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첩첩 규제에 신음하는 ‘한국의 4차산업’… 족쇄만 풀어도 5년간 150만개 첨단 일자리 창출

박예은 기자= 비트컴퓨터는 국내 헬스케어 선도 기업. 이 회사는 원격의료 사업 진출을 위해 해당 분야 인력을 최근 20명까지 늘려 왔다.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시장이 본격 개막할 것이라는 예측에 따른 투자였다.

그러나 개정 의료법이 수년째 국회에서 낮잠을 자면서 비트컴퓨터의 근심은 점차 커지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시범사업도 정체기에 빠지면서 추가 채용은 검토도 하지 못하고 있다.

비트컴퓨터의 고충은 국내 의료법이 원격의료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가 원격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격의료가 시행됐을 때 병원을 찾는 환자가 줄어들 것을 우려한 의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정부와 국회가 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세계 최초 원격진료 플랫폼 기업인 미국 텔러독(Teladoc)은 24시간 진료서비스를 무기로 벌써 회원 1100만명을 확보했다.

새로 고용을 창출한 인원만 1300명이 넘는다. 세계 각국이 이처럼 규제 장벽과 기득권에 가로막혀 있던 신산업의 새로운 성장을 통한 고용 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규제 개혁→신산업 육성→고용 창출’이라는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데 국가 명운을 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IT 선진국임을 내세웠던 한국에선 규제 장벽으로 인해 이 같은 산업 성장과 고용 창출이 가로막혀 있다는 비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규제만 완화해도 향후 5년간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신산업 분야에서 창출 가능한 일자리가 드론·로봇·자율주행차(12만5000개), 스마트홈·웨어러블 기기(35만5000개)를 포함해 15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봤다.


▶신산업 육성은커녕 규제장벽 쌓는 정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는 정부가 규제를 풀어 신사업 진출을 지원해도 부족할 판에 시장을 봉쇄하는 데 골몰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로봇과 3D프린터 등 신산업 분야에서 정부가 자격증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용노동부는 산업 현장에 필요한 전문가를 육성하겠다면서 로봇과 3D프린터 분야에서 각각 3개와 2개의 자격증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부상하는 산업 분야에서 자격증을 만들면 관련 시장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수적인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자격증이 도입되면 정부 규제 효과만 커질 뿐이며 기업이나 인력들의 시장 진출은 오히려 위축된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정부의 자격증 정책은 오히려 관련 분야의 하향 평준화만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촘촘한 규제로 인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사업화돼 부가가치와 고용을 엄청난 규모로 창출하고 있는 사업도 한국에서는 도저히 실행할 수 없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 구글이 하고 있는 사업 중 많은 것이 한국에서는 각종 법 규제로 시행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예컨대 구글의 원격진료 의료 모바일앱 비즈니스인 ‘헬프아웃서비스’는 의료법 위반으로 불가능하다. 암세포 탐색 나노로봇 개발 사업인 ‘베릴리 프로젝트’를 한국에서 시도했다가는 생명윤리법 위반으로 바로 구속감이다. 드론 배송 사업인 ‘프로젝트 윙’은 항공안전법 위반으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난 1년간 투자 상위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에 한국형 규제를 적용하면 13개사는 아예 사업이 불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차량 공유 업체인 우버, 리프트(Lyft)를 비롯해 중국 원격의료 업체인 위닥터, 범죄예방 빅데이터 기업인 미국의 팰런티어(Palantir)도 한국이었다면 싹을 틔우지 못할 기업들로 분류된다. 일부 사업만 가능한 44개까지 더하면 사실상 10곳 중 6곳은 한국에서 제대로 된 성장이 어려운 셈이다.


▶첨단 인재를 빼앗아라! 가열되는 인재 쟁탈전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벌이는 인재 쟁탈전의 배경은 4차 산업혁명이다. 국내 핵심 인재들의 발길이 주로 향하는 곳은 주요 2개국(G2)이다. 중국과 미국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전기자동차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자본과 인프라가 풍부하고 정부의 지원정책도 탄탄한 곳이다.

핵심 인재들이 자원과 정책 등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3박자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떠나는 만큼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정부가 고급 인력이 머물 수 있는 산업생태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아마존은 매 분기마다 한국 주요 정보기술(IT) 기업 연구원들에게 초청장을 보낸 후 국내 호텔에서 채용박람회를 열고 있다. 아마존은 최근 4차 산업혁명을 겨냥해 유통플랫폼을 재정비하면서 AI 스피커를 통한 쇼핑플랫폼을 구축해 관련 인력이 많이 필요한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삼성전자와 네이버 등 핵심 인력들이 관련 프로젝트를 위해 아마존으로 무더기로 이직했다.

아마존은 고용시장에서는 ‘포식자’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아마존은 AI 전문가 일자리 채용공고를 연간 1180개가량 냈다. 아마존은 AI 비서 ‘알렉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업에서 AI를 활용하려고 한다. 물류부터 식료품까지 진출하는 분야마다 장악한 아마존은 4차 산업에 맞춰 사업을 정비하면서 글로벌 IT 인력을 집어삼키는 모양새다.

구글도 AI 인재 영입에 배고프긴 마찬가지다. 포브스에 따르면 구글은 연평균 1억3100만 달러(약 1500억 원)를 AI 인재 채용에 투자하고 있다. 지난 1년간 일자리에 대한 채용공고를 563개 냈다. 이미 구글은 네이버 등에서 숙련된 기술 인력을 많이 빼간 바 있다.

국내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인력도 중국의 러브콜을 받은 지 오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퇴직한 부장급 간부들은 중화권 기업으로 이미 많이 옮겨갔다. 메모리 반도체는 설계가 어렵지 않아 시간과 돈만 있으면 기술력을 따라잡을 수 있는 만큼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시장 잠식이 우려되는 분야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내 기업이 인재 쟁탈전에 손을 놓을 경우 4차 산업혁명에서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AI 등 4차 산업 인력은 일반 IT 인력보다 양성 기간이 더 필요하고 수급이 불균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육성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특히 기술 후진국으로 취급받던 중국에서는 AI와 관련된 연구인력이 ‘인해(人海) 지능’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규모로 육성되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 주도권과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인력 양성 체제가 취약하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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