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 미 국무부, 박정희 시해사건 전세계 대사관에 긴급 타전하다 (14)

<한국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8시, 작은 만찬 자리에서 당한 총상으로 즉시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내각이 기능을 발휘 중에 있고, 헌법에 따라 총리가 대통령직을 수행함이 선포됐다. 예방적 조치로 한국 내 대부분의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한국은 차분한 상태이고, 미국인들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박 대통령의 사망 사건 이외에 다른 무력 사건이 보고된 바는 아직 없다. 토요일 한국의 분위기는 경의와 애도심으로 가득하다고 주한 미 대사관은 보고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쏜 권총에 맞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
박정희와 갈등관계에 있었던 카터 미국 대통령은 묘한 상황에 휩싸였고, 미 정부 역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상당한 혼선을 겪게 된다.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1979년 10월 27일 국무부 전문을 보면 일단 미 정부는 사건 당일 북한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경고하는 한편, 각 대사관에는 냉정하게 객관적인 상황을 긴급 타전했다.

국무부가 발표한 성명을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국의 국면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미국은 이 문제를 한국 내부적인 것으로 여기며, 모든 면에서 규제를 가하도록 강력히 권고한다. 또한 미국 정부는 한국과의 조약 의무에 따라서 한국의 상황을 부당하게 이용하려는 그 어떤 외부의 시도에도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확실히 하고자 한다.”

카터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충실한 협력자였고,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특히 그의 역할이 귀감이 되는 유능한 지도자였다”고 하면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에게 조의를 전했다.

국무부는 “박 대통령이 격한 싸움을 벌인 그의 최 측근들을 떼어놓으려는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죽음이 사전에 계획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은 최종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며 “최규하 총리는 강인한 인물은 아니지만, 헌법에 따라 3개월 안에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그가 유일한 과도 지도자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사망은 직접적으로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간 갈등에 따른 피해였지만, 당시 정치 사회적 상황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년도인 1978년말 제10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32.8%의 득표율을 올려 여당인 공화당의 득표율 31.7%를 앞지르게 되었는데 이는 민심의 이반 현상이 표출된 대표적 사례였다.

이 때부터 집권여당은 위기감을 갖게 됐고, 측근들 사이의 알력도 본격화 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9년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오원춘 사건은 유신정권과 가톨릭 세력의 정면충돌을 야기시켰다. 특히 8월의 YH사태는 이전의 노동소요가 절정에 이른 사건이었다. YH무역은 소규모 수출 업체로서 사장이 체불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미국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YH노조의 여공들은 자신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당시 김영삼 총재 하에서 유신정권에 대한 강경 투쟁을 전개하던 신민당사로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8월 11일 여공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기 위해 당사 내로 진입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여공 김경숙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YH사태는 소규모의 비체제적인 노사갈등에 불과하였으나 정권에 대한 도전이 조직화되는 상황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야당을 비롯한 전 민주화운동세력과 유신정권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야기시켰던 것이다.

김영삼은 유신철폐의 선명한 기치를 내걸어 중도통합론을 표방한 이철승을 1979년 5월의 전당대회에서 누르고 신민당의 새로운 대표로 등장했었다.

김영삼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였고,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통일을 위해 김일성을 만날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 정부는 이에 김영삼의 축출을 기도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신민당 대의원 2명이 전당대회 당시 투표권이 없음을 선언했다. 김영삼의 정적인 이철승계의 인물들이 전당대회 결과의 무효를 제소해 법원은 김영삼의 총재직 박탈을 결정했다.

