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 서울의 봄과 ‘3김의 동상이몽’… 그리고 폭풍전야처럼 몰려오기 시작한 먹구름(30)

[특별취재팀] 맹추위를 뚫고 봄이 오기 시작했다. 산등성이마다 진달래꽃이 피고 시냇가에는 개나리꽃들이 새 계절이 왔음을 느끼게 했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정치권에도 봄이 왔다. 정치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최규하 정부나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의심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조심스런 태도로 새 시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로 인해 한국 정치의 앞날에는 한결 희망적인 관측이 확산됐다.

그런 로맨틱한 휴지기간은 1980년 2월 25일 동아일보 김상만 회장이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등 3김을 위해 주최한 전례 없는 ‘역사적인’ 만찬에 미국, 일본 및 캐나다 대사와 함께 참석했을 때가 절정이었다.

김 회장은 세 명의 대통령 경쟁자들을 위한 모임을 자신의 집에서 성대하게 준비했고, 그 행사는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글라이스틴 대사도 그 자리를 유쾌하게 보냈다. 그러나 그는 워싱턴에는 다음과 같이 빈정대는 투로 보고했다.

“기자들이 물러가고 주민들이 칼집에 칼을 꽂을 때까지 만찬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상만으로서는 영광의 시간이었겠지만 정부와 군의 국민적 도덕체계 수호자들은 그날 밤의 행사를 조금은 냉철하게 봤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국을 위한 최선의 길은 3김 모두의 집권을 차단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게 했을 것이다.”

그 보고는 정부와 군부 내의 집권 보수세력들이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공정한 민주주의를 막으려 할 것이라는 글라이스틴 대사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1980년 2월 25일 동아일보사 주최 행사에 참석한 김대중(왼쪽부터)· 김상만·김영삼·김종필. 당시 ‘대선 후보 3김 첫 회동’으로 주목받았으나 김대중은 계엄사령부의 통제로 ‘재야 유력인사’ 로만 보도됐다.

▶글라이스틴, 한국에 진정한 민주선거 필요하지만 차선책도 불가피 판단

12·12사태 전, 미국은 김종필이 군과 정보기관의 도움으로 ‘슬쩍’ 대통령직을 차지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은 12·12 후 전두환 그룹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염려했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한 듯 보이자, 이번에는 전두환이 최 대통령이나 ‘선출된’ 후계자를 자신의 대리로 내세워 실권을 행사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했다.

서울과 워싱턴의 미국 관리들은 3김 모두가 계엄령이 해제된 상태에서 자유롭게 출마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선거’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글라이스틴 대사는 “기대와 달리 조금은 미진하더라도 한국 국민들이 용인한다면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하고 생각하곤 했다. 당시 한국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완전히 민주적 조건이 아닌 상태에서라도 김종필이나 신현확 총리처럼 강력하고 비교적 온건한 인물이 집권한다 해도 무방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계엄령 완전해제 및 빠른 민주화를 원하는 한국민들의 요구가 확산되면서 시위가 과격해질 경우 ‘군부에 의한 진압’을 미국이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또 그런 불상사의 조짐을 뒷받침하는 경고신호도 있었다.

그러나 1980년 3월 중순까지만 해도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진압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긴장이 우려할 방향으로 조성되고 있었으나 폭발적인 사태가 그토록 급박하게 닥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1980년 2월 25일 3김이 참석한 동아일보 행사는 인촌 김성수 선생 추도 행사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태영 변호사, 정일권 공화당 고문, 김대중 전 의원, 김상만 회장, 김영삼 신민당 총재, JP, 모윤숙 시인(왼쪽부터). 이들과 함께 주요국 대사들도 참석했다. JP는 이 때 정국을 “봄이 왔으나 진짜 봄이 온 건 아니다”고 말했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보좌역 동훈]

▶대학가 “계엄령 해제, 언론검열 폐지하라” 정국불안

80년 3월 대학이 다시 문을 연 것과, 야당과 재야 진영의 조급함, 정부 내 강경세력, 최규하 정부의 우유부단한 태도, 정부의 개혁일정 지연, 그리고 심각한 경기침체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학가는 먹구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3월 초 대학에 돌아온 학생들도 처음에는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과오에 대한 항의에 비교적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다.

3월 19일 위컴 사령관을 만난 전두환도 “학생과 노동자들의 시위는 현지 경찰력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러나 6주 후 서울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의 학생시위는 강경일변도로 기울어 있었다. 자신들이 역사적 사명은 일종의 국민적 양심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학생들의 강력한 주장에는 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박대통령이 시해된 지 5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건재하고 있는 계엄령과 언론검열 등 최규하 정부의 지지부진한 태도에 그들의 인내도 한계에 도달했던 것이다.

1980년 2월 25일 3김이 참석한 동아일보 행사는 인촌 김성수 선생 추도 행사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태영 변호사, 정일권 공화당 고문, 김대중 전 의원, 김상만 회장, 김영삼 신민당 총재, JP, 모윤숙 시인(왼쪽부터). 이들과 함께 주요국 대사들도 참석했다. JP는 이 때 정국을 “봄이 왔으나 진짜 봄이 온 건 아니다”고 말했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보좌역 동훈]

<참조 문서>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408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204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281946_e.html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EOUL19088_e.html

http//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320837_e.html

▷Massive Entanglement, Marginal Influence / William Gleyst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