믿었다.

▶ 역쿠데타 움직임 전혀 몰랐던 최대통령과 신군부

미국이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뒤인 2월 6일 글라이스틴 대사는 최 대통령을 만났다. 최 대통령은 “그 문제와 관련된 아무런 정보도 보고받지 못했다”면서 미국측의 정보 능력을 치하하며 그들이 취한 조치가 현명했음을 인정했다.

위컴은 이후 열흘 뒤인 2월 16일 전두환을 처음 만났다. 이 자리에서 위컴은 군부가 더 이상 불안해질 경우의 위험을 강조했다. 그는 12·12에 반대하는 장교들에 대해 미국측이 어느 정도 강경하게 대응했는지 알려주면서 “신군부가 민간정부를 넘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경고했다.

전두환은 이 때도 거짓말을 했다. 그는 12·12 사태 직후 브루스터 지부장이나 글라이스틴 대사를 만났을 때처럼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으며, 어떻게 하는지 보고 평가해 달라”고 말했다.

전두환은 극비리에 역쿠데타를 일으킨 장성들을 수사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숙정(肅正)이 이뤄질 경우 미국이 반발할 것을 우려해 3월초 관련자들을 변방으로 전출시킨 후 서서히 군에서 퇴출시켰다.

글라이스틴은 훗날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왼쪽)가 미 대사관에서 측근들과 상의하는 내용을 다룬 드라마의 한 장면.

우리가 ‘역쿠데타’ 계획을 그토록 냉철하게 처리한 것은 지극히 온당한 처사였다고 지금도 확신하고 있지만 그 위기의 기간 중 광주항쟁을 제외하고 그 일 만큼 개인적인 고뇌를 안겨준 것도 없다. 12 · 12 사태를 ‘올바로 잡으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극히 유감스런 일이었지만 한국군 내부의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는 미치광이 짓이었다. 그 일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기 때문에 정치권에 꽃피기 시작한 낙관론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미국이 역쿠데타를 차단했지만, 신군부를 집권세력으로 용인한 것은 아니었다. 백악관이나 주한미대사관이나 신군부가 하루 빨리 민주정부로 모든 권력을 이양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전두환 신군부 세력과의 냉랭한 관계는 지속됐다.

▶ 거칠어지는 신군부와 미국… 지휘체계 침해 비난 – 내정간섭 비판

미국 측은 12․12사태 이후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하극상과 지휘체계의 침해를 놓고 신군부에 대한 비난을 계속했다.

신군부의 장성들은 미국측, 특히 대사관과 한미연합사령부가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전두환 그룹은 미국의 정보수집 능력, 미국 측이 군부 내의 거사계획을 어떻게 알게 됐는가 하는 문제로 불쾌한 심사를 감추지 못했다.

전두환과 그의 동료들은 미국 측이 거사계획을 무산시켰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한국군 내의 갈등이 미국에 알려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신군부세력에 대한 미국의 비난은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반응도 불러왔다.

역쿠테타가 무산된 후, 글라이스틴 미국대사(왼쪽)와 전두환 보안사령관 간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한다.

전두환과 그의 지지자들은 거의 반공개적으로 미국의 간섭을 비판했다. 특히 글라이스틴 대사를 지목해 ‘식민지 총독’을 연상시키는 행동을 한다고 비난했다. 그것은 미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기보다 그들의 내심을 잘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역쿠데타 모의가 무산된 후 전두환은 한국군의 보안을 더욱 철저히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보가 미국에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위컴 사령관과 브루스터는 특히 이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했다. 동맹관계에 기본적인 군사 및 정보 분야 협조에 금이 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3월 들어 신군부에 대한 압력을 약간 완화하기로 결정했을 때 위컴은 미군 지휘관 회의에 주한미대사가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글라이스틴은 지휘관들에게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사안은 사령관과 내게 맡기고 맡겨진 임무는 통상적인 협조정신에 의거해 수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후 위컴과 브루스터는 미국 태도의 ‘정상’ 회복을 전하면서, 한국 측에서도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것을 요구했다.

3월 14일. 위컴은 전두환과 만난 자리에서 “모든 것을 비밀로 하면 의심을 낳기 쉬우니 덮어두려고만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약 2주 후 글라이스틴은 이전부터 전두환의 존재를 ‘현실’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해 온 최광수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에도 그 문제를 제기했다.

글라이스틴은 최광수에게 “미국 측이 군사문제의 접촉에 있어 정상관계의 회복을 위한 절차를 택한 만큼 최 대통령에게 그 뜻을 전해 한국 정부도 동일한 조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브라운 국방장관이 정책과 정보 분야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협착관계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된 후 몹시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2개월 앞으로 다가온 한미안보협의회 이전에 그런 문제들이 해소되도록 해줄 것을 제안했다.
[특별취재팀= 최석진, 최정미, 박정우 기자]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408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204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281946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320837_e.html

▷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 / William Gleysteen

<저작권자 ⓒ 위키리크스한국(http://wikileaks-kr.org)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