국회는 더 나아가 김영삼의 9월 16일자 〈뉴욕타임스〉지 회견 내용이 국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10월 4일 그의 국회의원직까지 박탈했다. 결국 정부는 야당까지도 제도권 정치의 틀 밖으로 내모는 형국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를 뇌관으로, 그동안 쌓였던 국민의 불만이 김영삼 출축을 계기로 폭발했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창원 등지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부마사태‘로 명명된 이 시위는 10월 15일의 시위는 부산대학교의 학생시위로부터 시작되었다. 16일부터 17일 이틀 동안 경찰차량 6대가 전소되고 12대가 파손되었으며, 21개 파출소가 파손 또는 방화됐다. 18일 자정에는 부산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공수부대 등의 군병력이 투입되어 시위군중을 진압했다. 18일에는 경남·마산 일원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19일 밤에도 마산·창원 지역에 이러한 사태가 계속되자 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박정희의 퇴진을 요구한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던 부마사태는 강경진압에 의해 일단 해결되었으나 그 대응 방식을 둘러싼 집권층 내부의 갈등을 야기시켜 10·26사태를 발생시켰다.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부마사태에 관한 강경진압을 주장하였으며,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이었고 양인은 서로 경쟁적인 입장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의 입장을 수용해 강경진압을 채택하자 차지철의 견제로 진퇴위기에 몰린 김재규가 10월 26일 만찬 도중에 박정희와 차지철을 살해한 것이다.

김재규는 군 후배인 차지철의 월권과 자신에 대한 무시, 그리고 그에 대한 대통령의 편애를 견딜 수 없었다. 그날도 박정희는 부마사태의 책임을 중앙정보부의 정보 부재에 돌렸으며, 차지철도 중앙정보부의 무능함을 지적했던 것이다.

10·26 사태 직후 최규하 과도정부는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한민국은 당사자인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도 상상할 수 없었던 미증유(未曾有)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특별취재팀= 최정미, 최석진, 이정우 기자]

■ 영사들에게 알리는 박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한 한국의 상황

  1. 한국 정부는 박정희 대통령이 10월 26일 금요일 저녁 8시, 작은 만찬 자리에서 당한 총상으로 즉시 사망했다고 확인했다.

  2. 내각이 기능을 발휘 중에 있고, 헌법에 따라 총리가 대통령직을 수행함이 선포됐다. 예방적 조치로 한국 내 대부분의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한국은 차분한 상태이고, 미국인들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박 대통령의 사망 사건 이외에 다른 무력 사건이 보고된 바는 아직 없다. 토요일 한국의 분위기는 경의와 애도심으로 가득하다고 주한 미 대사관은 보고한다.

  3. 국장은 11월 3일에 치러지지만, 외국 대표들이 초대될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4. 10월 26일 이른 저녁 시간(한국 시간 토요일 아침) 국무부는 북한의 군사 행동 가능성에 대한 경고로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인용: 우리는 한국의 국면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미국은 이 문제를 한국 내부적인 것으로 여기며, 모든 면에서 규제를 가하도록 강력히 권고한다. 또한 미국 정부는 한국과의 조약 의무에 따라서 한국의 상황을 부당하게 이용하려는 그 어떤 외부의 시도에도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확실히 하고자 한다.

  5. 한국의 방위를 위해 한국군과 미군이 조직한 한미 연합사령부가 통상적인 예방 조치로 전투 준비 태세에 들어갔지만, 지금 현재 북한의 적대적 행위에 대한 증거는 없다.

  6. 카터 대통령은 박 대통령이 충실한 협력자였고,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특히 그의 역할이 귀감이 되는 유능한 지도자였다고 하면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에게 조의를 전했다.

  7. 의견: 현재 최상의 정보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격한 싸움을 벌인 그의 최 측근들을 떼어놓으려는 과정에서 죽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죽음이 사전에 계획된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은 최종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 최규하 총리는 강인한 인물은 아니지만, 헌법에 따라 3개월 안에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그가 유일한 과도 지도자일 것으로 예상된다.

  8. 대사관들은 위의 정보들을 이용해서 국무부의 성명에 담긴 내용과 카터 대통령의 조의문을 강조하며 각국 정부들에 보고하기 바란다. – 크리스토퍼(미 국무부 차관)


■ SITUATION IN KOREA UPON DEATH OF PRESIDENT PARK POSTS INFORM CONSULS

  1. REPUBLIC OF KOREA OFFICIALS HAVE CONFIRMED THAT PRESIDENT PARK CHUNG HEE DIED SHORTLY BEFORE EIGHT P.M. FRIDAY, OCTOBER 26 AS RESULT OF A GUNSHOT WOUND OCCURRING AT A SMALL DINNER PARTY.

  2. THE CABINET IS FUNCTIONING AND THE PRIME MINISTER HAS BEEN DECLARED ACTING PRESIDENT IN ACCORDANCE WITH THE CONSTITUTION. MARTIAL LAW HAS BEEN DECLARED THROUGHOUT MOST OF THE COUNTRY AS A PRECAUTIONARY MEASURE. THE COUNTRY IS QUIET, AND ALL AMERICANS ARE BELIEVED TO BE SAFE. THERE HAS BEEN NO FIGHTING REPORTED OTHER THAN THE INCIDENT WHICH RESULTED IN THE PRESIDENT’S DEATH. OUR AMBASSADOR REPORTS THAT THE MOOD IN THE COUNTRY SATURDAY IS RESPECTFUL AND SORROWFUL.

  3. A STATE FUNERAL WILL BE HELD NOVEMBER 3, BUT WE DO NOT YET KNOW WHETHER FOREIGN REPRESENTATIVES WILL BE INVITED.

  4. EARLY EVENING OCT 26 WASHINGTON TIME (SATURDAY MORNING IN KOREA) THE DEPARTMENT OF STATE ISSUED THE FOLLOWING STATEMENT AS WARNING AGAINST POSSIBLE NORTH KOREAN ACTION:
    QUOTE: WE HAVE BEEN ADVISED OF THE DEVELOPMENTS IN THE REPUBLIC OF KOREA. THE UNITED STATES REGARDS THE MATTER AS AN INTERNAL ONE FOR THE REPUBLIC OF KOREA AND URGES RESTRAINT ON THE PART OF ALL.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ALSO WISHES TO MAKE CLEAR THAT IT WILL REACT STRONGLY IN ACCORDANCE WITH ITS TREATY OBLIGATIONS TO THE REPUBLIC OF KOREA TO ANY EXTERNAL ATTEMPT TO EXPLOIT THE SITUATION IN THE REPUBLIC OF KOREA. UNQUOTE.

  5.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UNDER WHICH KOREAN AND AMERICAN FORCES ARE ORGANIZED FOR THE DEFENSE OF THE REPUBLIC OF KOREA, HAS BEEN PLACED IN READINESS CONDITION THREE AS A ROUTINE PRECAUTIONARY MEASURE, BUT WE HAVE NO EVIDENCE AT THIS JUNCTURE OF ANY HOSTILE NORTH KOREAN MOVEMENTS.

  6. PRESIDENT CARTER HAS SENT CONDOLENCES TO ACTING PRESIDENT CHOI, KYU-HA, NOTING THAT PRESIDENT PARK WAS A STAUNCH ALLY AND ABLE LEADER WHO WILL BE RECOMMENDED IN PARTICULAR FOR HIS ROLE IN KOREA’S REMARKABLE ECONOMIC DEVELOPMENT.

  7. COMMENT: ACCORDING TO BEST AVAILABLE INFORMATION AT THIS JUNCTURE, PRESIDENT PARK MAY HAVE DIED WHILE TRYING TO SEPARATE THE PROTAGIONISTS IN A VIOLENT ARGUMENT BETWEEN TWO OF HIS TOP ADVISORS, BUT WE CAN DRAW NO FINAL CONCLUSION AT THIS JUNCTURE AS TO WHETHER THE PRESIDENT’S DEATH MAY HAVE BEEN PREMEDITATED IN ANY WAY. FOR THE MOMENT, ALL INSTITUTIONS ARE DEMONSTRATING CONTINUITY OF LEADERSHIP. THE PRIME MINISTER IS NOT A STRONG FIGURE, HOWEVER, AND WE ANTICIPATE THAT HIS WILL BE ONLY A TRANSITIONAL LEADERSHIP OF THE COUNTRY UNTIL A NEW PRESIDENT CAN BE CHOSEN, A STEP WHICH ACCORDING TO THE CONSTITUTION MUST TAKE PLACE WITHIN THREE MONTHS.

  8. EMBASSIES MAY BRIEF HOST GOVERNMENTS AS DESIRED FROM ABOVE INFORMATION, EMPHASIZING THE MATERIAL CONTAINED IN THE DEPARTMENT’S STATEMENT AND THE PRESIDENT’S CONDOLENCE MESSAGE. CHRISTOPHER

▶원문 https://wikileaks.org/plusd/cables/1979STATE280022_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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